프로레슬링 경기의 승패는 서로에게 공격을 퍼붓고, 방어가 오가는 혈투를 펼치다가 승부를 결정짓기 위해 어느 한 사람이 커버(상대방의 양 어깨를 땅에 닿게 해 3카운트 이상을 얻기 위한 행위를 일컫는다)를 하는데, 이 때 커버 당한 사람이 심판이 세는 3카운트 이전에 킥아웃(상대가 커버 시 빠져 나오는 행위)을 하면 경기 재개, 그렇지 못하면 패배하게 된다. 이것이 프로레슬링의 승패를 가늠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일반적인 레슬링 매치라면 이렇게 승부를 가리지만 조금 더 특별한 경기 방식이 있다. 바로 ‘라스트 맨 스탠딩(Last Man Standing)’ 매치다.

이 경기 방식은 커버로 승부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기술로 상대를 넉다운(Knockdown) 시킨다. 이 때 쓰러진 선수는 심판이 10카운트를 다 세기 전까지 일어서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패배하고 만다.

많은 레슬러들이 라스트 맨 스탠딩 매치에서 부상을 입는다. 물론 프로레슬링 경기는 100% 리얼 스포츠가 아닌 잘 짜인 스토리와 경기 하는 두 선수의 절묘한 합이 어우러진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쪽이지만 그들의 부상은 실제인 경우가 더 많다.

선수들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격렬한 경기를 펼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그리고 많은 연봉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장애인들은 오늘날에도 팬들의 성원이나 혹은 고액의 연봉 때문이 아닌 아무 대가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이 매치를 치르고 있다. 그것도 스포테인먼트가 아닌 리얼로 여과 없이 말이다.

현실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무거운 이들이 자립이라는, 레슬링 매치와 똑같은 종류의 경기를 치른다.

장애인에게 주어진 임무가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 같이 험한 경기를 하고 사는 것일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라스트 맨 스탠딩 매치에서 승리하는 선수는 관중들로 하여금 많은 환호를 받는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자립(自立)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평생을 인내로 살아야 했다. 그래서 늘 반복되는 아픔에도 굳건히 설 수 있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는 자립의 의미는 단순히 부모나 다른 가족의 품을 떠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의 유혹이 사로잡을 때라도 우린 일어서야 한다. 레슬링 매치에서 선역 선수가 악역 선수의 공격을 이기고 마지막까지 일어서서 승리를 쟁취하듯 장애인도 그래야 한다. 당장은 그 일어섰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에게 환호 받지 못할지라도 훗날엔 내 자신에게 당당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버텨냄의 아름다운 열매를 보고 많은 이들이 박수 보내주리라 믿는다.

마지막에 일어서는 자인 그대여!

조금만 힘내기를…. 그대는 그저 이제껏 치러 온 라스트 맨 스탠딩 매치를 조금 더 치러야 할 뿐이며, 그 경기에서 승리하는 일밖엔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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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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