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두고 장애 비장애를 나눈다는 것이 참 우습긴 하다. 사랑은 만국 공통의 감정이고, 남녀노소 불문의 감정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에서 공통분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생각 외로 공통 된 부분들이 많고, 더 나아가 심오하기까지 한 것이 장애인들의 사랑이다.

그러한 근거를 드라마 ‘굿 닥터’를 바탕으로 해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인연의 시작은 언제나 낯설다.

이것은 비단 이성간에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관계는 언제나 서먹하다. 그러나 관계가 발전하는 계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향이 같든지, 살던 곳이 같든지, 관심사가 같든지, 하는 일이 같든지…….

이렇듯 공통점 하나만 찾으면 금세 친해진다. 서먹함은 희뿌연 연기되어 날아간다. 드라마 ‘굿 닥터’의 남녀 주인공 또한 그랬다.

모자랄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차윤서(문채원 분)와 서번트 증후군과 함께하는 박시온(주 원 분)의 만남은 누가 봐도 부조화였다. 마치 물과 기름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들에겐 닥터(Doctor)라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윤서의 후배로 들어 온 시온은 조금은 어눌한 말투와 표정으로 일관하며 소아 병동의 일촉즉발 상황에 적합하지 못한 듯 했지만 그런 시온을 가장 따뜻이 감쌌던 인물이 바로 윤서다.

친밀함보다 더 우선인 건 바로 인내다.

같은 일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두 사람의 관계 발전에 중요한 다리 역할을 했지만 그것보다도 더 우선 시 됐던 것은 바로 인내였다.

윤서의 경우 시온의 장애를 이해해야 했고, 시온은 그녀가 자신을 알아가는 그 시간동안 기다려야 했다. 그런 인내때문에 같은 일을 하는 것만으론 관계 진전이 어려웠을 상황에서 깊은 신뢰의 관계로 발돋움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극을 잘 들여다보면 단 한 순간도 ‘한 사람이 독주’하는 때가 없다. 시온이 다른 사람의 조롱을 받을 때 윤서는 그의 마음을 치료하는 소독약이 되어 주었고, 시온은 윤서가 큰 수술을 집도할 때 위기의 상황에서 그가 가진 특출한 재능을 발휘해 그녀를 돕는 등. 서로가 윈-윈하는 사이가 된다.

시온은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는 진짜 심의(心醫)다.

시온은 병원에 오는 아이들을 진심 어린 사랑으로 보살핀다. 의사와 환자라는 권위의식은 버리고, 오로지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눈높이로 진료한다. 그 뿐 아니라 아이의 부모가 할 만한 ‘사랑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이런 정성은 심병(心病)이 든 아이들에겐 무한한 치유를 주었고, 더불어 그 아이들의 부모에게는 의심에서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한다.

이런 놀라운 능력은 시온이 한결같이 바라보는 윤서에게도 영향력을 끼친다. 이런 점에서 시온은 세상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는 진짜 심의(心醫)다.

윤서를 향한 시온의 세레나데는 배려의 끝이다.

세상 모든 사람의 심병을 고칠 만한 정성과 능력을 가진 ‘시온의 기적’에도 윤서는 망설인다. 윤서의 예전 짝사랑 상대는 도한인데 도한은 병원 실장인 재경과 연인 사이이다. 윤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일찍 마음을 접었지만 아직 잔재는 남아있는 상태였다. 해서 시온의 진심 어린 고백에도 마음을 못 열었다. 시온의 고백이 윤서에겐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로써 시온의 고백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는 윤서가 자신을 어려워하는 것이 싫어 이전과 같이 지내고자 한다. 시간이 흘러 윤서는 시온이 자신에 대한 감정이 진심임을 깨닫고, 자신 역시 어느새 시온에게 끌리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시온이 어느 날 밤, 자신의 아파트에서 독백으로 윤서에게 이야기 하듯 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것 이젠 아무렇지도 않은데 선생님때문에 자신이 다른 것이 답답하고 싫다고 이야기 한다.

그런 마음을 담아 가수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란 곡을 부른다. 바로 위층에서 이 같은 고백을 고스란히 들은 윤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쓰다 보니 정말 드라마 중심으로 흘렀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드라마 리뷰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드라마에서 보인 시온의 능력에 버금가는 힐링을 장애인 여러분 모두가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또한 사랑 역시도 시온을 뛰어 넘을 것이라는 확신에 의한 단순 비교일 뿐이다.

얼마 전 칼럼에서 필자는 ‘장애인은 인내의 왕’이라 표현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인내가 바탕이 되면 자연스레 배려는 행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맘에 고백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 장애인이다.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물론 때때로 힘듦이 자신을 짓누르지만 그 사람과 지금껏 쌓아 온 관계가 허물어 지는 것이 아쉽고, 또 지금처럼 보지 못할까 봐 우려되는 것이 있어 감춘다.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부족하지 않고, 타인 보기에도 부러움을 살만한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것도 장애인이며, 또 그러지 못해 미안한 것 역시 장애인이다.

사랑은 온유하며 오래참고, 자기의 유익을 구(求)치 않는 것이다. 장애인의 사랑에는 이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 얼마나 심오한가. 아마 인간의 삶에서 더 이상의 심오함은 없을 지도 모른다. 난 단언할 수 있다.

부디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그댈 위해 되고 싶다’는 용기 어린 고백을 하는 이의 마음을 봐 주시길 바란다.

※ 본문 하단에는 안치환 氏의 ‘내가 만일’이란 노래 가사가 일부 인용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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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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