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칼럼에서도 필자는 현실주의 보다는 이상주의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무조건 이상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장애가 있으므로 현실의 벽 앞에 무릎 꿇어야 할 때가 많았으며 그에 따른 좌절도 겪었다.

하지만 내게 높은 벽이 놓여 있다 하여 순응만 하며 살아갈 순 없었다. 내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피해가야 했고, 피할 수 없으면 오늘의 나보다 더 나을 내일의 나를 그리며 살아가는 그 수밖엔 없었다. 그것이 내가 이 고된 세상 가운데 인내할 수 있었던 방법 중 하나다.

그런 내가, 이번 칼럼에서는 이상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바로 활동보조에 관한 이야기다.

여러 차례 필자가 언급했고, 다른 분들 역시 칼럼이나 기고를 통해 제시했지만, 달라진 건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런 상황에서 내 글 하나 더해진다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그냥 두고 보기에는 무책임한 행동인 것 같아서 그러지 못하겠다.

현실적 활동보조란 무엇일까?

본인이 생각하는 세 가지 요소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는 보조인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활동보조야 말로 현실적 활동보조라고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종영한 MBC 드라마 ‘구암 허준’의 한 부분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한 평생 병자들을 내 몸 같이 돌봐 온 허준은 동의보감 편찬을 마치고 낙향한다. 고향 땅에서 가난한 병자를 돌보며 생을 마감하겠다고 다짐한 그는 약 방을 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재정 상태는 바닥을 보이게 되고, 이를 우려한 그의 측근들은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지만, 그 말을 들은 허준은 오히려 역정을 낸다.

그의 곧은 심성은 백 번이고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어쩌면 그의 아우와 그의 이웃들이 더 현명했을는지도 모른다.

당장의 생활이 해결 되지 않으면 타인에 대한 호의는 빛바랠 수도 있다. 마치 활동보조인의 실태가 지금 이 같지 않을까 싶다. 좋은 일, 의미 있는 하려고 시도했는데 보람되지 못하다면 어떨까?

물론 보람됨의 가치가 물질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실제. 그 마음의 중심에는 항상 ‘자신’이 제일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다그치거나 혼낸다고 그러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 배가 불러야 타인이 생각나고, 그의 입에 밥을 넣어 줄 아량도 생기는 법이다.

특히나 보조인은 이용자의 생활, 넓게는 생명과도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보조인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만족을 크게 느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론 아쉽지만 현실적으로는 임금의 현저한 상향이 우선시 되어야 하겠다.

현실적 활동보조의 요소 그 두 번째는 보조인 혹은 이용자에게 유류비 지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잖은 이유들로 보조인의 개인 차량 이용은 금하고 있다. 일정부분은 나 역시도 이해하지만 이런 규제는 풀어줬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이유는 바로 서비스명(名)에서부터 되짚어 봐야 할 것 같다.

‘활동 보조…’ 그렇다. 이 서비스는 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서비스다. 가정에서의 활동 역시 범주에 들어가지만 내 생각엔 대외 활동의 의미가 더 크다고 본다.

물론 각종 수단으로 활동을 한다. 하지만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버스는 탑승이 용이치 않고, 장애인 택시는 차량 보유 수가 적고, 지하철은 환승의 번거로움이 존재한다.

해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개인 차량의 사용이 절실하다. 개인 차량을 사용하자고 하면 리스크를 먼저 이야기 한다.

그 이야기들 역시 잘못 된 이야기는 아니다. 사고 시 보험처리의 문제나, 차량 유지비용 등의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일단 차량 유지와 보수가 용이하도록 유류비나 하자 보수비용 등은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보험의 경우에도 이용자와 보조인이 공동 명의로 된 보험을 신설하여 각종 사고 시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듣고, 유토피아(Utopia)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이상 논리가 아닌 절실한 요구이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대중교통 수단의 이용이 녹록치 않아 그냥 외출을 삼가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마지막 세 번째로 이용자가 활동보조인을 선발(?)하는데 있어 왈가왈부하지 말아달라고 하고 싶다.

때는 바야흐로 ‘람보(남자 활동보조인)’ 가뭄 시대다. 어느 지역 어느 도시를 가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뭄에 콩 나듯 오는 센터 전화에 아무 조건 없이 OK한다. 그럴 때면 마치 집으로 표현하자면 급매물로 내 놓은 것 같고, 물건으로 이야기 하자면 떨이로 날 파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현재의 활동보조서비스 시스템 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간과 요일만 맞으면 OK해야 하며 만일 그렇지 않으면 보조인을 빼앗기게(?) 되니 어쩔 수 없다.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 체력… 더 나아가선 그 사람이 이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더 깊게 들어가면 그의 종교관까지도….

이렇듯 세밀한 부분까지도 알아야 하는데, 현재는 기업에선 흔하디흔한 면접 시스템도 없다.

솔직히 말하면 센터에서의 면접은 면접이 아니다. 요즘 같이 서울시의 몇 개 구에서 24시간 활동보조서비스가 확정된 시점에서는 1:1이 아닌 1:다(多)이기 때문에 이용자가 보조인의 시간 활용이나 성향에 따라서 스케줄을 정해야 한다. 마치 부부처럼 한 몸 같이 생활해야 한다.

세상에 배우자를 대충 고를 사람이 어디 있나….

필자는 보조인 선발 기준이 까다로운 편이다. 그래서 때론 대충 아무나 하라는 소릴 많이 듣는다. 내 입맛대로 고르려는 게 아니라 잠시잠깐이라 해도 ‘내 사람’이 되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서로가 소통이 되는, 그리고 인내하는, 역지사지의 삶을 살아 줄 그럴 사람 말이다. 하다못해 물마저도 골라 마시는 요즘이다. 하물며 사람이 아니랴…….

쓰다 보니 길어졌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 몸이 성하면 이 모든 건 다 필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는 그렇지 못하니 필자나 다른 장애인 여러분 모두 최대한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맘에 장문을 남겨 본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