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10월은 시각장애인들에게 특별한 달이다. 그것은 흰지팡이날이 10월 15일이라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날 때문에 많은 시각장애인관련 행사들이 10월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해마다 10월 15일은 “흰지팡이날 (The White Cane Day)”이고 이 날은 국제적으로 약속된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흰지팡이날 행사에 즈음하여 필자에게 이 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데, 유엔이 정한 장애인의 날이 12월 3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한 것과는 상이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한국만큼 흰지팡이날이나 관련 행사를 해마다 크게 펼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미국만 해도 백악관에서 흰지팡이날에 즈음한 성명이나 선언문 발표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이마저도 해마다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시각장애인연맹(National Federation of the Blind, NFB)은 지난 2009년을 기점으로 10월을 좀 특별하게 보낸다.

그들은 해마다 10월을 “시각장애인의 달 (The Blind Month)”라고 부른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및 시각장애인당사자의 권익신장을 목적으로 계몽행사 및 관련 집회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첫째, 사람들간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시력상실, 실명 그리고 그에 따른 재활에 관한 정보를 널리 알리고, 둘째로 시각장애인 당사자 권익옹호 활동에 대해 홍보한다.

지난 2009년 실시된 점자 탄생 200주년 기념주화의 발매 역시 이 행사의 일환이었다.

올해 역시 10월을 맞이하여 NFB 지부별로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럼 시각장애인들은 국제적으로 10월 15일을 왜 기념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날을 왜 “시각장애인의 날”이라고 하지 않고 “흰지팡이날”이라고 하는 것일까? 오늘은 이 칼럼을 통해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시각장애인에게 흰지팡이는 특별하다!

시각장애인이 흰색 지팡이가 아니라 그냥 막대기를 이용하여 보행했다는 기록은 여러 가지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앞을 볼 수 없으니 자신의 앞에 장애물도 감지하고 바닥이 평평한지 울퉁불퉁한지도 파악하기 위해 긴 막대로 앞을 두드리며 걷는 것이다.

이렇게 시각장애인들이 혼자서 보행하는데 이용하는 지팡이를 국제적으로 흰색으로 통일하기로 하고, 흰색 지팡이를 가진 사람을 보면 도와주거나 배려해 주어야 한다고 선언한 날이 바로 흰지팡이날이 된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보행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용기가 있어야 하고 늘상 밀려드는 위험과 당혹스러움과 직면해야 하는 일이다. 사람들의 무관심을 극복해야 하고 때로는 지나친 관심도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조롱이나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날마다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직장으로 학교로 흰지팡이에 의지해 외출한다.

정리하면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자립생활을 하고 있음을 선언하는 도구이고,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재활했음을 공인하는 증표이며, 자신의 삶에 주인임을 표시하는 문서인 것이다.

흰지팡이가 가진 또 하나의 의미는 시각장애인이 아닌 많은 비시각장애인들이 흰지팡이를 보고 시각장애인이 있음을 자각하라는 의미가 있다.

길을 걷다가 운전 중에 흰지팡이를 짚은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시각장애인이 장애물이나 위험한 상황을 사전에 인지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므로 주변인의 도움을 구한다는 의미도 있고, 시각장애인이 주변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흰지팡이에 대해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모두가 자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흰지팡이날을 정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특히 10월 15일로 정한 것은 흰지팡이 헌장을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흰지팡이가 가지는 의미와 우리 사회에 시각장애인들이 요구하는 바를 밝힌 날이 바로 그 날이기 때문이다.

IT IS NOT 시각장애인의 날 BUT 흰지팡이날

우리는 여러 가지 날을 정하고 기념한다. 노인의 날, 국군의 날, 경찰의 날 등. 이렇게 사람 혹은 직종을 위한 날도 있지만 어떤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날도 있다. 유야 어찌되었건 기념일의 명칭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존재한다.

흰지팡이날도 마찬가지 인데 앞서 흰지팡이 선언을 채택한 날을 흰지팡이날로 기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럼 왜 그 날은 시각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흰지팡이날이라고 할까?

전통적으로 시각장애인은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장애영역이다. 다른 분야의 의학과 달리 눈에 관한 의학은 매우 정밀하고 복잡한 것으로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눈에 병을 얻으면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실명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인류의 역사이자 운명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가장 오래 전에 저술된 서적 중의 하나인 성경을 포함하여 많은 종교의 경전에서 실명한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으며, 실명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제도의 시행 역시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왔음도 부정할 수 없다.

세계 대전은 시각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생활에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는데, 실명한 상이군인을 위한 치료 및 교육의 일환으로 지팡이를 활용한 재활 교육이 개발되고 실시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로 나온 시각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나름대로 훌륭한 삶을 영위해 왔다.

이렇게 수십 년 간 지팡이에 의지하여 자립과 자활을 성취해온 시각장애인의 힘으로 흰지팡이 헌장이 만들어지고 이 날을 흰지팡이날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날이라고 하기보다 흰지팡이날이라고 하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ek.

첫째는 흰지팡이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흰지팡이가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시각장애인들에게도 사회적으로 시각장애인을 인식시키기 위한 의미가 있는 도구이므로 흰지팡이 자체를 강조하여 부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흰지팡이날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날이 비시각장애인들에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 스스로 자립과 자활의 의지를 고취시키기 위한 의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실명의 고통으로 슬퍼하고 좌절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게 흰지팡이의 의미를 알려 주고 자립의 의지를 고취시키자는 뜻인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기념일이 있고 이들 기념일 중에는 개인적인 것, 국가적인 것, 국제적인 것 등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관련 기념일로는 가장 유서 깊은 흰지팡이날은 국제적이기도 하면서 국가적이기도 한 공신력 있는 기념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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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준 럼리스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이자 아시아태평양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 부회장이다.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유엔 에스캅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세계 장애인계의 동향, 뉴스를 소개하며 시사점을 살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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