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본지의 칼럼니스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 주의 깊게 기사를 지켜보는 편인데 얼마 전부터 활동보조인과 이용자의 갈등을 특집 기사로 보도하는 것을 보고, 필자 역시 게재의 필요성을 느껴 몇 마디 첨언하고자 한다.

갈등의 시발(始發)지점은 어디부터인가?

언제나 갈등은 어느 한 쪽의 문제가 아닌 쌍방 간의 문제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때때로 그 사실을 잊고 산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장애인(이용자)은 갑(甲)의 위치에 서려고 한다.

내 피 같은 돈을 지불했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 역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용자 입장에선 정말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최중증장애인의 경우 수입원이 일정치가 않으므로 대부분 장애연금으로 본인부담금을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금의 액수가 더욱 크게 와 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이용자는 갑(甲)이 아닌 을(乙)이다. 적어도 활동보조 계약서에는 그렇게 적혀있다.

그렇다면 보조인의 잘못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바로 장애인에 대한 무지이다. 누가 모르고 싶어서 그러겠나. 하지만 그 ‘모름’이 이용자들에게 얼마나 큰 불편을 끼치는지 모른다.

장애인도 하나의 인격체이고, 더 나아가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보다 더 우월할 수 있음을 항시 기억해야 한다. 보조인은 그 점을 자주 망각한다. 망각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건 필시 ‘소통 부재’ 때문일 것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이 우울증 및 기타 정신과적 질병을 가지지 않으려면 하루 약 8,000마디 이상의 말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정설인지 가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소통이 중요함을 알려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양쪽의 대화는 별로 많지 못하다. 지금 당장 입을 열어 서로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서비스의 질(質)은 어때야 하는가?

앞서 밝혔듯 이용자는 갑이 아닌 을이다. 그런데 을의 입장이라 하여 소극적일 필요 있을까?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 서비스 주체(主體)의 입장은 아닐지라도 활동보조서비스는 이미 장애인을 위한 국가제도이다.

그러므로 이미 주도적 입장을 띄는 것이 사실이다. 당당하고 자신있게 자신의 필요를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정말 필요한 것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서비스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사료된다.

자신이 돕는 사람이라고 하여 ‘쥐락펴락’하려는 생각을 버려라

현재 갈등관계에 놓여있는 많은 이용자들이 성토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보조인이 자신의 삶, 그 전반을 쥐락펴락하려 한다는 데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그건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내재 돼 있는 ‘장애인을 향한 무시’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장애인들이 몸이 불편하다하여 마음까지 불편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갈등은 늘 있다.

필자는 2007년부터 올해 3월까지 총 12명의 보조인과 함께했으며 그 시간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보조인이 필자에 대해 모욕도 했고, 납득이 가지 않는 일로 그만두기도 했고, 필자 또한 잘못을 했던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갈등 가운데 난 그래도 지혜롭게 이겨낸 편이라고 자부한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오래참음과 이해였다.

그들은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며, 더구나 장애라는 신세계에 갓 입문한 그야 말로 ‘초짜’들이다. 그들에게 내 부모, 형제와 같이 전문성(?)이 있길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약속시간 5분 후에 도착한다거나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이보다 더 늦는다고 해도, 이유만 타당하다면 넘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항상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내 요구사항만을 무조건 요구하기보다는 그에게 애로사항이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하고, 잦은 대화를 통해 알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가장 이상적인 서비스와 교류를 나누는 필립과 드리스. ⓒ네이버 영화

이런 형태로 지내다 보니 난 영화 <언터쳐블:1%의 우정>에서 나오는 보조인인 ‘드리스’와 같은 사람을 두 명이나 만났다. 윤재민군과 정상택군. 난 그들을 만나 행복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그들과 새 역사를 만들어 보고 싶다.

어려운 숙제 그러나…

이용자와 보조인 모두 어려운 숙제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관계 유지’라는 어려운 숙제 말이다. 쑥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일, 그건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같이 어려운 숙제를 해 갈 사람은 중개기관이 아니라 보조인과 이용자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노력의 하모니는 반드시 이같이 어려운 형국을 벗어나게 하리라 굳게 믿는다.

2009년 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함께한 나와 내 생애 첫 번째 드리스인 윤재민군. ⓒ안지수 & 윤재민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