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TV 개그콘서트 ‘불편한 진실’ 코너 화면 캡처 ⓒKBS

“이거 왜 이러는 걸까요?”

개그맨 황현희의 유행어가 재미있던 개그콘서트의 ‘불편한 진실’이란 코너를 한동안 재밌게 봤었는데, 결국 폐지되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크다. 그건 그렇고, 최근 장애인 분야에서도 많이 쓰이는 ‘역량강화’란 단어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필자가 느끼게 되는 그 ‘불편함’의 연유와 함께, 두 가지 뜻을 지닌 ‘역량강화’가 주는 오해와 진실에 대해 살펴보겠다.

장애인 관련 문헌들의 여기저기서 ‘임파워먼트(empowerment, 이하 영문병기 생략)', 혹은 ‘역량강화’란 말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임파워먼트’를 ‘역량강화’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필자는 이 경우 오해와 혼돈을 불러일으키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해서는 안 되고 (특히 장애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우리말 번역어로 ‘권한강화’란 말을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본래 ‘임파워먼트’란 단어는 사회복지 쪽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사례관리(case management) 분야의 중요 키워드 중 하나인 관계로 더 많이 쓰이고 있으며, 장애인 분야에서는 ‘동정기반의 패러다임으로부터 권리기반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a paradigm shift from charity-based paradigm to rights-based paradigm)’이란 시대적 변화의 기류를 타며 요즘에 더 자주 등장되고 있다.

‘임파워먼트’가 우리나라 사회복지계에 소개될 때 처음에는 ‘세력화’라고 번역됐었는데, 그 이후에는 ‘능력고취’, ‘권한부여’, ‘권능부여’ 등으로 번역하여 사용되어오다가, 최근 들어서는 대부분 ‘역량강화’로 번역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임파워먼트’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힘(또는 권력, power)을 적게 가진 자에게 더 많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 쪽의 경우를 놓고 본다면 재활 전문가와 장애인 당사자 간의 관계에서, 기존에 결정 권한을 훨씬 더 많이 가졌던 전문가 권한 중 일부를, 장애인 당사자에게 돌려주는 상황이 ‘장애인이 임파워먼트되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과거 전문가가 더 임파워먼트된 모델의 경우에는, 전문가의 일방적인 결정과 지시가 장애인을 전문가에게 더욱 의존하도록 만듦으로써, 결과적으로 장애인이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됐었다. 반면에 장애인 당사자가 더 임파워먼트된 모델의 경우에는, 장애인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주체적인 선택권과 결정권을 가지며, 전문가와 수평적 관계의 파트너쉽을 통해 협동하며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

학자들의 정의를 살펴보면, 디얼링(Dearling, A.)은 임파워먼트란 ‘사회복지서비스의 이용자(소비자)가 보다 힘을 가지고, 자신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나 문제를 자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용어’라고 하였고, 구티어레츠(Gutierrez, L.)는 임파워먼트를 ‘거시적 수준’, ‘미시적 수준’, ‘혼합적 수준’의 세 수준으로 나눴다. 거시적 수준의 임파워먼트는 집단적인 정치적 힘을 증대시키는 것을 말하고, 미시적 수준에서는 개인의 힘(통제력)이 증대되는 과정을 의미하며, 혼합적 수준은 두 가지 모두를 같이 추진하는 것이다.

거시적 수준의 임파워먼트는 ‘사회적 임파워먼트(social empowerment)’, 미시적 수준의 임파워먼트는 ‘개인적 임파워먼트(personal empowerment)’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장애인을 예로 들자면, ‘사회적 임파워먼트’는 장애계가 선거 때마다 외치고 있는 ‘장애인의 정치세력화’를 떠올리면 될 테고, ‘개인적 임파워먼트’는 ‘자립생활(IL : Independent Living)’에서 그토록 부르짖는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의 되찾음’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한편 며칠 전 하성준 칼럼니스트께서도 언급한 바 있었던, ‘역량개발(capacity development)’, ‘역량구축(capacity building)’ 등의 단어들도 자주 쓰이고 있는 바, 이런 말들에서는 ‘커패써티(capacity)’를 ‘역량’으로 번역하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에서는 ‘리걸 커패써티(legal capacity)’란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는 우리나라 공식 번역본에서 ‘법적 능력’으로 번역하고 있다. 실제로 ‘커패써티(capacity)’의 사전적 의미에는 법률용어로서 ‘(행위)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까닭에 ‘역량강화’라고 하면, ‘어떤 이의 능력을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의 뜻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장애인에게 적용하여 볼 때, ‘장애인의 역량강화’란 ‘장애인을 열심히 공부시키거나 (직업재활 등의) 훈련을 시킴으로써, 장애인이 가진 내재적 능력을 보다 더 높이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임파워먼트’를 ‘역량강화’로 번역하는 경향 때문에, ‘장애인의 역량강화’를 다시 영어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capacity building of persons with disabilities’로 번역할 수도, 또 ‘empowerment of persons with disabilities’로 번역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역량강화’가 가진 두 가지 의미에서 오는 혼란 때문에, 외국의 문서들에서 등장하는 ‘empowerment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장애인의 임파워먼트)’가, 원래는 ‘장애인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역량강화’로 번역됨에 따라) 마치 ‘장애인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 받음으로써 그의 능력을 높이는 것’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필자는 ‘임파워먼트’를 ‘역량강화’로 번역하지 말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왔던 번역어들 중에서는, 필자가 보기에 ‘권한부여’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나 생각하는데, ‘부여’라고 하면 웬지 상하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높은 권력자가 낮은 권력자에게 뭔가를 하사하는 듯한 뉘앙스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장애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전문가와 장애인 간의 수평적 파트너쉽 의미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 ‘권한부여’ 보다는 ‘권한강화’란 말이 더 적절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따라서 ‘임파워먼트’를 더 이상 ‘역량강화’라고 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권한강화’로 번역하여 사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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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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