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의 홈페이지 모습. ⓒ국가인권위원회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제33조는 가입 당사국이 협약을 국내적으로 어떻게 이행할 것이며, 또 누가 어떻게 모니터링할 것인가의 내용에 관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담고 있다.

제33조 국내적 이행 및 감독

1. 당사국은 이 협약의 이행과 관련된 사항을 위하여 국내조직의 체계에 맞춰 정부 내에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전담부서를 지정하고, 다양한 부문과 다양한 수준에서 관련 활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정부 내에 조정기구를 설치하거나 지정하는 것을 충분히 고려한다.

2. 당사국은 자국의 입법과 행정 체계에 따라 이 협약의 이행을 증진, 보호 및 감독하기 위하여 적절한 경우 당사국 내에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독립적 기구를 포함한 체제를 유지, 강화, 지정 또는 설치한다. 이러한 체제를 지정 또는 설치할 경우, 당사국은 인권보장과 증진을 위한 국가기구의 지위 및 역할과 관련된 원칙을 고려한다.

3. 시민단체, 특히 장애인과 이들을 대표하는 단체들은 감독 절차에 충분히 개입하고 참여한다.

짧고 간결한 이 조항의 내용에는 4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첫째는 ‘전담부서’, 둘째는 ‘조정기구’, 셋째는 ‘모니터링(감독) 체계’, 넷째는 ‘장애인 참여’이다.

이 중, 제33조 제1항의 내용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부보고서에서, 전담부서로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정책국을 지정하였으며, 조정기구로는 국무총리 소속의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있다고, 유엔에 보고하고 있다.

한편 제33조 제2항은 모니터링 체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얘기하는 ‘인권보장과 증진을 위한 국가기구의 지위 및 역할과 관련된 원칙(the principles relating to the status and functioning of national institutions for protection and promotion of human rights)’아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파리원칙(Paris Principles)’을 표현한 것이다.

파리원칙의 본래 이름은 ‘국가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Principles Relating to the Status of National Institutions)’으로, 1993년 12월 20일 유엔총회결의 48/134 부록(Annex)으로 채택되었다. 본래 이 원칙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제1회 국가인권기구 워크샵’이란 행사가 1991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기 때문에, 이 원칙을 파리원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33조 제2항에서 말하는 모니터링 체계에는 파리원칙이 고려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독립적 기구가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파리원칙에 따라 설립된 국가기구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있기에, 한국 정부는 제33조 제2항에서 말하는 모니터링 체계의 역할을 국가인권위원회가 하고 있다고 정부보고서에 언급한 바 있다.

이 조항의 네 번째 포인트는 장애인과 장애인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모니터링(감독) 절차에 충분히 개입하고 참여하는 것을 국가가 보장하도록 하고 있는 부분이다.

오늘의 칼럼에서 필자는 세 번째와 네 번째의 포인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장애인 NGO들은 여러 차례의 기쁜 소식을 접한 바 있었다. 2006년 12월 13일, 유엔총회에서 협약이 통과되었고, 그 다음해인 2007년 3월 30일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서명개방식 때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한국 정부를 대표하여 서명한 것에 대해, 모두 다함께 기뻐하였다.

한편, 서명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본 협약에는 서명했지만 선택의정서에는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장애계가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 즈음 열린 협약 관련 토론회 자리에서, 선택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장애인 NGO들의 문제제기가 나오자, 서명개방식 당시 서명하는 유시민 장관 뒤에 서 있었던 故 이익섭교수께서는 ‘나는 시각장애인이라 앞이 보이지 않아서, 당시에 선택의정서를 빼고 서명하는 것을 몰랐다.’는 씁쓸한 농담을 한 적도 있었다.

그 뒤 2008년 12월 2일 제278회 정기국회 제14차 본회의에서 협약의 비준동의안이 통과되자 더 큰 축하가 이어졌고, 당시 국제장애인권리협약한국비준연대에서는 비준동의안 통과에 기여를 한 국회 외교위원회 위원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행사를 하며, 기쁨을 나누기도 했었다.

그런데 사실 비준과 발효 등보다도 그 협약이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장애인의 권리를 증진하고 보호하며 보장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유엔인권협약이라는 것이 각 당사국이 이걸 해야 되고, 저걸 해야 되고 한다고 아무리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어도, 필자가 보기엔 세계 어디에도 그 모든 걸 꼼꼼히 챙기며 알아서 완벽하게 준수하는 정부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나라 장애인들의 실질적인 권리가 증진되기 위해서는, 모니터링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그 막중한 역할인 협약 제33조 제2항에 따른 모니터링을 맡고 있는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협약 이행을 얼마나 잘 모니터링하고 있는가?’

또 네 번째 포인트라고 필자가 언급했던, 그 모니터링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 등의 참여는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또 한국 정부는, 그리고 장애인 NGO들은 과연 각각 어떤 답변을 내놓을 것인가 궁금하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페이퍼 속의 글자로만 남아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헌법에 따라 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하지만 협약에 어떠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해도 그 내용을 담아 국내법령들을 제•개정함으로써 실질적인 실효성을 담보해내지 않는다면 헌법의 취지를 살려내기 힘들 것이다.

한국에서 발효 중인 협약의 내용에 따라, 어떤 국내 법령들을 제•개정해야 하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그 연구 결과로 나온 제•개정 사항들을 이슈화시켜서, 제•개정안들이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협약에서 조목 조목 나열하고 있는 당사국의 의무를 한국 정부가 얼마나 어떻게 잘 준수하고 있는지를,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만약 준수가 안 되거나 덜 되는 부분이 있다면 한국 정부에 피드백을 주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인들 중에, 혹은 기구나 기관이나 단체나 어떤 주체이던 간에, 누군가는 이런 일들을 해야만 한다.

더구나 협약 제33조 제2항에 따른 한국의 ‘공식적’이면서도 ‘유일한’ 모니터링 체계인 국가인권위원회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이런 일들을 아주 ‘잘’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런 일들을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바, 그나마 공식적 모니터링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이런 일들을 하지 않거나 게을리 한다면, 적어도 한국 내에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페이퍼 속의 글씨’ 정도에 머물고 말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네 번째 포인트에 대해, ‘공식적’이면서도 ‘유일한’ 모니터링 체계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모니터링에 장애인 및 장애인단체들을 적극 참여시켰다는 얘기는, 필자가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다(물론 필자가 정보가 부족하여 못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물론 인권위가 넘쳐나는 차별진정 건수를 처리하기에도 바빠서 이런 일을 하기 어려운 상태일 것이리라고 짐작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상태가, 협약 제33조 제2항의 역할을 안 해도 좋다는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작년 8월 1일자로 게재된 에이블뉴스의 칼럼 『‘제노비스 신드롬’ 그리고 UN장애인권리협약』을 통하여, ‘누군가 하겠지’ 하면서 결국에는 아무도 안 하고 마는, ‘책임감의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에 따른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를 소개하면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그렇게 되지 않길 희망한다는 내용의 글을 남긴 적이 있었다.

그 1년 전의 우려와 지금의 걱정이 모두 다 기우(杞憂)에 불과했으면 좋겠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