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양보와 절제의 미덕이 가득했던 것 같다. 그것이 비록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기에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워 판단할 순 없지만 아무튼 그 시절에는 마음이 풍성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지금은 그런 일이 없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다만 그보다 더 자극적이고, 다급한 소식들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리라. 또한 내 어린 시절보다는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 풍요로움이 조금은 덜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건 물질적 변화나 환경적 변화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변화를 가져다주는 듯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 그건 바로 장애인을 대하는 마음이다. 예전에는 장애인을 낮춰서 병신(病身)이라 부르길 자주했고, 그 때의 관행이 어르신들의 입술을 통해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사실 병신(病身)이란 말은 한자 그대로 보면 그다지 나쁜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의 쓰임새를 보면 결코 좋은 말은 아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병신이란 말 대신 ‘애자’라는 표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오늘날의 복지 카드 그 전신인 장애인 수첩에도 장애자(障碍者)라는 표현을 썼었다.

그러자 장애인 분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놈 자’(者) 자(字)를 거부한 것. ‘애자’라는 표현은 장애자에서 파생 된 비하 표현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처럼 장애인은 언어로써도 얼마나 사람들의 무시를 받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 아는 동생과 활동보조서비스를 하고 있을 때 일이었다. 서울을 가려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 때 멀리서 마주친 어르신 한 분이 내게 인사를 하시더라. 모르는 분이어서 당황했지만 어르신이 어린 내게 인사하시는데 아무리 모르는 분이라 하더라도 인사드리는 게 옳을 것 같아, 정중히 인사를 드렸고, 미소도 지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화근(?)이었나 보다. 그 때 그 어르신은 내 인사를 받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하. 좋단다….”

분명히 난 들었다. 순간 ‘이게 뭐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난 예의를 차리고, 인사를 했을 뿐인데 내게 돌아오는 건 무시와 조롱이라니…’ 하는 생각과 함께 혼돈에 휩싸였고, 난 내가 인사한 것을 심히 후회했다. 어르신께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 또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참았다.

나도 모르게 나 혼자서 화를 삭이고 있는 날 동생이 보고, “형.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어도 난 답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예화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 병신, 애자… 솔직히 다 맞다.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 너무한다. 3월의 에피소드를 이제 이야기 하느냐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3월이나 지금이나 달라지는 건 없다. 더 답답한 건 장애인은 웃어도 울어도 다 무시당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장애인은 도울 자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하고, 또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인내하고 이해 실컷 해도 나중에 무시당하는 것이 장애인이라면….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상처를 크게 받았다고. 아니다. 사실 그 날 다 잊었다. 혹여 내가 만난 그 어르신처럼 장애인을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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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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