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모 의원이 가짜장애인이 있다는 발언 이후 월급 받으면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책임을 질까봐 겁을 먹은 복지부가 의사들의 장애인판정을 부정하고 국민연금에 장애인판정을 맡기면서 장애판정으로 인한 장애인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다.

‘장애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어디 있는가? 오히려 장애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명예스럽고 좋은 일이 아닌가? 장애인이 되지 않았다고 낙담하여 자살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마치 장애인 수를 정부가 조작하여 축소하는 것이 장애예방 정책이라도 되는 줄 착각하고 있다.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누리고자 장애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진정한 장애인의 혜택이 줄어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장애인이 수급권을 누리고 국가가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그 국가적 의무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부도덕자로 몰고 시혜의 대상이 되는 것을 눈칫밥으로 생각하게 하는 사회적 풍토가 오히려 장애인들에게서 영원히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장애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장애가 있음에도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더욱 참담하다. 장애인판정은 단순히 의사들의 문서를 가지고 판정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인생이 달린 문제요, 지금까지 살아온 장애인이 모두 타인으로부터 부정되면서 장애인을 빙자한 가짜 장애인 사기꾼이 되는 순간이 된다.

장애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하는 것이다. 조작된 범위를 정해 놓고 장애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장애가 있는 것을 찾지 않는다. 기준에 들어오는지만 판단한다. 그러니 머리가 둘 달린 기형자도 장애인이 될 수 없고, 죽음을 선고받고 식물처럼 누워 있어도 장애인이 될 수 없다. 장애는 정부의 발명품이고, 국민연금공단은 발명품에 대한 품질검사를 하는 곳이다.

그리고 장애인으로서 차이와 형편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버려지는 것이다. 장애를 루저로 취급하는 사회는 그 루저 집단에서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내몰고 고려장처럼 죽음의 세계로 갖다 버리는 것이다. 가족으로부터 버려지는 것처럼 장애인으로서 장애인 사회에서 버려지는 것이다.

장애인으로 살다가 장애인 제외판정을 받거나 장애등급이 하락되는 사람은 모두 자살의 충동을 느끼며 장애를 가지고 있음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함이 지금까지의 삶 모두가 부정당하는 사회로부터의 버림을 경험하게 된다.

경남의 L씨는 10년간 휠체어생활을 하고 있는데, 장애인 제외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통증은 정부가 정한 장애유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청난 통증으로 인하여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통증이 인정되지 않으니 장애인의 고통도 우습게 보일 것이다.

제주에 살고 있는 남씨는 나무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쳐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는데, 촬영사진에서 손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애인 제외판정을 받았다.

현재 걷지 못하는 것이 장애판정의 기준이 아니라 사진에서 걷지 못하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으면 꾀병이라는 것이다. 나무에서 추락하여 지체 1급 장애인이 되었는데, 3년이 지나자 지체 3급이라고 하더니 최근에는 다시 장애 제외라고 판정하였다. 마치 국민연금이 1년 동안 장애 제외판정을 몇 명 만들도록 실적을 할당받은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1급 장애인이 비장애인으로 판정될 수 있으며, 휠체어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장애인이 아니라고 판정할 수 있는가! 장애가 호전된 것이 아무 것도 없이 오히려 더 악화가 되었는데 과거의 인정된 사실을 다른 핑계를 대며 부정하면서 장애 등급 외가 된 것이다.

서울 구로동에 살고 있는 K씨는 지체장애 3급인데, 한쪽 눈을 실명하였다. 중복장애가 되었으니 등급조정이 가능한가를 알아보았더니 다른 장애가 현 장애보다 한 등급 낮은 등급이거나 같은 등급이 아니면 합산되어 한 등급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각장애인으로 인정을 받아야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자, 6급에 줄 서비스가 어디 있느냐, 비싼 진단비 들이지 말고 포기하라고 하더란다. 다시 합병증으로 청력을 상실하게 되어 장애등급을 올려달라고 요청하였더니 장애유형은 두 가지만 인정하므로 청각장애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란다. 앞으로 다른 장애가 더 생겨도 오지 말라고 했단다.

국민연금공단은 건보의 통합징수제도로 한 곳에서 4대 보험료를 일괄하여 걷게 되어 인력이 축소되는 시점에 탈출구로 장애인판정제도와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판정 등 여러 가지 장애인사업을 확장사업으로 선택하였다.

장애인의 세르파가 된 국민연금이 각종 친화책과 협찬사원으로 장애인단체와 친교를 벌이면서 장애인 개인에게는 순차적으로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동화에서 마녀가 한 사람씩 불러내어 영혼을 빼앗듯 적절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한 사람씩 장애인에서 이름을 지우고 있다. 의정부 고 박진영씨의 이번 자살 사건은 장애살생부가 장애인을 죽인 것이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만든 장애인판정기준이 잘못된 것이고, 자신들은 판정을 수탁받았기 때문에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부는 모든 것을 원칙으로 판단할 수는 없어 재판정제도를 두었고, 유형에 없는 장애라 하더라도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여 판정위원의 판단에 의해 얼마든지 융통성 있는 판정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국민연금이 과잉충성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상을 참작하여 얼마든지 등급은 조정할 수 있고, 중복장애는 법적 유형이 아니라도, 등급이 바로 아래 단계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규정은 있으나, 이를 적용한 사례는 없고, 의료적 전문성을 내세워 때로 선심을 쓰듯이 하례만 만들고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며 규정상 절대 안 된다며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 중 등급 하락은 연간 수천명에 이르고 있다. 국민연금이 장애판정을 맡고나서 매년 30만명씩 증가하던 장애인 인구수는 정지되었다. 장애등급 하락판정을 받게 되면 그들은 거의 모두가 이의신청을 내고 재판정을 요구한다. 그러나 재판정은 월 1회 정도로 2~3명만 선택된다. 판정의 경계선에 있어 애매하거나 강력하게 항의하는 사람만이 선택되는데, 그 판단은 국민연금공단의 담당자 마음대로다. 그 외는 모두 기각이 된다.

월 2~3명을 선정하는 것은 회의를 하기 좋게 하기 위하여 뽑는 것이고, 재판정제도를 통하여 판정의 공정성과 재심이라는 것을 통하여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전시적 행사이다.

그렇지 않다면 재판에서 항소와 같이 자신의 인생의 판정이 걸린 문제라면 신청자 모두가 재심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누구는 서류가 미비하면 판정불가를 공단이 결정하고, 누구는 서류가 미비하면 직접 서류를 갖추는 서비스를 하여 서류를 보완시켜 주는 봉사를 한다고 한다. 그러면 누구를 기각하고 누구를 도와줄 것인가? 그것은 엿장사 마음대로이다.

엿장사가 인심이 좋다는 소리만 들으면 되므로 누가 엿을 더 먹든 더 준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바가지를 쓴 사람이 있어도 그것은 묻히는 것이다.

‘장애’는 ‘환자’와 다르다며 장기간 상태가 유지되며 고착된 상태를 ‘장애’라고 한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스스로가 장애가 고착된 것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고착된 것이라면 재판정이 필요 없어야 하는 것이다. 장애 판정에서 진행형은 고착이 덜 되었다며 판정을 하지 않고 필요한 서비스도 거부하기도 하고, 고착된 상태에서 판정을 하고는 그 고착이 의심되어 다시 정기적으로 재판정을 하고 있다.

장애인은 평생 재판정의 두려움에 떨며 권력 앞에 고개 숙여야 한다. 이렇게 독가스 실 앞에 줄을 세워 놓고 장애인에게 위선적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민센터에서 자살한 고 박진영씨는 5살부터 간질로 인하여 평생 약을 복용하였다. 약을 복용한 것이 문제였다.

약을 복용한다면서 가끔 약을 끊고 간질증세를 보였어야 장애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간질발작의 횟수가 장애판정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평생 약을 먹고 있다거나 과거의 증세는 판정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고 박진영씨를 성격이 급하여 울컥 하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살한 것이라 치부하면서 이 사례에 대하여 근본적인 문제를 절감하지 못하고 특이한 한 사례로 치부해버리는 정부와 공단은 박진영씨를 두 번 죽이는 행동을 하고 있다.

지체의 마비를 인정받으려면 판정심사 몇 달 전 깁스를 하여 근육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내부장애인들은 판정을 앞두고 입원과 병원내방 횟수를 늘려야 한다.

근육이 왜소한지가 판단기준이므로 물리치료를 받는 등 재활을 위하여 근육을 활성화시키면 장애등급 판정에서 불리해지고, 내부장애인들은 병원방문 횟수가 장애등급의 점수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2005년 강서구청 앞에서 현관문에 빨랫줄로 목매어 자살한 주모씨는 구청장면담을 했으나 수급자 처우 개선이 안 되어 항의성 자살을 하였는데, 장애인이 민원을 제기할 경우 응대와 추가적 보살핌과 이해가 없이 사무적 책임이 없음만 강조하면 이런 불행을 부르게 된다.

지난해 12년 2월 13일 밀양의 이모씨가 주민센터에서 음독자살한 사건이 생겼는데, 장기입원으로 의료급여일이 초과하자 수급비가 의료비로 빠져 수급비가 줄어져 23만원으로 살 수 없어 공공근로라도 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는데, 거절당하자 독을 탄 음료수를 마시고 자살하였다.

매년 장애인들은 민생고와 실직, 차별로 인하여 자살을 하고 있으며, 자살을 시도해 본 경험이 잇는 비율이 41%나 된다. 그런데 그런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끊어버리고 장애판정을 하락시켜 부도덕자로 몰며 끊임없이 주기적으로 솎아내기를 하고 있다.

생명선인 소득이 줄든, 서비스가 줄어 살 수가 없든, 직업을 잃게 되어 좌절을 하든, 장애인의무고용제도로 인하여 고용되었다가 장애등급 외 판정으로 실직한 모임에서 집단자살을 시도하든, 직업환경 변화로 장애인들이 주로 하든 직종이 사양산업이 되어 줄줄이 장애인이 자살을 하든, 정부인사와 국민연금 인사들은 자신들의 월급날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고 박진영씨는 장애판정 결과통지서에 쓴 유서를 통해 국민연금공단의 관행을 비판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사람은 보지도 않고 서류만으로 의사들의 형식적 진단서를 가지고 트집잡기를 하고 있는 현실과 판정제도의 엉터리 숫자놀음, 의사들의 무성의한 기록누락, 서비스의 부족과 애로사항을 들어주지도 않는 행정당국 등을 꼼꼼하게 3페이지에 걸쳐 적고 있다.

이렇게 장애인은 아는 데 정부와 국민연금공단만 모르는 잘못된 판정기준과 관행! 알지 못하면 그만 두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장애인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면서까지 잘못을 지적하고자 했던 그는 다른 장애인들은 잘못된 관행에서 희생되지 않기를 유서에서 바라고 있었다.

장애인복지법 제32조에 의하면 장애판정위원회는 국민연금공단 산하가 아니라 복지부 산하이며, 국민연금공단이 위원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위법이다.

또한 장애인등록과 판정에 대하여는 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복지부는 즉시 재판정을 중지하도록 조치하고 국민연금공단의 독점 판정을 재고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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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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