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다보면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 나를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익숙하고 안전한 곳을 벗어나기가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인간은 유전적으로 유목의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낮선 곳에서도 곧잘 적응하고 살아간다. 생명체 중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몇 안 되는 생명체가 인간일 것이다.

인간은 태초부터 먹이를 찾아 유목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머물러 있으면 지루해 한다. 그것이 바로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여행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그런 까닭에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려 하고, 새로운 바다를 항해하려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구촌엔 더 이상 발견할 곳이 없어지니 사람들은 우주로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나섰다. 달에는 오래 전에 발길이 닿았고, 태양계 넘어 은하계 그 어딘가까지 유목의 유전자를 퍼트리려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우주를 달리는 은하철도가 곧 눈앞의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 열차를 탈 때마다 가끔 은하철도 999를 생각나게 하는 것도 이동에 대한 끝없는 유전적 본능에서 기인한 것인지 모르다는 생각이 든다.

늦은 밤인데도 열차 안은 북적거린다. 기차는 어둠을 뚫고 동해로 내달린다. 그리고 정 동쪽 바다에 도착한다. 아직 새벽은 오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하늘은 가로등 불빛에 환하게 빛나고,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간 대형 여객선 선쿠르즈에서 새어나온 불빛마저 정 동쪽 바다를 비추고 있다.

삼십분쯤 지났을까 바다가 조금씩 훤해지기 시작했다. 훤해지는 것은 바다만이 아니었다. 태양은 어둠을 물리치고, 그 자리에 붉게 떠오는 해덩이 대신 먹구름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일출은 보지 못하고 꾸물꾸물한 날씨를 보면서 조각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조각공원엔 '강릉 바우길' 이라는 작은 이정표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바우길 이정표엔 솟대 3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한 방향으로 응시하며 여행객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구름이 잔뜩낀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뿌려댈 것 같았다.

하지만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 무엇도 없어선지 느긋하기만 하다. 해변길을 따라 걷고 싶었지만 방어울타리로 막아놔 휠체어로는 그 길로 들어설 수 없었다. 해변가 대신 둘레길인 민박집 골목을 따라 가는 길엔 여름이 초록 잎에 걸려 있고, 붉은 앵두는 나뭇가지가 찢어질 듯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늘을 만들어 주는 아름드리나무는 푸르다 못해 진한 녹색이 지쳐있다.

갑자기 바다안개가 밀려온다. 안개에 둘러싸인 선 크루즈는 뱃고동을 연신 울려대며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간 것을 감추기라도 한 듯 바다 한가운데를 항해하는 것처럼 흉내 내고 있다. 여름이지만 새벽 바다는 서늘하다. 안개 때문인지 긴팔을 입었는데도 서늘함이 느껴진다.

선쿠르즈에 도착해 1층 카페에서 따스한 커피와 달달한 케익 한 조각을 먹으며 바다를 향해 응시했다. 하지만 바다 안개는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따끈한 커피에 몸을 녹이고 다시 조각공원으로 나왔다.

뱃고동 소리 때문인지 바다 한가운데를 항해 하는 느낌이 든다. 맑은 날 조각공에서 내려다보는 동해바다는 태평양 한가운데를 항해하는 느낌이지만 안개 가득한 선쿠르즈 조각공원엔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논 것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안개가 도화지처럼 하얗게 배경을 만들어 주고 그 위해 조각 작품들과 사진 찍는 여행객이 도화지 안에서 왔다 갔다 한다.

조각공원 곳곳을 둘러보고 동전을 던지는 연못으로 왔다. 여느 관광지도 마찬가지지만 선쿠르즈 조각공원에도 행운을 상징하는 동전던지기 못이 있다.

연못 안엔 다양한 주제의 동전그릇이 있고, 대박 로또 동전 그릇은 돼지가 웃으며 동전 그릇을 안고 있다. 그릇의 크기도 냉면그릇만큼 작다. 옆에 있는 사랑이 싹트는 동전 그릇보다 훨씬 작다. 동전을 꺼내 아무생각없이 던졌다.

그런데 동전이 돼지 머리를 맞고 그릇 안으로 골인했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나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제일 작은 그릇에 동전이 들어간 것이다. 너무 기뿐 나머지 큰소리로 외쳤다.

"동전이 그릇에 들어갔어. 아무래도 이번 로또복원은 내 몫인 것 같아 당장 로또복권을 사야겠어!"

다시 정동진역으로 내려왔다. 열 두 시 사십오 분 강릉행 열차를 타기 위해서다. 강릉은 단오제가 한창이다. 강릉시 남대천 일원에서 개최되는 단오제는 세계 무형문화제로 등록된 후 국내에서 가장 큰 민속 행사다 강릉사람들은 성탄절에는 일해도 단오제날엔 쉰다고 한다.

단오제엔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춘향이가 이몽룡을 처음 만난 날도 단오날이다. 그만큼 단오는 우리나라 3대 명절 중 하나로, 이 날은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고 한다. 창포를 가마솥에 넣어 달인 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도 좋아지지만 부스럼이 나지 않고 해충도 쫓아내 건강한 여름나기를 위한 비법으로 사용 됐다고 한다.

단오제에 또 하나 볼거리는 서커스다 국내 유일의 동춘 서커스도 단오제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단오제엔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그리고 사람들로 가득한 강릉남대천엔 만남과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수많은 무엇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 무엇과의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 어쩌면 여행일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행은 새로운 무엇과 만나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가는 길

청량리 역에서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 이용

요금 왕복 2만천원

•먹거리

정동진 선쿠르즈 리조트 내

경포해변 주변

•장애인화장실

정동진역, 강릉역, 경포해변 주변

•잠자리

하이드파크 / 033-644-1347

라이일샌드파인 / 033-820-7300

•문의

휠체어 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안개로 뒤덮힌 선쿠르즈. ⓒ전윤선

조각공원. ⓒ전윤선

강릉 단오제. ⓒ전윤선

강릉 남대천 단오제.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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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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