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보고서를 심의 중인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회의 모습 ⓒ이광원

“성년후견제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협약’) 제12조의 취지에 위배되는 것으로, 성년후견제와 같은 ‘대리 의사결정(substituted decision-making)’ 제도를 폐지하고, ‘조력 의사결정(supported decision-making)’ 제도로 대체해야 함을 각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협약’) 가입 당사국들에게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위원회’)의 확고하고도 일관된 입장이다.”

(국제장애연맹 IDA의 인권담당관 빅토리아 리)

며칠 후인 7월 1일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성년후견제도가 실시된다. 시행이 바로 코앞인데도 그에 대한 홍보와 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들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시행에 대한 준비와 홍보 등이 문제가 아니라, 이 제도 자체가 우리나라가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협약 제12조에 위배되는 것으로, 하루빨리 면밀하고도 심도 있는 재검토와 함께 이를 대체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형성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들은 이미 예전부터 제기되어 왔었지만, 성년후견제 도입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큰 목소리에 묻혀서, 거의 들리지 않는 일부 소수의 작은 목소리였기에 이미 작동이 시작되어 성년후견제 시행을 향해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는 시계바늘을, 다시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보건복지부에서는 성년후견제의 시행을 앞두고, 이 제도의 홍보를 위해 이를 소개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그 보도자료의 내용에는 “(성년후견제는) UN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른 장애계의 요구로, 2011년 3월 개정된 민법이 올 7월 1일부터 발효됨에 따른 것”이란 문구가 나온다.

이 보도자료를 읽는 사람들이라면 첫째, 성년후견제가 협약에 취지를 반영한 제도이고, 둘째, 장애계가 이 제도를 요구한 것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간결하게 하려다가 비의도적으로 그렇게 됐을 가능성도 있으나) 사실은 부정확한 표현으로 오해의 소지가 매우 높다.

성년후견제를 권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당사국들에게 성년후견제를 폐지하고 이를 대체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 협약의 취지다. 그런데 복지부의 보도자료가 의도했던 것은 과거의 금치산·한정치산제도가 성년후견제로 바뀌면서 피후견인 본인의 의사결정능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민법이 개정됐음을 표현하면서, ‘본인의 의사결정능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의 법 개정’이 협약의 취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그 개정방향 자체는 협약의 취지가 가진 방향성과 비슷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고 시행될 제도는, 협약 취지의 방향성을 담보할 수 있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 다음으로, 성년후견제를 ‘장애계가 요구했다’는 표현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복지부의 보도자료를 보면, ‘발달장애인(13만 8000명), 정신장애인(9만 4000명)과 치매노인(57만 6000명)이 성년후견제의 주된 이용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피후견인 당사자(‘치매’는 아직까지 법적 장애유형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장애인 당사자로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한 부분이 있어 ‘피후견인 당사자’로 표현함.)인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그리고 치매노인들은, 필자가 알거나 예상하기로 성년후견제를 요구하지 않았었다.

성년후견제를 요구한 주체는 ‘장애인 부모’였지,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장애인부모 단체’를 ‘장애계’라고 표현하는 것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확실히 하자면 성년후견제를 요구한 주체는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장애인 당사자의 부모’였다.

이 피후견인 당사자 그룹들 중, 발달장애인이나 치매노인 당사자들은 자기주장을 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서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신장애인의 경우는 다를 것이다. ‘피후견인 당사자들이 과연 성년후견제를 간절히 원하고 있을까?’ 이는 의문인데, 적어도 정신장애인의 상당수는 성년후견제에 대해 반대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권익을 옹호하는 국제 NGO인 ‘세계정신보건서비스이용자및피해자네트워크(WNUSP : World Network of Users and Survivors of Psychiatry)’는 유엔에서, 당연히 성년후견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매우 강력히 내며 활동하고 있다.

‘효과적 NGO 보고서 작성을 위한 집중 워크숍’에서 강연 중인 김형식위원 ⓒ이광원

협약의 제12조에서 얘기하는 법적능력(legal capacity)을 권리능력으로만 볼 것이냐, 행위능력까지 볼 것이냐에 대한 논란은 많이 있어왔지만, 아무튼 협약 제12조의 취지는 장애인의 법적능력이 최대한으로 ‘법 앞의 동등한 인정’을 받아야 하고, 그 법적능력을 행사하기 위한 지원을 위해 당사국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협약의 취지 측면으로 우리나라의 성년후견제를 비춰볼 때 문제가 많은 것 같고, 이에 따라 한국 정부보고서의 위원회 심의 시 성년후견제에 대한 비판적 권고가 나오지 않을까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는데, 그 필자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는 두 가지 일들이 최근에 있었다.

첫째는 필자의 지난호 칼럼들에서 2회에 걸쳐 소개했던 ‘효과적 NGO 보고서 작성을 위한 집중 워크숍’ 행사를 위해 내한한 위원회의 김형식위원과 빅토리아 리를 통해서, 성년후견제에 대한 위원회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둘째는 작년 9월 개최된 위원회 9차 세션 회의 때 채택된, ‘중국 정부보고서에 대한 위원회의 최종견해(concluding observations)’ 중 제12조의 내용을 최근에 번역해봄으로써, 성년후견제에 대한 위원회의 입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김형식위원과 빅토리아 리는 본 칼럼의 모두(冒頭)에 언급된 바와 같이, 성년후견제와 같은 ‘대리 의사결정(substituted decision-making)’ 제도를 폐지하고, ‘조력 의사결정(supported decision-making)’ 제도로 대체하라는 것이 위원회의 일괄된 입장으로서, 정부보고서 심의과정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또한 중국 정부보고서에 대한 위원회의 최종견해 해당 부분을 번역해본 결과, 그 위원회의 입장이 명확하고도 강력한 문장으로 명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중국의 성년후견제도와 우리나라가 이제 시행할 성년후견제가 어떠한 차이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비교와 검토 없이, 중국에 대한 최종견해를 바탕으로 한국 성년후견제에 대한 위원회의 입장을 유추한다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을 것이기에,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은 필자도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아무튼 ‘대리 의사결정(substituted decision-making)’ 제도와 ‘조력 의사결정(supported decision-making)’ 제도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함께, 곧 시행될 우리나라의 성년후견제도의 협약 위배여부를 검토하고, 문제가 있다면 그에 대한 대안을 찾는 일들은 하루가 시급하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지금 빨리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법 시행 며칠을 앞 둔 시점이라 너무나도 늦었지만 그나마 지금이라도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르는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를 막는 일은, 시간을 되돌려 ‘없었던 일’로 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호 칼럼에서는 중국 정부보고서에 대한 위원회의 최종견해 해당 부분과 함께 ‘대리 의사결정’ 제도와 ‘조력 의사결정’ 제도에 대해 더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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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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