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和合)과 상생(相生)의 가치는 크다. 사람은 어울리며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잘’ 어울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내가 속한 공동체 내에서 트러블 메이커가 되느냐 화합 메이커가 되느냐는 철저히 본인의 선택이지만 이 단순한 선택 하나가 내 인생 전체를 바꿀 수도 있다.

허나 이와는 별개로 요즘 세대는 화합과 상생 같은 것보다는 개인적 이익을 추구할 때가 많다. 물론 화합도 좋고 상생도 좋다. 오죽하면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 된 이들이 자주 사용했었을까? 모르는 바 아니나 그보다는 내가 먼저 앞서 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 길을 택한다.

왜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갈수록 심화되는 경쟁(競爭)때문 같다. (지난 번 칼럼에서도 경쟁에 대해 언급한 기억이 있다.) 경쟁은 오로지 나를 달음질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긍정적이지만 현실은 나 아닌 누군가를 누르고 올라가야 한다는 측면이 결코 경쟁의 순기능만을 볼 수 없는 이유다.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기에는 어울려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것이 지독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일종의 생존법칙 같은 것인지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경쟁은 경쟁 자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열등의식도 함께 동반한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개인과 개인 간의 비교 때문일 것이다.

“아무개는 저렇게 잘 나가는데 나는 이게 뭔가. 왜 이렇게 무능력 하지!?”

아무리 마음 좋은 사람도 한 번쯤은 가슴 속에 이런 생각을 품어봤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채찍질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이와 같은 일이 지속 되면, 결국 소위 잘 나가는 상대에 대한 적개심이나 열등감이 생길 수도 있다.

장애인들도 비교의 늪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직장 상사가 비슷한 장애를 가진 동료와 비교해 비하 발언을 한다든지, 꼭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이런 식의 비교는 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닉부이치치 같은 사람은 두 팔과 두 다리 모두 없는데도 열심히 살고 있잖아. 너도 잘할 수 있을 거야.”

이 예시는 현재 많은 비장애인 여러분이 이와 같은 말로 장애인 분들께 위로를 선사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말을 듣는 이는 비교로 오해할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닉 부이치치는 어려운 몸으로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 장애인의 인식개선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고, 또 현재도 그것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며칠 전에는 유명 토크 쇼인 ‘힐링캠프’ 출연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목(耳目)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을 화합의 장이 되는 하나의 긍정적 요소로 봐야지 다른 장애인에 대한 비교로 이어지면 안 될 것이다. 누구나 다 나름의 고통은 있는 것이고 그 고통의 경중을 수치로 매길 수 없다.

장애인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픔을 갖고 사는데도 잘 버텨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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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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