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교육, 고용상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과 같이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은 장애를 이유로 하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최근의 경향은 “차별을 금지한다”고 표현하기 보다는 “평등을 실현한다”는 표현으로 바뀌고 있다.

즉,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하고 이용하고 교육받고 고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여러 가지 국가의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일부 국가들이 장애인의 평등을 실현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과 제도를 가지고 있듯이 UN은 국제장애인권리협약 (CRPD)를 채택하고 있으며, 이미 지난 2012년 12월 12일에 캄보디아가 125번째로 권리협약을 비준한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2013년 3월 20일에 이라크가 비준을 마쳤다.

국제법에 따르면 국가간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므로 이미 전세계 120여개 국가들이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장애인의 권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통상적으로 장애인의 인권과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권은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폭력과 감금, 집회, 시위, 언론 출판의 자유, 생존과 노동, 교육 등과 같은 사회권을 포괄적으로 인권의 범주에 넣고 있는데 반해 장애인의 권리는 이보다 더 광범위하다.

보편적 설계와 접근성의 보장을 포함하여 자립생활지원, 적합한 치료와 사회 서비스의 이용 권리는 말할 것도 없고 권리협약에서 언급하고 있는 부분만 보아도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생각해 보자. 과거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연금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활동보조인지원은 선진국의 이야기였다. 건강보험 재정으로 전동휠체어를 지원받는다는 사실이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건강보험 재정으로 보장구를 지급받는다는 것을 상상하는 장애인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장애인 당사자들과 우리 사회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남의 나라 일이던 일이 우리의 일이 되고,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지원제도들이 우리나라의 사례가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장애인 권리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10월 미국에서 시행을 앞두고 있는 21st Century Communications and Video Accessibility Act (이하 “21세기법”이라 한다)의 사례를 통해 점차로 넓어지고 있는 장애인 인권의 범위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21세기법은 2010년 제정 당시부터 상당한 기대를 모았던 법안이다. 이제 그 시행을 앞두고 미국이 긴장하고 있다.

이유는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해야 할 범위가 기존의 전자정보, 웹 사이트 등에서 스마트폰, 디지털 텔레비전 등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의무가 공공분야를 뛰어 넘어 민간영역까지 의무를 부여하는 획기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법의 발효는 미국에 많은 스마트폰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이 법문 서두에는 “2010년 10월 5일에 워싱턴에서 열린 제111차 국회 2차 회의에서 최신 통신수단의 장애인 접근성의 증대와 다른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하여 미국 의회의 상원과 하원이 이 법을 제정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광범위한 영역의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는 내용들로 법안 전체가 가득 차 있다.

우선 법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21세기 통신수단의 핵, 스마트폰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성과 함께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한 통신중계 서비스를 보장하는 내용은 물론 화면해설, 폐쇄회로 자막 등 시·청각 장애인의 디지털 방송 접근권을 보장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한 걸음 더 진보하여 디지털 텔레비전과 관련 서비스에 대한 접근까지 보장하는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법의 제정이 2010년이라는 사실이다. 2010년에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와 같은 획기적인 법안이 논의되고 법률로써 제정될 수 있었을까?

2010년 미국은 본격적인 디지털 방송체제가 시작된 해이다. 물론 휴대전화도 스마트화 되었다. 종전에 음성통화, 문자 메시지 중심의 이동통신 서비스가 스마트 기능을 가진 통합형 휴대용 단말기의 형태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이렇게 변화하는 정보통신 환경에 발맞추어 미국 사회는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논의를 동시에 시작한 것이다. 그 결실이 21세기법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종전까지 장애인의 접근성 보장은 공적 영역 혹은 민간의 영역이라고 할지라도 공공성을 띠는 부분 가령 교통 서비스나 불특정 다수가 동시에 이용하는 시설에 대해 장애인의 권리적 측면을 강조하여 의무적인 접근권 보장을 법제화해 왔다.

반면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되던 전자제품의 활용, 텔레비전 서비스의 이용은 실질적인 접근성 보장 영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2010년 미국은 종전에 사적 영역으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던 개인 이동통신, 케이블 텔레비전 서비스, 스마트폰과 디지털 텔레비전 수상기 등에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의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계속 논의되겠지만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첫째, 평등의 개념이 기회의 균등을 넘어 가치의 정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재해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일하게 10만원을 지불하고 어떤 라디오를 구입했다고 가정하자. 비장애인은 구입한 라디오의 활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 제품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설명서를 보고 학습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로 인하여 라디오를 활용하는데 제한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을 10만원이라는 비용에 대한 가치의 차이로 이해하고 이러한 가치의 차이는 장애인의 이용을 보장하지 않은 제조사의 차별적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결국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해질 수 있도록 라디오의 제조사는 장애인들도 자사의 제품을 비장애인과 동일한 수준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 법이 가지고 있는 가치의 평등인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일하게 10만원을 지불했지만 장애인의 자신이 가진 장애로 인하여 10만원 중 일정한 가치만큼의 불평등을 당하게 된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일하게 10만원을 지불하고 라디오를 구매했지만 비장애인의 라디오가 10만원의 가치를 가지는데 비해 사용상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에게는 라디오의 가치가 비장애인이 지불한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로 21세기법의 제정은 시민사회가 거대 자본에게 거둔 승리이다.

21세기법의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대상은 스마트폰, 디지털 텔레비전 등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들이다.

한편에서는 미국이 애플과 같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아직 접근성 보장에 관한 기술력이 부족한 한국이나 일본 기업을 경계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 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는 비판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를 든다고 하더라도 명백한 것은 이 법의 시행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장애인들이 스마트 기기들에 대한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또 시·청각 장애인에 대한 접근성 보장의 의무를 제조사들이 감당하게 함으로써 장애인들이 추가적인 비용의 지불을 최소화하고 향상된 접근성을 보장받는 결과를 낳았다.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는 2010년 지나치게 낮은 소음을 발생시켜 시각장애인 등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최소 소음 규정을 국제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국제적인 논의에서 일본 기업 토요타를 포함한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최소 소음을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자동차 회사들은 하이브리드 차량의 저소음으로 인해 소음을 유발하는 장치를 별도로 부착해야 하는 부담을 회피하기 위하여 이러한 주장을 했으며, 일부 언론들 역시 이러한 자동차 회사들의 입장을 받아 “앞으로는 소리나는 차를 개발해야 하는가?” 등의 표현을 써가며 자동차 회사를 옹호하기도 했다.

이 역시 거대 자본과 시민사회 간의 대결이었고 이 대결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끝으로 21세기법은 장애인의 인권이 앞으로 무한정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기는 일들이 앞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말을 한다. “꿈꾸는 것을 실현한다!” 하늘을 날고자 하는 황당한 생각을 했던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만들어 냈고, 소리를 먼 곳까지 전달하려고 했던 그레이엄 벨은 전화를 만들었다.

과학에만 이 말이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앞서 언급했지만 전동 휠체어를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원받고 많지는 않지만 장애인 연금도 받을 수 있다. 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이러한 예는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으로 가면 더 많다. 이제 우리가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우리의 욕구를 정확히 스스로 파악하고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안 돼”, “불가능”이라는 말 대신 “하면 된다!”는 정신이 필요할 때다.

21세기법이 미국에서 본격 시행되면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유사한 법률의 제정이 논의될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이러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입장이 더 많이 반영될지는 모르지만 불가능이나 패배적 사고 대신 합리적인 토론과 논의 과정을 거친다면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일이다.

디지털 방송을 앞두고 IP-TV와 같은 서비스 영역에서는 이미 장애인의 접근성 보장을 위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접근성 보장 방안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예가 이러한 접근성 보장 논의에 좋은 전례가 될 수 있다.

방송을 포함한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기기를 개발 판매하는 기업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들을 이용하고 기기를 구매하는 소비자층인 장애인들이 함께 논의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분야별로 관련된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 미국에서 10월부터 21세기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이러한 논의가 가속화되고 장애인 당사자들의 요구 또한 높아질 것이다.

우리 장애인들이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패배적 사고만 버린다면 오늘의 이상 (꿈)이 내일의 현실이 될 수 있음에 대해 우리는 미국의 21세기법을 통해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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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준 럼리스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이자 아시아태평양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 부회장이다.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유엔 에스캅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세계 장애인계의 동향, 뉴스를 소개하며 시사점을 살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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