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풍력발전단지에서의 신선한 기억은 장애인 여행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지에서의 편의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야 하는 측면이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처럼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사회의 인식은 이러한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월 11일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이 시행된 다섯 돌이 되는 날이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장애인에 대한 권리구제건수는 68%를 상회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장애인차별 금지법은 장애인의 인권을 재고하고 사회적인 이슈화엔 나름의 성과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장애인 개인의 차원에서 일상적인, 특히나 여행이라는 부분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변화를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첫 번째 칼럼에서 ‘여행지에서의 불편한 진실’을 언급했던 적이 있다.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대규모시설 및 지자체 등에서 운영하는 시설들은 나름 규정에 적합한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시설물 운용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잠금장치를 해두었거나 편의시설 이외의 극단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를 수없이 볼 수 있었다. 또한 규정에 적합한 시설이라 하더라도 적절한 홍보가 이루어지지 않아 막상 장애인은 큰 결심을 하고 길을 나서게 되더라도 낭패를 보는 것이 다반사다.

언젠가 장애인 화장실을 청소도구 보관함으로 사용하는 단체에 공식적으로 질의한 적이 있다. 관계자의 회신은 “장애인의 이용 빈도가 전무한 실정이라 미화원들이 청소도구를 보관한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시정 하겠다”는 답변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말이 되지 않는 빈곤한 답변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여행지에서 장애인을 만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이는 여행지 편의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한데다 편의시설이 아무리 잘 갖추어진 여행지라 할지라도 그 여행지에 다다르는 과정에서의 불편함 또한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장애인이 여행길에 한번 나서기까지는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한지는 어쩌다 나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장애인의 감격스러운 여행소감에서도 느낄 수 있다.

사실 여행은 장애인이 아닌 누구에게라도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인 부담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장애인의 경우에는 고려해야 할 더 많은 사항들이 존재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극명한 사실이다.

하나하나를 따지다 보면 장애인의 여행은 앞으로도 도무지 쉽지 않은 결심이 당분간은 계속될 듯하다. 하지만 길은 누구든 나서야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류의 발달과정에서도 태초에 길은 없었다. 누군가 처음 걸던 길이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에 의해 다져져 갔으며 그렇게 길은 만들어 지고 있었다.

장애인 여행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장애인들의 여행을 활성화할 수 있는 법안들이 제도적으로 정비되어감과 동시에 조금은 무모한 주장이 될 수 있지만 장애인 직접 원하는 여행을 계획하고 시도함으로써 소수에 그치던 불편함이 일반적인 불편함으로 인식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여행들은 장애인 여행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들을 양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삶의 과정 역시 늘 새로운 여행의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아름다움을 찾을 수도 있고 더 넓은 시선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또한 여행은 삶의 과정에서 지친 심신을 회복하는 가장 원초적인 회복제가 되기도 한다. 여행은 늘 편안함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이는 평탄하지 않은 장애인의 삶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통해 삶의 한 과정 한 과정을 극복해 나가며 보다 값진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장애가 있건 없건 누구라도 우리의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끝없이 누리는 날을 소망해 본다.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시작하는 물레길. ⓒ김대식

길(2012.08.18. 양평문학기행중)

시간은 길을 만든다

처음 밀림에서 헤매이던 사람이 있었다

결국 그 사람은 밀림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서

누군가 또 밀림을 헤매이던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 역시 또 밀림에서 외롭게 죽어갔다

시간은 교묘하게도

수많은 사람을 이 밀림으로 불러 들였다

계속되는 헤매임, 그리고 죽음

밀림을 헤매던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다져져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밀림을 헤매던 한사람이

기적적으로 밀림속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 지친 등뒤엔 길이 있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밀림을 헤매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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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칼럼리스트
사회복지를 시작하며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지고, 사진을 찍다보니 돌아다닐 일이 많아 여행이 좋아졌다. 하지만 정작 여행지에선 장애인들을 볼 수 없는 현실이 아쉬웠다. 누구나 함께 걸을 수 있는 여행길을 만들고 싶은 여행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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