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甲)

갑과(甲科)·을과(乙科)와 같이 등급을 매길 경우는 첫째를 나타내며, 갑제(甲第)·갑족(甲族)과 같이 최상·일류를 나타내기도 한다. 방위(方位)로는 정동에서 15° 북쪽을 중심으로 한, 즉 동북동(東北東)에 해당하며(甲方), 시각으로는 24시의 여섯째로 오전 4시 반∼5시 반[甲時]을 나타낸다.(출처 : 두산백과)

갑은 첫 번째다. 첫 번째는 항상 박수와 환호 갈채를 받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1등은 존경심을 얻고 동시에 자기의 우월함을 뽐낼 수도 있다.

얼마 전(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전역을 ‘말 춤’으로 그야말로 쓸어 담은 강남스타일의 앨범 타이틀은 ‘싸이 6甲’이었다. 그 제목대로 제대로 6甲했고, 명성도 얻었다. 이럴 때 보면 ‘네이밍 센스’나 생각하는 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대한민국은 이처럼 갑이 되고자 각자가 애쓰고 있다. 어떤 계약이나 서약서에서만이 아닌 진짜 최고, 진짜 갑(甲) 말이다. 의미 있는 일이다.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목적이 분명한 가운데 노력하며 산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갑(甲)이라는 것이 최고의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닌데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른다기보다 자주 잊고 산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어느덧 4월이 되었다. 한 달 전인 3월에는 16개월 만에 활동보조를 재개했다. 지인 중 한 명이 항상 내 가까이서 이야기를 듣다가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해주었다. 감격스러웠다. 한 달간의 보조인과의 기록은 기회가 되면 쓰기로 하고.

아무튼 보조인과 역사를 함께하려면 계약서를 써야 하는데 그 계약서 가운데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갑(甲)과 을(乙)의 입장이 바뀌었다. 당연히 이용자가 갑(甲)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잘못 읽은 것이 아닌가 싶어 동생에게 물었더니 자신도 이상했다며 이야기를 했다.

본디 갑(甲)이라는 것은 어떤 일이나 단체의 주체(主體)가 된다. 활동보조서비스는 시발(始發) 자체가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이용자인 장애인이 갑(甲)이 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 같은 조항들이 잘못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에게는 마지막 날 이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사실 그 후 얼마 뒤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주체가 장애인인 것은 맞을지 몰라도 보조인이 없으면 서비스 자체가 진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계약서 조항도 틀리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것을.

내 칼럼 소개란에 남들과 생각을 다르게 하기를 즐긴다고 서술했는데 이 것도 그 일환이다. 활동보조서비스 때문에 내 생각을 구체화시키고 바꿔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누가 갑이면 어떠하고 을이면 어떠하리. 그저 우리는 누릴 것만 누리며 살면 된다. 물론 그렇지 못할 시엔 그 권리를 쟁취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냥 모든 사람이 갑이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도 귀하기 때문이다.

싸이의 ‘챔피언’이란 노래 첫 소절에는 ‘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이 나라의 챔피언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그냥 즐겼으면 좋겠다. 당연하게 누릴 건 누리고, 받을 건 받고, 줄 건 주면서…….

모두가 챔피언이고, 모두가 갑(甲)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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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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