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움, 서러움, 억울함, 서글픔…….

자신의 자녀가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이 모양 저 모양의 심정들이 교차하며 진하게 고뇌로 가공되어 나타나는 아픔 조각들일 것이다.

“왜 하필이면 나한테…….”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나의 어머니께서 실명한 자식때문에 긴 한숨을 섞어서 자주 쓰셨던 말들이다. 세상과의 적응을 위해 낑낑거리다가 어머니의 그 푸념을 듣게 되면, 정말 살기가 싫어지고 마음은 점점 어둠을 향해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힘겨운 시간이었고, 요새 중병으로 쇠진해가시는 어머니를 대할 때마다 ‘한’이 ‘병’으로 전이되었음을 절절하게 느낀다. 그만큼 한 사람의 신체적․정신적 장애는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에 적지 않은 혼란과 부정적인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나는 복지관 모퉁이에 서서 틈 있을 때마다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복지관에 오면 자신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대신 해주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도 잘 풀어줄 것이며, 불확실한 미래도 선명하게 지표를 잡아주리라 믿고 왔을 텐데,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틀에 박힌 상담과 마치 진통제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걱정의 여백을 매꾸어나가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가슴 한 켠에 큼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그늘을 어떻게 치유해서 그들에게 평안을 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지만 뚜렷한 명약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나로호가 발사되고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나의 고민 속에 자리 잡은 장애인 부모들이 가진 번민에 대한 확실한 해답은 얼른 나타나지 않을 듯 싶다.

자녀들을 대신해서 강하게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정책과 제도에 대해 학습한 후, 대 정부 투쟁과 사회에 대한 설득을 계속해나가는 부모들의 모습은 매우 경이로우며, 앞으로도 자녀의 자립생활 실현을 위해 이러한 사회행동은 전문성과 응집력을 더욱 높여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따스한품' 정기 회의. ⓒ유석영

우리 복지관에는 ‘따스한품’이라는 부모 모임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내가 부모들에게 프로포즈를 해서 만든 모임이다. 30대 초반의 젊은 부모에서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20여 명이 매월 모임을 하면서 친밀도를 높여가고 있다.

대책없이 고민만을 계속할 수 없어 공통분모를 함께 찾아 나가자고 시작한 모임이 이제는 상호의존 체계를 넘어서서 가족애를 두텁게 형성하며 희미하게나마 ‘사회참여’의 나들목 근처를 향해 가고 있다.

유명하다는 강사를 모셔 정보와 지식을 쌓아가고, 열띤 토론을 통해 현실에 대한 타결점도 찾아보았다. 모두가 동의해서 자녀들과 함께 ‘장봉혜림원’으로 1박2일 힐링 겸 연수 겸해서 다녀오기도 했었다.

만나면 서로 의지가 되고 가지고 있는 고민의 색깔이 비슷해서 소통은 매우 원만했으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는 선뜻 자신감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버지들의 수가 하나 둘 늘어가며 활기도 있어 보이지만, “많이 행복하다”는 느낌은 아직도 적다.

장봉혜림원에서 힐링캠프. ⓒ유석영

장애인의 자립을 실현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정책과 제도 그리고, 생활환경이 바뀌고는 있지만 처해있는 현실과는 거리가 너무 멀고, 불만의 농도는 왠지 더 짙어져가는 느낌이 든다. 그로 인해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의 걱정이 담긴 가슴은 오늘도 냉각되어 몸살을 많이 앓고 있다. 자녀들이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보다 본인들이 늙어간다는 사실 속에서 그 시름은 더욱 깊어지는 듯싶다.

아직도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는 시간도, 돈도 더 많이 필요로 할 것이다. 아픔과 번민은 여러 날 계속될 것이며, 눈물이 배합된 노력 또한 끝나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바람이 뒤에서 밀고, 시간이 앞에서 끌어당기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 조금이라도 새로워진다면, 오늘보다도 내일이 희망적이라면 비록 그것이 고생일지라도 앞으로 가야 한다.

나는 장애인복지관장이 아닌, 평생 가슴에 한을 안고 살아오신 어머니의 자식으로, ‘따스한품’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부모들은 애물단지 자식을 둔 못난 사람들이 아닌, 자유와 행복의 마을로 그 자녀들을 인도해 가는 견인차로, 그렇게 함께 가야 한다. 그 약속은 우리가 공통의 문제를 논의했던 장애인복지관이라는 이 공간 속에서 함께 하는 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산자락 타고 돌아오는 바람이 그리 차갑지 않고 양지바른 언덕에 온기가 완연한 것을 보니 곧 봄이 오려나 보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손놀림이 부산해지고 여성들이 봄옷을 들추기 시작했으니 추위는 금세 가려나 보다.

그러나 답답하고 무거운 장애인 부모들의 가슴에는 아직도 봄은 멀게 느껴진다. 지체 말고 어서 새봄이 왔으면 좋으련만.

정부가 새로 들어서고 사람도 많이 바뀌었으니 ‘우리들의 봄’을 기대해도 되는지. 얼마 안 있어 새싹이 돋고 꽃도 많이 피어날텐데, 자식으로 인해 그늘이 짙은 부모들의 가슴에는 봄이 언제쯤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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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영 칼럼니스트
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 향상, 선한 가치의 창출과 나눔을 이념으로 청각장애인들이 가진 고도의 집중력과 세밀한 손작업 능력을 바탕으로 질좋은 맞춤형 수제 구두를 생산하며, 장애 특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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