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을 지칭하는 말들을 생각해보면 시대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실제 장애인의 인권을 언급하기 어려운 시절에 장애인은 그저 '병신'이나 '불구자' 정도로 불렸다. 1980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처음 제정되었을 때 장애인은 '장애자'였다. 그리고 2013년 오늘 우리는 '장애인'이라는 말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부른다.

물론 일부에서 '장애우'라는 말도 사용하지만 그건 공식적이지도 않고 많은 장애인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말로 생각된다.

그럼 영어에서는 어떨까? 아태장애인10년이나 장애인 단체의 국제교류가 빈번한 요즘, 우리는 장애인을 지칭하는 영어 표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까? 그저 영어라 그냥 사용하고 그 속에 담긴 말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먼저 보고 그걸 사용하면 되는 것일까?

최근 자주 등장하는 말 중에 Printed Disabled People이라는 말이 있다. 일각에서 이 말을 '독서장애인'으로 번역하고 사용하는데, 어떤 사람을 우리는 독서 장애인이라고 부를까?

정확히 영어에서 표현하는 Printed Disabled People은 Dyslexia (난독증)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즉, 문자정보로 된 어떤 내용을 읽을 수는 있으나 암기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증상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독서 장애인'이라는 표현이 엄밀히 말해 영어에서 말하는 Printed Disabled People과 다른 것은 아니지만 그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난독증을 가진 사람만 독서에 불편을 겪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Printed Disabled People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 영어에서 난독증이라고 사용하면 될 것을 굳이 다른 표현으로 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난독증(Dyslexia)이라는 표현이 의학용어로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뜻글자인 한자가 언어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는 우리에게 난독증은 '읽기 어려워하는 증상' 정도로, 구체적인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능하다는 뜻이다.

반면, 라틴어에 많은 어원을 두고 있는 영문 의학 용어들은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받지 않고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순화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둘째로 이렇게 순화해서 어떤 장애를 표현하는 것은 장애의 의료적 개념을 강조하기보다는 사회적 개념을 강조하기 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장애를 이르는 영어표현의 상당수가 보기, 듣기, 말하기, 읽기, 걷기 등의 신체 활동에 장애라는 말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은 것만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장애인을 영어로 표현하는 경우 Disabled People과 people(혹은 persons) with Disability를 많이 사용하는데, 어느 것이 더 좋은 표현일까? 정답은 상황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을 Disabled people하기 보다 의도적으로 people이나 persons 뒤에 with disability를 붙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것은 바람직한 표현이 아니다.

둘 다 의미 전달에 문제가 없으므로 한 가지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두 가지 형태의 표현을 함께 고루 사용하는 것이 좋다.

또 한 때 disability를 대신하여 Handicap이나 challenge를 사용한 적도 있는데 최근 이러한 표현은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음도 유의하자.

끝으로 Blind와 Deaf에 대해서 설명하면, Blind는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고, 명사형은 Blindness이다. 그러므로 Blind people이나 people(혹은 persons) with blindness라고 표현해야 한다.

Deaf 역시 blind와 동일하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는데, 우리나라와 같이 과거에는 영어문화권에서도 시각장애인 전체를 blind라는 표현으로 지칭했으나 최근 시각장애인 중에서도 잔존시력이 있는 시각장애인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들을 위한 각종 서비스가 개발되면서 blind라는 말이 시각장애인 중에서도 특별히 잔존시력이 없는 상태를 표현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영어로 된 문헌을 읽을 때는 그 문헌의 작성 시기를 먼저 확인하고 사용된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Deaf 역시 유사한데, 최근에는 deaf와 함께 Hard hearing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와 같이 영어는 우리말과 다른 점을 상당수 내포하고 있어 그 의미를 이해하고 옮기는데 신중해야 한다.

특히 최근 인천전략 등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우리말을 영어로 번역하거나 영어를 우리말로 작문해야 하는 일이 빈번한데 이러한 과정에서도 단어나 표현을 선택하는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앞으로 '세계는 지금'이라는 주제로 국제장애인계 동향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 그리고 우리 장애인계가 국제 장애인계와 교류하면서 발생하는 많은 일들에 대해 되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도와 편달도 필요하겠지만 우리 스스로 국제협력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님을 먼저 인식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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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준 럼리스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이자 아시아태평양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 부회장이다.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유엔 에스캅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세계 장애인계의 동향, 뉴스를 소개하며 시사점을 살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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