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사는 H 씨는 바우처 여행을 제안받고 지난 여수 엑스포박람회 악몽이 살아났다.

당시 그는 어느 여행사에서 다문화 가정을 위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여행 바우처로 무료로 여행을 갈 수 있다고 하여 여행을 갔었다.

H씨는 중증 산재장애인으로 혼기를 놓쳐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국제결혼 알선업체의 주선으로 네팔로 가서 맞선을 보고 결혼하여 3살과 1살짜리 아이를 두고 있다.

대구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여수까지 가는 관광버스에서 김밥으로 아침 겸 점심을 때우고, 오후에 엑스포 행사장에 도착하였다. H씨는 몸이 불편하여 이동에 어려움이 있고, 줄을 서서 장시간 기다릴 수가 없어 사실 갈 곳도 마땅하지 않았다.

여행사에서는 행사장 입구에 내려놓고는 저녁에는 쇼가 있으니 그 쇼를 다 보고 8시 반에 다시 내릴 장소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행사 안내원은 행사장 안으로 홀로 바삐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비가 내려 몸은 오싹하게 춥고 떨리는데, 비를 피할 곳도 마땅하지 않고, 행사장에는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도 없고 줄을 서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여행사 직원은 안내를 하거나, 편의를 돕기 위해 동행자를 살피는 것도 아니고, 비가 오니 안전과 건강을 위해 어떠한 조치를 강구하지도 않은 채 아예 보이지 않았다.

여행사 안내원의 전화번호를 알아보고, 전화를 해도 8시 반에 나오라고 하지 않았느냐고만 말하고 끊어버렸다.

비를 맞으며 아이의 우유를 겨우 먹이고 온몸이 젖어서 부들부들 떨면서 관람을 포기하고 주차장에서 좀 일찍 차를 보내어 달라고 여러 차례 전화를 하였지만, 오히려 차는 9시 반이나 되어서야 나타났다. 무려 6시간을 주차장에서 비를 맞아야 했다.

차를 타고 도착한 숙소는 간판은 모텔이지만 여인숙보다 못한 시설에 엑스포 행사로 인해서 손이 바빠서인지 청소조차 되어 있지 않았고, 쓰레기 더미에 파리와 모기가 득실대고, 방은 먼지와 지저분한 환경에 맨바닥에 더러운 홑이불이 고작이었다. 그야말로 50년대 피난촌 같았다.

그리고 식당에는 한 탁자에 8명씩 앉아 몇 가지 반찬을 가지고 나눠 먹어야 하는데, 비좁고 반찬의 질과 맛은 둘째 치고 양부터 충분하지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대구로 돌아왔는데, 온 가족이 감기에 들었고, 병원비가 여행을 공짜로 한 이익보다 몇 배의 경비가 들었고, 심한 감기로 한 달을 고생해야 했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한국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다는 행사가 이모양이냐는 핀잔아닌 핀잔을 들어야했다. 여행사의 실적과 잇속으로 아무런 안내 서비스나 돌봄이 없이 데려가서 내려놓고 다음 날 바로 다시 데려오는 형식적인 행사와 질 나쁜 식사 등 모든 게 민망하고 미안하고 부끄럽기마저 했다.

남편의 자존심과 남편 조국에 대한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아내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무료라고 데려가서 고생시킨 남편을 얼마나 무능하게 생각할까 등등 많은 고민이 들었다.

겨울이 되어 이번에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여행 바우처를 한다기에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니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도 높을 것이고, 엑스포의 여행사 장사꾼들과는 다를 것이라 여겨 저번의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만회할 겸 다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차를 타고 강원도에 다다르자, 눈이 많이 와서 목적지에는 갈 수 없으니 그 대신 부근의 한 사찰을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며 어느 주자창에 차를 대었다.

그 주차장에서 절까지는 언덕길로 걸어서 20분 이상 걸어야 하는 곳으로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여행사에서 안내를 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어떠한 편의시설도 없었다. 그나마 엑스포 행사와는 다른 것이 있다면 관광버스 안에서 기다릴 수는 있겠지 하는 기대였다. 그런데 차는 다른 차와 교대를 하기로 되어 있으니 전원 내리라는 것이었다. 결국 3시간 후 다른 차가 올 때까지 H씨 가족은 다시 길거리에 버려진 신세가 되었다.

이번 여행의 추억 역시 배신감과 울분, 그리고 여행사의 수익사업에 이용당했다는 점과 차를 장시간 탄 것과 거리에서 벌벌 떨며 버려졌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기억이 없었다.

눈 길 위에서 H씨의 가족은 떨면서 방치된 장애가족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어떠한 경우라도 다시는 정부가 지원하는 여행바우처를 이용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어쩌면 정부가 여행바우처라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국민들에게 홍보를 하기 위한 것이지, 이용을 많이 하라는 것은 아니므로 일부러 질 낮은 서비스로 스스로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고생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두 번이나 여행을 하고 고생 끝에 그것을 알았으니 내가 너무 바보이기 때문은 아닌가 싶었다.

여행은 집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낯선 곳에 내려놓는 낙하훈련이 아니다. 여행에 대한 상품의 충분한 이해와 감상을 위한 설명이 있어야 하고, 안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식사와 숙소의 편안함과 만족감을 주도록 해야 한다. 또한 건강과 안전에 대한 모든 조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문화를 즐기는 즐거움이 아니라 배신감과 버려짐은 너무나 아픈 상처가 되었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돈을 주니까 여행사는 비수기에 그 돈을 받을 목적으로 다문화 가정이나 장애인을 이용하고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돈만 챙기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바우처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질 관리도 하지 않고 단지 몇 명 명단을 제출하면 돈을 지불하니, 여행사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정부도 이런 악질에게 돈을 주고 장려하는 동업자가 아닌가 싶다.

정부는 이용자가 이렇게 인권침해를 받고 이용당하고 있음에도 연간 몇 백억 원을 들여 사업을 했노라고 자랑을 하고 있으며, 문화관광부 장관은 더 늘리겠다고 선심을 쓰고 있다. 정부와 여행사간의 유착관계를 보아 두 곳이 같은 집안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바우처는 관광 전문 회사나 협회에 맡기거나 지자체에 맡겨서는 안 된다. 지자체는 서류 양식만 맞으면 행정처리를 하는 책상 앞 기계들이다.

진정 제대로 문화바우처나 여행바우처를 하려면 다문화 전문 단체와 장애인 단체에 사무를 위탁해야 한다. 현재 장애인 단체가 여행이나 문화바우처를 수탁하여 수행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다음으로 철저한 질 관리를 위한 모니터링을 실시해야 한다. 단지 차를 타고 어디를 갔느냐가 아니라 그 곳에서 진정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가를 평가해야 한다.

장애인 단체가 이러한 일을 맡아 한다면 회원들의 후한이 두려워서라도 절대 서비스 질 관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H씨는 여행사에 항의를 해 보았지만, 여행사는 우리가 약속을 어긴 것이 있느냐며 계약관계에서 서비스나 편의 내용은 없으니 책임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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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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