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언엄마가 영국에서 보내는 첫 번째 편지. 오늘은 어쩌다가 이 아줌마가 영국에서 편지를 보내게 되었는지 얘기하고자 합니다.

한 동안 에이블뉴스에 글쓰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지요. 저희 가족은 지금 영국 웨스트요크셔주에 있는 인구 80만 정도의 '리즈(Leeds)'라는 곳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흔히 '리즈시절'이라고 얘기할 때 언급되는 그 도시 리즈입니다.

이 곳 공원에서 더 없이 밝은 모습의 우리 아이들. 옆을 지나가는 영국인 여자아이가 휠체어타고 있는 주언이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휠체어탄 성인 장애인의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어린이의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이은희

한국에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영국의 사회시스템에 대한 얘기를 접하고 막연하게 내 아이들, 특히 주언이가 잘 갖춰진 체계 속에서 치료받고 공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짧은 준비 끝에 지난 10월부터 영국에서의 삶이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새로 이주해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모두 공감하실 것입니다. 하물며 언어, 문화, 관습 등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이국 땅에 자리를 잡고, 심지어 어린 아이들 셋을 데리고 살아가기를 결정한다는 것은, 짐작하시겠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경로로 영국의 사회시스템, 예컨대 의료제도, 교육제도, 장애인정책 등을 알아보면서 더 나이 들기 전에 감행해볼 만한 좋은 경험이 될거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저희 아이들, 특히 주언이에게도요. 그래서 미뤄두었던 제 공부를 핑계로 가족 모두가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윤택하고 편안한 삶은 장롱 깊은 구석에 처박아 두었고요, 고생길로 뚜벅뚜벅 걸어왔다고 생각하면 정확하겠습니다.

밝은 모습의 주언이. 사진을 통해 보니 훌쩍 자라있는 것 같다. ⓒ이은희

아, 혹시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가 출국하기 전에 한국의 의사선생님들로부터 영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더러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라에서 무료로 제공하기 때문에 질적인 부분은 보장하기가 어려울 거다는 정도의 내용이었는데요, 저 역시 한국 의료진의 실력과 서비스 품질에 대해서는 결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언이가 현재 특별한 병리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니고, 평생을 같이 해야 할 재활치료와 교육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 곳의 재활치료 이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차별없이 교육받고 살아갈 수 있는 기회 등을 경험하고 싶었다는 얘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짧은 기간 안에 정착을 위해 겪은 일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과정에서 상처받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감동받기도 하였지요. 확실한 것은 분명 우리나라와는 다른 사회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제도가 더 우월한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은 응당 나중으로 미루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서 경험하는 일들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전하고, 제가 한국에서 겪은 것과 비교해보고, 한국사회가 개선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장애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시선에서 문제제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 곳에 정착한지 석 달이 되어가지만 낯선 이 땅에 정착하고 마음 붙이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노력을 요하는 일입니다. 제가 전하는 소식에 대해 한국에 계신 많은 분들의 응원이 저와 주언이를 비롯한 저희 가족 모두에게 힘이 되리라 믿고, 응원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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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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