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동해역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북평오일장이 열리는 삼일과 팔일 중 삼일에 맞춰 동해로 떠나온 것이다.

동해역에서 장터까지는 이키로 남짓. 버스도 있지만 가을 햇살을 즐기고 싶어 걸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길이 변해 있다. 얼마 전 왔을 땐 보도가 울퉁불퉁 휠체어로 걷기 버거워 버스를 타고 갔지만 지금은 보도가 매끄럽게 정비돼 있어 잘 생긴 보도를 따라 걸어갈 수 있었다.

파란하늘은 높기만 하고 언제 태풍이 지나갔었는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만큼 상쾌한 날씨다.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발걸음을 가볍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기 그지없다. 여행하는 삶을 살겠노라 생각하니 정지된 삶을 간질이는 비릿한 포구의 냄새가 난다. 거리에서 감지된 삶의 맥박은 잡히지 않을 것처럼 희미했지만 미미한 삶의 자국들은 이방인의 가슴에 또렷하게 각인됐다.

동해항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다리만 지나면 북평장에 도착한다. 보행신호가 떨어진 후 건너려는데 M의 휠체어가 움직이질 않는다. M과의 동행한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간날 때마다 틈틈이 함께한 나름 여행고수라고 M도 자신할 것이다.

삼 년 전 제주에서 일이다. 당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동료들 15명과 보조인 3명이 제주도로 가을 여행을 떠났다. 여행 마지막 날 숙소인 풍림콘도에서 여미지 식물원까지 휠체어로 걸어가기로 했다. 바다를 옆에 끼고 걸어가는 길은 낭만가득 한 길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걸음은 흥에 겨웠다. 여러 명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걸어가는 풍경은 제주 사람들에게는 이색적인 풍경으로 보였는지, 길가 농장에선 귤을 한보따리 따서 우리에게 건네며 즐거운 여행하라고 격려까지 해준다.

여미지 식물원까지 가는 길은 강정마을을 지나가야 하는 코스다. 당시 강정마을은 해군기지가 '구렁비' 바위가 사라지느냐 마느냐를 두고 논쟁이 심할 때였다. 하지만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강정마을 중간 쯤 지날 때, 일행 중 한 명의 휠체어 바퀴가 펑크가 났다. 다행히 근처 인가 앞마당에 휠체어가 멈춰 서고 그 앞마당은 '동해물가든'이라는 식당 앞마당이었다.

주인장께 이해를 구하고 일일구에 연락을 취했다. 일일구에선 서귀포시 복지과에 연락을 취해주고 복지과에서 자립센터에 연락해 휠체어를 고칠 수 있는 기사를 보내준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식당 사장님은 자신의 마당까지 찾아온 손님이라고 음료를 내왔다. 음료를 마시며 사장님은 제주와 강정마을 자연생태계를 상세히 설명해 주셨다. 조상 대대로 강정마을 앞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일궈온 토박이들의 절박함이 전해졌다. 그 설명과 더불어 해군기지건설에 대한 반대 입장도 표명하셨다. 제주를 사랑하는 사장님의 생각을 전해 주시고 사장님은 집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우린 휠체어 수리 기사가 도착할 때 까지 무료한 시간을 보낼 묘안을 짜냈다.

우린 윷놀이를 하기로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여행 때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윷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 윷을 이럴 때 유용하게 쓸 줄이야. 우린 편을 짜서 신나게 윷놀이하고 있었다. 한참 윷놀이에 정신 팔려 있는데 A/S 기사가 도착했다. 펑크 난 휠체어 바퀴는 그들의 손에 말끔하게 고쳐졌다. 여행을 하다보면 휠체어 때문에 곤란을 격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조금은 당황하지만 그때 그때 해결책을 찾아 해결하고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 때도 함께한 일행 중 한명이 M이다.

오십년 전통의 옛날 국밥 집. ⓒ전윤선

M은 이번 동해 여행도 함께 했다. 새로 장만한 휠체어가 갑자기 신호등 앞에서 멈춰서자 당황한 여행고수 M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당황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멈춰선 휠체어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난감했다.

M은 휠체어서 내려 땅바닥에 앉았다. 그리곤 휠체어 업체에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알리고 방법을 모색했다. 업체기사는 이런저런 방법을 전화로 알려줬다 하지만 업체직원의 긴 말을 한마디로 보조인에게 전달하기엔 역부족이다. 보조인에게 전화를 바꿔주니 업체직원의 상세한 설명에 보조인이 휠체어 의자를 열고 이것저것 만져본다. 다행히 보조인은 휠체어 수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가 평소에도 휠체어가 이상이 있으면 이렇게 저렇게 만지작거리면 움직이곤 했다. 보조인이 휠체어 의자를 젖치고 전선을 만지작거리니 다시 휠체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찌나 고맙던지 그를 바라보는 일행의 눈빛은 맥가이버라도 본 듯 고맙고 또 고마웠다.

M의 새로 장만한 휠체어가 운행 중 멈춰 설 것이라는 예상은 전혀 못했던 터라 더욱 아찔하기만 했다.

또한 횡단보도에서 출발하기 전에 멈췄으니 이 또한 다행인 것이다. 만일 도로 한가운데 휠체어가 멈췄다면 얼마나 위험한 사태가 벌어졌을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우리는 한숨 돌리면서 오일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일장엔 사람들로 북적이며 가을 햇살이 좌판에 널려있다. 덜 익은 대추는 푸른색에 빨간 점이 박혀있고, 태풍에 떨어진 못난이 사과는 할머니 바구니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어물전엔 꼬득꼬득 말린 이면수와 동해바다를 막 탈출한 이름 모를 생선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장터 골목을 따라 국밥집으로 향했다 주인장에게 인사를 하니 반갑게 맞아준다.

"어머나 서울서 또 오셨네요. 언니가 다녀가고 난 후론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휠체어 타신 분들도 자주 오더라고요. 우리 집이 유명하긴 하나보네요."

주인장은 손님이 늘었다며 신이나 있다. 오십년 전통을 자랑하는 '예날장터국밥'집에서 소머리 국밥과 순댓국, 아바이 왕 순대를 시키고, 묵호 '바다마을' 민박집 사장님께 기별을 넣었다 사장님은 척수손상으로 장애를 갖게 된 분이다.

몇 년 전부터 동해를 여행할 때 마다 바다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잠자리 걱정없이 동해 일대를 여행할 수 있었다. 동해로 오기 며칠 전 전 사장님께 미리 연락을 취해 일행이 동해 쪽으로 여행을 간다 했더니 사장님은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국밥이 나오기도 전에 전동휠체어를 타고 사장님이 도착했다 반갑게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 동안 국밥이 식탁 위에 차려졌다. 오십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밥은 그 맛이 일품이다. 옛날장터 국밥은 오래된 동해의 맛 집으로 동네 사람들한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장날마다 손님이 바글바글 하다.

순댓국과 소머리국밥이 주 메뉴다. 국밥을 시키면 따라 나오는 밑반찬은 깍두기와 양파절임, 김치, 풋고추, 된장 등 기본 반찬이 세팅되고, 곧이어 질박한 뚝배기에 소머리 국밥이 보글보글 끌면서 식탁 위에 내려앉는다. 멀건 국물 속에 고기는 얇게 썰어져 있고 그 양도 적당하다. 국물에 파를 듬뿍 넣고 소금으로 간간하게 간을 하고 하얀 쌀밥을 국물에 속에 넣는다. 한 숟가락 떠서 그 위에 잘 익은 깍두기를 얹고 입안으로 골인한다. 그 맛은 지금까지 먹어본 국밥 중에 최고의 맛이다.

지방을 여행다보면 가끔 운 좋게 오일장을 만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장터 국밥은 빼놓지 않고 먹어본다. 그런데 북평오일장 국밥은 지금까지 먹어본 국밥 중에 으뜸인 것이다. 동해를 여행할 때 마다 일부러 장날을 맞춰 여행 올 정도다. 그렇게 게 눈 감추듯 국밥 맛에 푹 빠져 한 그릇 뚝딱 다 비웠다.

북평장엔 여느 시골 장처럼 다양한 물건들이 좌판에 진열돼 있다. 낫과 호미, 무쇠 솥까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물건들로 풍성하다. 이 곳 저 곳을 구경하고 있는데 '천년을 사는 연꽃을 키우기'란 현수막이 눈에 띈다. 작은 간이 좌판에 연꽃 씨와 어릴 때 갖고 놀던 고무 말이 진열돼 있다. 손안에 들어올 만한 말은 노란 고물 줄에 작은 공기 주머니가 연결돼 있어 주머니를 누를 때마다 말은 조금씩 움직인다.

특별한 장난감이 없던 어린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말을 사서 가지고 놀던 추억이 오일장의 연꽃 씨와 함께 좌판 위에서 달리고 있다.

한참을 넋 놓고 보다가 발길을 돌린다. 북평오일장은 가는 곳 마다 눈길을 머물게 한다. 너무나 많은 물건들과 정겨운 시골인심이 더해지고 장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엿장수 맘대로 가위를 두들기는 각설이다.

시골장터에 흥을 더해주는 각설이는 어깨에 엿판을 메고 누더기 옷차림에 까만 고무신을 신었다. 한복엔 예뿐 천으로 옷 중간 중간을 기웠고 머리엔 하얀 천을 질끈 묶어 각설이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자~엿이요! 엿! 엿장수 맘대로 엿을 드릴 테니 엿 먹고 가세요!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엿장수는 소리 높여 가위장단에 흥을 실어 춤을 춘다. 시장 구경 나온 사람들은 엿장수 주변을 빙 둘러 함께 춤을 춘다.

이런 풍경은 시골 장에서만 볼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하며 다시 추암해변으로 발길을 옮긴다.

천년을 사는 연꽃. ⓒ전윤선

장터 풍경. ⓒ전윤선

• 가는 길

청량리~강릉행 무궁화 열차

3호칸 전동휠체어 좌석, 동해역 하차

요금, 평일18,300, 주말. 19,200 장애할인 50% 적용

• 무엇을 먹나

북평오일장 (3.8일)장

메밀전병, 메밀묵, 잔치국수, 막걸리 등 2천 5백원 부터

옛날국밥 6천원부터

휠체어 접근가능

• 화장실

무궁화호 장애인 화장실

북평오일장터내 장애인화장실

• 어디서 자나

바다마을 민박 넓은 객실과 편의시설 잘 갖춰져 있다

7만원부터, 전화 010-6373-8505

• 문의

다음카페-휠체어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댓글열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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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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