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모금광고. ⓒ서인환

모순어법(옥시모론)이란 ‘기가 먹먹하게 하는 침묵’과 같이 의미상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말을 함께 사용하는 어법이나, 반대로 말하여 강조하는 어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슬프도록 아름답다’, ‘작은 거인’, ‘현명한 바보’, ‘소리 없는 아우성’, ‘침묵의 소리’, ‘달콤한 쓴맛’, ‘어두운 광명’, ‘칠흑의 하얀 밤’, ‘심각한 농담’, ‘헛된 진실’ 등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표현들이 많다.

이러한 기법을 광고에 활용하면 재미가 있고, 관심을 끄는 효과가 커진다. '쓸수록 버는 카드'란 표현을 사용한 LG카드사의 기법도 좋은 한 예이다. 국제화재의 광고는 고객이 모두 가족이라서 '고객이 한 명도 없는 보험회사'라는 카피를 사용하였다.

미국 재난청의 광고는 이미 무너진 집을 보여주면서 그 속의 글자 ‘PLAN'을 사용하여 재난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우리 딸 하늘나라에 잘 있나, 전할 수 없는 마음까지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향합니다.’라는 SK텔레콤의 광고는 모순어법과 눈믈을 조화시켜 효과를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슬픔은 가시적일 수 있으나, 눈물은 진실하여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사망이 우울증 환자수를 오히려 절반으로 줄게 했다거나(다이애나 효과), 최초의 언어인 울음을 자극하여 유아기의 상처를 다시 경험하게 함으로써 프라이멀 요법을 노리는 광고도 있다.

이러한 눈물과 반어법의 광고가 선거와 복지계의 광고로 사용되고 있다.

"이 아이를 기억하지 마세요. 이름도, 나이도, 어디가 아픈지도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이 돕지 않는다면 어차피 세상을 곧 떠날 아이니까요. 이 아이에게 관심을 주지 마세요. 꿈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이 뭔지 궁금해 하지 마세요. 당신이 돕지 않는다면 어차피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리 냉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당신을 기다립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위의 광고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사용한 모금광고이다. 이 광고는 원혜진 이노션 CD(광고제작책임자)가 기획한 것으로 이노션월드와이드 프로덕션, 원더보이스, 617 등의 기획사와 성우 등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것이다.

새벽에 텔레비전에서 하는 이 광고를 보고, 잠도 덜 깬 상태이지만 눈물을 흘렸고, 당장 후원금을 보내게 되었다는 고백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병원에 광고 제작진이 방문하였을 때, 채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 목숨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죠니 펜부럴이었다.

사회복지 재단의 매출이나 규모는 정치적 역량가, 연예인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와 얼마나 광고기획을 잘 하는가가 좌우한다.

월드비전에 이어 최근 부상하고 있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현대자동차와 함께 어린이 성폭력예방 광고디자인 공모전을 하는 등 광고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반어법이나 모순어법 광고를 뜯어보면, 상당히 적의적이고 배타적이다. 도움도 안 되면서 동정심을 가지거나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렇게 냉정하지는 않은 인간이니 이 광고를 보고 무엇인가 해라. 즉 후원금을 내라는 것이다. 직접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은 가장 노골적 표현으로 후원을 강요하고 있다. 자존심을 건드려서, 눈물을 자극해서 말이다.

이것은 사회의 그늘진 곳이 마치 자신의 무관심 탓이고 무엇인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일종의 마취성을 가진 독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정치인이 선거에 이용한다면, ‘당신은 저를 찍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저번에도 공약에 속아 고통을 받고도 아직도 무지개빛 공약을 믿고, 학연과 지연에 표를 주면서 아무런 자기권리도 찾지 못하는 바보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마음이 약하고 순수하여 다시 속을 것입니다’로 표현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상당히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반발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광고가 복지를 위한 광고이고 보니 동정심부터 생긴다. 거부감이 아니라 죄책감을 들게 한다. 도움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왜 내어 놓지 않느냐고 질책을 받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원망으로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복지에 대한 호소가 순수한 것인가의 문제이다. 엄청난 기획력과 기법을 사용한 것이 순수성을 유지하는가 이다.

결과적으로는 실적이 높으니 성공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기법의 효과인 것이다. 정말 필요한 사람 중 말을 하지 못하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말을 잘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복지는 말 못하는 사람을 오히려 챙겨야 할지도 모른다.

대형 기업과 정치인, 광고 전문가로 팀을 만들어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오히려 거부감을 주지는 않는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이는 상품이 되고, 효과는 다른 사람이 본다. 이러한 강력한 자극제는 당시는 효과적이지만, 더 강한 약이 아니면 만성이 되게 만든다.

이러한 기획은 재원 배분의 불균형을 가져오고, 복지권력을 만든다. 우리 이웃에 많은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하고자 시설에서 나와서 분투하고 있으나, 개인이라 시민들은 시설을 돕고자 한다.

공동모금회 역시 자립생활센터를 지원하기보다 복지기관에 편중하게 된다. 그래서 권력이 된다.

도움을 기다리는 시설에는 경제적 불황으로 도움의 손길이 끊어진 지 오래이지만, 이러한 기획적 광고모금으로 인하여 그나마의 제한된 손길이 한 곳으로 집중되고, 그 외는 더욱 궁핍하게 된다. 물기가 없는 곳에 주사기를 꽂아 그나마 수분까지 뽑아가는 효과가 나타난다.

TV광고를 할 줄 몰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TV광고할 돈이 없거나, 그러한 돈이 있다면 당장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여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한다.

이제 도시에서 골목상권이 무너지듯, 사회사업에서도 대형의 독점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며, 모금회의 권력화에 수급자들은 길들여지고 있다.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억도 하지 말고, 신경도 쓰지 말라고 하며 기를 죽이고 죄책감을 가지게 한다. 결과적으로 모금액만 높이면 그러한 상처는 광고자나 모금 주최자는 알 바가 아닌 것이다.

진정 '기억하지 마세요'나 '신경쓰지 마세요'는 그들이 국민의 인간성이나 형편은 신경쓰지 않겠고, 광고 효과에만 신경을 쓰겠다는 의지는 아닐까?

부유한 사람들이나 정치 입문하는 사람들이 재단을 만든다, 기부를 한다는 둥 방송을 타지만, 사실 자신도 도움을 받아야 함에도 이웃을 위해 선뜻 내어놓는 작은 손길이 우리에게 더욱 따뜻함을 준다.

부자가 버는 능력이 있어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쓰지 않고 외면하여 돈이 모아져 부자가 되었다는 말이 있다. 능력이 되는 사람이 오히려 내어놓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금을 해 보면 그것이 사실인 것 같다. 이제 이러한 순수한 사람들에게 ‘지금 돕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는 말은 지나친 광고의 개입으로 순수성을 헤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대형 기획으로 만들어지는 가수의 출현 뒤에 순수하고 가난한 진정한 무명가수가 있는 것처럼 그래도 복지계는 기획이나 광고의 효과에서 벗어난 순수한 영역이고 싶은 것이다.

장애인단체 워크샵 등에 가보면 홍보방법과 광고에 대한 강의가 늘고 있다. 재원이 부족한 사람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겠으나, 포장을 가르치고, 실적을 가르치는 것이 웬지 속된 기술인 것 같아 씁쓸함을 준다.

이것이 대형 연예인과 광고사의 도움을 받는 한 단체에 대한 단순한 질투에 불과하기를, 다른 것들은 기우이기를 바란다.

미국연방 재난방지청의 재난 예방 광고. ⓒ서인환

감동을 주는 착한 광고를 강조하면서 쏘나타 427대의 차체를 금속에 부딪치며 오르골과 같은 방식으로 연주하도록 한 현대자동차의 ‘메가 오르골 캠페인’이나 홈플러스의 ‘러브파킹 캠페인’처럼 기존방식보다 획기적 방식이 광고 효과가 크다는 제작자는 이미 광고와 복지가 카르텔을 형성하여 지배적 위치에 오른 것 같다.

또한, 제작사와 제작자가 유명세를 타고 인기인으로 주목받는 이상 이미 순수한 재능기부자의 위치가 아닌, 기부의 본전을 뽑은 순수하지 않은 성공자의 자만이나 만족과 승리감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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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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