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나에게 청각장애는 내가 가진 단점이었고, 동정을 받을만한 그런 류의 성질이었으며, 나를 평생 따라다니는 무시무시한 ‘낙인’이었다.

엄격한 학교 교칙에 머리를 질끈 묶으니 드러나는 귀걸이형 보청기는 마치 나의 치부를 드러낸 것만 같았다. 사람들의 호기심섞인 시선이 부끄러웠고, 때로는 내가 가진 청각장애가 미웠다.

주변으로부터 대학교에는 장애학생 지원도우미가 노트북으로 문자통역을 해주니 걱정말고 대학교에 가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문자통역을 받게 되면 나를 쳐다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마치 동물원 안의 원숭이마냥 쳐다볼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미리 걱정되고 싫었다.

아니, 한편으로는 내 장애를 보완해줄 수 있는 문자통역 도우미제도가 있다는 것이 내심 반가웠다.

이 복잡하고 상반된 감정은 어쩌면 지난 초·중·고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가만히 있어야 했던 습관이 만들어낸 후유증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12년간 알아듣지 못하는 수업시간을 버텨낸 것은 내가 남들에게는 없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청각장애가 있으니까 알아듣지 못하는거야. 다른 애들은 다 잘 알아들으니까 어쩔 수 없어. 나만 가만히 있으면 돼."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어떻게든 나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렇게 질풍노도의 사춘기라 불리는 고등학교 시절은 ‘청각장애’라는 큰 장벽 앞에서 어영부영 지나갔고 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장애학생 지원도우미 제도를 이용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했다. 과에서 제일 무섭다는 4학년 복학생 선배 두 명이 와서는 '우리가 너를 돕겠다, 뭐 필요한 것 없냐'라는 물음에 나는 얼어붙은 채 몇마디 하고 도우미 일지에 도움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싸인을 했다.

"괜찮아요. 도움은 필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싸인을 했으니 도우미제도를 이용했다 해두자.

부모님과 친구들은 용기를 내보라고 했지만 12년이나 수업에서 벌어진 차별을 당연한 듯이 납득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제 와서 권리를 찾으라 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청각장애로 인한 모든 차별의 원인은 ‘내’가 청각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너무 깊게 박혀 있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대학에서 뜻을 찾지 못한 나는 2학년 2학기를 끝으로 휴학을 해버렸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딸이 ‘대졸’ 학력을 갖길 원하셨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대학교는 졸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대로 복학을 하기 싫었던 나는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잘 되어 있는 대학교에 편입하게 되었다. 수화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 수화를 제대로 접한 것도 이 때부터다.

그렇게 편입한 대학교 첫 강의가 있던 날, 강의실 앞자리에는 수화통역사가 있었고 농인들은 삼삼오오 앉아서 수화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화를 몰랐던 내 옆 친구는 수화통역 대신 문자통역 도우미가 앉아서 노트북을 꺼냈다. 그럼에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이 너무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대학교 수화통역 모습. ⓒ소민지

이윽고 교수님이 들어오시면서 강의가 시작되자 내 옆에 앉은 도우미의 손이 쉴 새없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 날, 나는 내 나이 23살 최초로 스스로 수업 시간에 공부를 하고 필기를 했다. 그 감격스러우면서 복잡미묘한 기분, 아마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것이다.

편입한 대학교에서는 일상 대화를 할 때 대다수 사람들은 내가 청각장애라는 것을 알면 바로 수화를 썼다. 수화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입모양을 정확하게 하는 등 기본적인 에티켓은 지킬 줄 알았다.

장애를 차별로 여기지 않는 학교 환경에서 나는 ‘청각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고, 늘 답답했던 의사소통의 문제를 수화 혹은 수화통역을 통해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청각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모든 것들은 사실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점차 알아가게 되었다.

청각장애 자체를 개인의 잘못으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적 편견과 인식

청각장애를 내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니 청각장애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혼돈을 겪던 불쌍하고 측은한 내가 아니라, 수화를 쓰며 농인으로서 정체성을 깨닫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고민하는 내가 있었다.

지금 농인으로서 정체성을 명확히 갖춘 나는 마음이 편하다.

지금도 수많은 농학생들이 청각장애가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청각장애를 탓하고 미워하며 꿈을 포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청각장애는 내 잘못이 아니며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사회에서 장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뿐이다. 그것이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회에서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몫이다.

덧붙여 장애로 인한 차별을 꾹꾹 억누르며 지내고 있을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청각장애를 가진 것이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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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지 칼럼리스트
양천구수화통역센터 청각장애인통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새내기 사회인이다. 청각장애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청각장애인 특유의 문화 및 사회, 그리고 수화에 대해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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