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김해영 씨. ⓒ전윤선

"돈과 배경 없이도 스무 살 인생은 아름답다. 결점도 당당하게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인생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라!"

134센티미터 국제사회복지사 김해영 씨가 이 땅에 청년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사람은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고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그 때 자신의 뒷모습을 한 번 되돌아보면 현실에 안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의 평안함이 곧 위기로 다가 올지 모른다. 문제는 더 이상 무엇을 바라거나 소망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이 불행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상의 행복에 묻혀 살아가는 중에 더 이상 열정도 없고, 간절히 소망하는 것도 없이 사는 것은 아주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해 자신을 연마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타성에 젖은 자신이 새롭고 희망적인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을 것이다.

작은 키에도 아프리카 오지에서 십년 넘게 무보수로 어렵고 힘든 청소년들에게 편물 기술을 가르치며 봉사활동을 한 작은 거인 김해영 씨를 만났다.

처음 본 그녀는 작은 체구지만 얼굴엔 환한 미소로 긍정의 에너지가 넘쳤다. 당당하고 호탕한 말투,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근황과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국제사회복지사로 아프리카에서 일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편물기술을 가르치러 갈 당시엔 편물 기술자로 한국은 물론 세계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 대내외 적으로 인정을 받은 기능인이었다.

금메달을 딴 후 기능인으로 인정받고 대접받고 살 수 있었지만 그녀는 대학 의상학과를 지원했다. 그런데 대학에 떨어지고 나서 그동안의 힘든 과정을 거치면 몸을 돌보지 않아 심한 몸살과 과로로 쓰러져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그 후 이 대로 죽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두 줄의 광고를 보고 아프리카로 가면 자신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재능을 나눠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광고는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있는 굿 호프 직업학교의 양재와 편물 교사 단기 자원봉사자 모집 광고였다.

그 광고 옆 거창고등학교의 직업의 선택이란 십계명을 보고 그녀는 머릿속이 맑아지고 안개가 걷히는 것 같이 눈앞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거창고등학교의 십계명은 다음과 같았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모든 조건이 갖춰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앞다투어 모여 드는 곳은 절대 가지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사회적 존경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하지 말고 가라.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김해영 씨는 그 기사를 반복해서 일고 또 읽으면서 머리가 가벼워지고 앞날에 낀 안개가 걷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세상에는 얼마나 할 일이 많은지를 직업선택의 십계명을 읽는 동안 깨달았다고 한다.

돈도 받지 않고 14년의 동안 봉사활동하면서 지나온 아프리카 생활은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더운 지방이라 바나나를 실컷 먹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처음 한 달 동안은 배가 고파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는데, 돈이 있어도 음식을 살 수 없는 환경이었이라 바나나도 한 달 만에 먹어볼 수 있었다고.

그리고 김해영 씨가 있는 굿 호프 학교는 남부 칼라하리사막 입구에 자리한 사막지대다, 넓은 하늘과 따뜻한 햇살, 뜨거운 태양, 동서남북으로 둘러봐도 산이 하나도 없는 광활한 땅, 얼굴 까만 사람들,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그녀 가슴에 담겨지고 있었다.

기후나 사람들은 따스했어도 타국에 오랫동안 나가 있으면 향수병도 생기기 마련. 그 곳 사람들이 아무리 잘해주고 따뜻하게 대해도 고향에 대한 향수병은 참기 힘들었다.

회의감이 들면서 혼자말로 "내가 여기서 뭐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에 저녁만 되면 한국이 그리웠다.

어느 날 수업을 끝내고 사막에서 지평선 위로 지는 석양을 보면서 사막의 입장이 되어봤다. 문득 든 생각이 이 칼라하리 사막은 내가 여기 오기 전부터 있었고 내가 떠나도 있을 것이고, 저 사막위로 해도 지고 바람도 지나가고 벌레도 지나가고, 모두 지나는 구나, 삶이란 바람처럼 모두 지나가는 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외롭거나 힘들지 않고 자신이 어디에 있든 모두 지나 가는 것이니 한국이든 미국이든 아프리카든 내가 여기서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구나 생각을 하니 더 이상 외롭지도 그립지도 않고 오늘을 즐거웠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를 보츠와나에서 더욱 오랫동안 머물 수 있게 한 것은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는 것. 그런 아프리카가 정말 가슴 따스한 곳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 곳에서는 김해영 씨의 신체적 장애를 특별하게 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학생들은 작은 키가 귀엽고 하얀 피부가 예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첫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가 그녀를 밀치면서 장애를 갖게 되었다. 그 후부터 집안에 나쁜 일이 생기면 모두 그녀의 탓으로 몰아 붙였다.

초등학교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아버지가 자살하고 어머니는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그 후로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남의 집 가정부로 일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 남의 집 가정부로 삼년동안 일하고 나서 한남직업학교에 입학해 편물기술을 배웠다. 편물기술자로 일하면서도 그녀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밤에는 독학으로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쳤다.

이렇게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장애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살아선지 더욱 보츠와나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는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어 참 다행이었다. 굿 호프 직업학교는 사실 보츠와나 사람들 입장에서는 외국인이 운영하는 학교다. 보츠와나 정부의 지원도 없어 어려움이 많다.

처음 보츠와나로 갔을 때는 교사로 갔기 때문에 학교 운영은 잘 몰랐다. 하지만 그 곳에서 교사생활 삼년 정도 지났을 때쯤 학교 재정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각지에서 보내주던 후원금이 끊기면서 학교가 큰 위기를 맞았다. 선생님들도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고 학교는 폐교 위기에 몰렸다.

모두들 떠난 학교에 혼자 남은 그녀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던 차에 학생들 몇 명이 김해영 씨를 찾아왔다 학생들은 자신들을 가르쳐 달라며 학교를 지켜주고 학생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했다. 그 때 학생들을 생각하며 다시 학교를 일으켜 세울 것을 다짐했다.

그 후 다시 후원자를 모집하고, 편물 기계를 후원해 줄 후원사를 찾아 한국과 일본 미국으로 뛰어 다녔다. 그렇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학교 운영을 배우고, 후원자와 마음을 나누며 굿 호프 직업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그녀는 학교를 저버리지 않고 지켜냈고. 그 후로 학교는 잘 운영되고 있었다.

학교가 안정되면서 지금의 안정이 내일의 평온으로 이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타성에 젖어 있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로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서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보츠와나에서 보따리를 싸서 미국 '나약'대학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다시 컬럼비아대학원 1년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서 학문에 대한 재미를 더욱 알게 되었다.

물론 대학과 대학원 과정은 장학금을 받고 모자라는 금액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학비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국제사회복지사로 체계적이고 안정되게 세계를 무대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대학원을 마치자 마다 지인을 통해 운둔의 땅 부탄에서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부탄은 수공예 자수로 유명한 나라다.

그 길로 부탄으로 달려가 부탄의 공주를 만나 기계자수와 손 자수의 장점을 알리고 직업학교를 세우는 과정을 브리핑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갔다. 일을 시행하는데는 공주의 도움을 청했다. 부탄의 공주는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약속했고, 그 일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렇듯 역량있는 사람이기에 정치계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했다.

정치라는 것이 결국은 설득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목표를 대신해서 일해야 하고, 술수도 쓰고, 전략도 쓰고, 필요하면 기만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자신과 잘 안 맞는 것 같아 거절했다. 그리고 다시 아프리카로 떠난다.

현재 몸담고 있는 밀알복지재단 해외 희망사업본부장 직을 맡으면서 더욱 바쁘게 국제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되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김해영 씨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시면 그녀의 자서전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진실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며 살아온 그녀의 인생이 담긴 교과서같은 책이다.

때로는 존재 자체만으로 기적을 믿게 하고, 존재 자체만으로 희망을 품게 하는 사람이 있다. 김해영 씨 처럼 힘든 역경을 이겨낸 사람의 증언이 현재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희망을 길을 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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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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