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의 일주일이 후딱 가버렸다. 찰나처럼 지나간 방콕여행은 어떨 땐 빈 공간같이 허무했다. 너무 짧은 여행이어선가, 아님 지독한 인도여행을 끝낸 보상 받아야 할 것같은 휴식 여행이어서 인가.

태국은 천국에 온 것 같았지만 뭔가 아쉬움이 크게 남는 곳이다.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라도 하듯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방콕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매일 일찍 일어나 숙소 주변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을 시작했고, 출근길을 재촉하는 시민들의 표정을 살펴보는 것이 태국에서 머무는 일주일 동안 나의 아침풍경이다. 그리곤 숙소 옆 구멍가게에 가끔 들러 물건을 사며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는 샴푸와 세숫비누를 사려 하는데 소통이 전혀 되질 않는다. 짧은 영어로 설명했지만 가게주인은 멍~해 있다. 쥔장의 표정은 이렇게 보였다.

"아니, 저 외국인이 도대체 뭘 달라는 거야, 이 먼 곳까지 휠체어로 왔으니 대단하긴 한데."

그녀의 표정은 나를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휠체어를 이리저리 만져본다. 그녀의 친절한 행동에 눈인사로 답례하고 나는 사고자 하는 물건을 그림으로 그렸다.

샴푸와 세숫비누, 양초, 커피.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으니 그림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 그림 솜씨가 좋은 것도 아니다. 궁하면 통하리라. 양초를 그리니 쥔장이 아!~하고 손뼉을 탁 치며 양초를 내민다. 문제는 샴푸와 세숫비누였다.

샴푸 모양의 그림을 그리고 영어로 "샴푸 프리즈" 하고 설명했지만. 그녀는 샴푸병 모양을 보고 꺼내왔다. 그리곤 세숫비누를 그렸는데 그림이 영 시원찮아서 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 한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몸으로 설명을 해야 할 차례다. 세수하는 시늉을 하고 손으로 비누를 묻혀 얼굴에 펴서 바르는 것을 몸으로 표현했다. 그제야 가게주인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세숫비누를 가져왔다. 그렇게 원하는 물건을 사들고 구멍가게에서 나올 수 있었다.

가게를 나와 잠시 스치는 풍경을 살펴보았다. 골목길 담장 밑 리어카에선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고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은 리어카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무언가 먹고 있다. 널찍한 대접에 하얀 죽처럼 생긴 것을 수저로 훌훌 저으며 먹고 나서 돈을 지불하고 잰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간다.

아침 해는 아직 골목안 담장에 막혀 햇살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골목길 담벼락엔 오이넝쿨이 담장을 타고 올라가 초록지붕을 만들고, 담장 아랜 키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각자의 자태를 순박하게 뽐내고 있다.

오전 여덟 시, 외출 준비를 하고 숙소 앞에 나와 있으니 사내가 봉고차를 몰고 픽업하러 왔다. 사내는 나를 업어 차 앞좌석에 앉히고 휠체어를 접어 뒤에 실었다. 그리곤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간다.

그런데 사내는 운전 중이인데도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운전을 한다. 게다가 휴대폰으로 통화까지 하고 있다. 출근길 도로는 혼잡하고 위험하다. 도심을 통과하는 내내 차량들은 질주한다. 이리 저리 차량과 사람들 사이로 빠져나가는데 위험천만하다.

어느 새 골목으로 접어든 차량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살펴보니 생김새와 체격은 분명 남자인 것 같은데 짧은 미니스커트에 선이 굵은 얼굴엔 짙은 화장을 하고 머리는 길게 늘어뜨렸다.

창문을 열고 그들을 유심히 보니 남자가 분명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나누는 알 수 없는 대화의 목소리조차 남자였다. 그 주변엔 그런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태국은 유흥업이 발달됐다고 들었는데, 여장을 한 남자들이 밤무대 쇼 때문에 분장을 했나 생각하고 있는데 한국관광객과 일본 관광객이 차량이 동승한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니 어찌나 반가운지 서로 인사를 하는 사이 차량은 골목을 빠져 나간다. 운전을 하는 사내한테 좀 전 골목의 풍경을 물어보았다. 사내는 그들이 트랜스 젠더라고 했다. 태국은 트랜스젠더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특별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 시민들도 그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니 젠더들의 성 정체성이 태국에선 자유롭다고 한다.

봉고차는 도심을 빠져나가고 있다. 방콕 한복판을 흐르는 '짜오. 프라야 강' 위엔 여러 모양의 배들이 강물과 함께 흘러가고 하늘을 찌를 듯 한 빌딩들은 수면위에 제 모습을 스캔하고 있다

오전 열한 시가 조금 지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도착했다. 허름한 휴게소 풍경은 티비에서 본 것처럼 소박하다. 주변은 야자나무가 하늘 높이 뻗어 있고, 나무 밑엔 야자 열매들이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다.

나무 위를 쳐다보니 사람이 원숭이처럼 매달려 야차 열매를 따고 있다. 열매를 따는 사람은 특별한 도구도 없이 맨발과 맨손으로 야자를 따서 땅에 떨어뜨린다. 그 모습이 내 눈엔 위험해 보이지만 그들에겐 평범한 일상인 것처럼 보인다.

휴게소에 들렀으니 잠시 화장실을 이용하려 했다. 화장실은 있지만 장애인 화장실이 있을 리 만무하다. 다행히 화장실 변기는 양변기다. 일행의 도움으로 휴게소에서 볼일을 마치고 봉고차는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얼마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 태국을 여행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운하여행의 낭만을 생각할 것이다. 운하에서 펼쳐지는 각양각색의 풍경과 수상가옥의 진기한 생활은 여행객의 발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곳은 수상가옥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인류역사가 강을 관리하고 조절하는데서 비롯된 것처럼 웬만큼 사는 나라들은 반드시 강을 관리하고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태국 방콕을 가로지르는 강에서 새삼 알 수 있는 것이다.

'담넌싸두억 시장'은 방콕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있다. 태국정부는 문화 보호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방콕 주변에 만들어진 수망로의 하나였던 담넌싸두악 운하를 재개발하여 지금의 수상시장을 형성했다. 옛부터 전해오는 수상 시장의 풍경을 그대로 살린 곳은 방콕 근교에서는 이 곳 담넌싸두악 한 곳 뿐이라고 한다.

운하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서울의 양재천 너비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운하의 깊이는 흙탕물이어서 알 수 없었지만 쪽배가 오가는 것을 보니 그 깊이도 짐작할 수만 있었다.

이 곳은 영화 공공칠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가 보트를 타고 줄행랑을 치던 장소로, 서양 관광객이 동양인보다 훨씬 더 많아 그들이 되려 우리 일행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쪽배를 타고 운하를 한 바퀴 빙 도는 동안 진기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작은 쪽배위에 큰 솥단지가 걸려 있고 그 안엔 무언가 허옇고 묽은 죽이 펄펄 끓고 있다. 그 옆을 지나는 배엔 갓 구운 바나나와 코코넛을 잔뜩 실은 과일장수, 꼬지에 무언가 꽂아 튀겨서 파는 튀김장수 등 그 물건도 다양하다.

또한 수로 옆 수상가옥에서는 옷 가게, 모자 가게, 잡화 가게 등이 즐비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할 뿐이다.

갑자기 배가 모자 가게 앞으로 슬슬 당겨진다. 모자 가게 주인이 긴 막대로 그 앞을 지나가는 우리 배를 끌어당기더니 가게 앞에 배를 세운다. 그리고는 모자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짧은 영어를 섞어가며 태국말로 열심히 설명한다. 뜨거운 햇볕을 피할 겸 해서 대나무로 만든 챙이 큰 모자를 골라서 쓰고 나니 덜 더운 것 같았다.

계산을 하고 가려는데 이번엔 옷 가게에서 배를 끌어당긴다. 옷가게는 시원한 원피스가 벽에 걸려있었지만 물건을 살 마음은 없어 배를 돌려 운하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운하를 돌고 나니 배가 고파 무엇을 먹을까 하다 구운 바나나를 먹었다. 바나나를 구워서 먹는다는 것이 조금 생소했지만 그 맛은 태국여행처럼 달콤했고, 편안한 맛이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에게 여행은 떠남과 만남의 꼭지점이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떠남과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떠남과 만남을 가지는 여행은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나에게 태국 여행은 나 자신을 찾게 만들었고, 가슴이 따듯한 사람이 되게 하는 그러한 여행인 셈이다.

• 문 의

다음카페, 휠체어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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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간식. ⓒ전윤선

방콕 시내 사원. ⓒ전윤선

방콕을 흐는 강.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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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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