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심장은 죽는 그 순간까지 뛴다. 이는 생물학적인 현상이다. 필자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비유적인 의미의 '심장'이다.

가장 근래에 내 심장이 뛴 때는 역시 사랑을 할 때가 아닐까 한다. 물론 소심한 모태솔로이므로 쌍방의 연애는 아니고 짝사랑이었지만.

별 것 아닌 상대의 행동에도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집에 돌아와서 그 애만 생각해도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행동이었다고 치부해 버릴테지만 당시에는 상대방의 그런 사소한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짝사랑마저도 대학 졸업 이후에는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굳이 이성 때문에 뛰는 심장이 아니더라도 나를 자극하고 나를 흥분되게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장기로서의 심장은 뛸 지 몰라도 내가 살아있는, 한 존재로서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심장은 이미 죽은 지 오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최근, 죽었던 내 ‘심장’이 오랜만에 팔딱거리는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되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첫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얼마 전 아는 동생들과 식사를 할 일이 있어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식사를 마치고 이어진 가벼운 술자리에서 동생이 말했다.

“언니, 저는 언니를 보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저, 우리 엄마한테도 언니 얘기 했고요. 언니랑 정말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나중에 고민상담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니, 내가 뭘 어쨌다는 걸까. 나는 그저 묵묵히 남들 하는 만큼 해왔을 뿐인데 말이다. 참 별 것 아닌 나를, 누군가가 따라주겠다는 말 한 마디에 나는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예전에도 나를 ‘특별한’사람으로 대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내가 ‘장애’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 나는 별 다를 게 없는 사람인데 나의 장애로 인해 내가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어렸을 땐 그런 이야기들이 너무 싫었다. 관심을 받기에 나는 너무 소심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말들을 그냥 기분 좋은 칭찬으로 듣고 있다. 나를 믿고 따르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 아니겠는가.(여전히 부끄럽지만.)

둘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작은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는데, 조만간 재밌는 프로젝트 하나를 내가 꾸미게 되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잡힌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진 사소한 재주 하나로 나도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 되었단 사실에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소위 말하는 스펙도, 학력도, 경력도 부족한 나는 나서기 싫어했고, 내가 가진 유일한 재주마저도 내놓기 꺼려했다. 그저 조용히 한 구석에 박혀 있다가 사람들 틈에 묻어나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자발적으로 ‘나 그거 할 줄 압니다.’라고 말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어 나가기 시작했다. 자랑하기에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남들이 가지지 못한 재주라도 부려보는 것, 그로 인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한 번 해보지 뭐!' 하는 마음가짐이 내 심장을 ‘뛰게’ 했다.

매슬로우라는 학자는 사람의 욕구를 5단계로 분류했는데 가장 하위가 생존의 욕구이고 차츰 상위로 갈수록 안전의 욕구, 소속의 욕구, 자존의 욕구, 자아성취의 욕구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전에는 딱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욕구만 채우려고 했다면 이제는 더 상위의 단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죽었던 심장이 뛰고, 다시 나아가고, 더 크게 뛴다.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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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때 시인을 꿈꿨으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더불어 작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한다는 이야기에 겁먹고 문학인의 길을 포기. 현재 원광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여 예비사회복지사의 길과 자립생활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대한민국 평범한 20대 장애여성. 바퀴 위에 올라 앉아 내려다보고 올려다본 세상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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