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르는 동안 사사는 배앓이를 심하게 했다 사사뿐만 아니다. 나또한 귀가 짖어지는 듯한 고통에 하늘 길에서 어찌할 바 몰라 했다. 고통을 참고 견딘 네 시간, 방콕에 도착했다.

수속을 마치고 대합실로 나오니 인도와는 사뭇 다르다. 깨끗하고 쾌적하다. 갑자기 천국에 온듯하다. 거리도 깨끗하고 사람들도 깨끗하다. 택시를 잡아 타고 숙소인 정글뉴스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정글뉴스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다.

방콕 중심가 민가 밀집지역에 자리한 숙소는 조용하고 아늑하다. 인도여행에서의 묵은 떼를 볏겨야 할 것 같아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살결의 촉감이 옥돌처럼 매끄럽고 머릿결은 비단결 같이 부드럽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부드러움인가. 방문을 열고 밖을 보니 한국의 팔십년대 초를 연상케 한다. 밖으로 나와 요깃거리부터 찾았다.

방콕의 여행자 거리 ‘카오산로드’로 갔다. 카오산로드는 수많은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이고 여행의 시작점이고 끝지점이라고 배낭여행들은 말한다.

세계3대 여행자 거리인 블랙홀 여행지로 불리는 곳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는 무더운 여름날의 나른한 오후 같기도 하다. 때로는 광란의 파티를 하는 밤 풍경 같기도 한 카오산로드, 이 곳에는 각 나라별 음식점이 즐비하다.

노점에선 코코아 열매를 갈아 묽게 반죽해 빈대떡처럼 얇게 펴서 굽는다. 그 맛이 어떤가하여 먹어보니 맛이 제법이다. 달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자꾸 입맛이 당긴다.

카오산로드에서는 여행자들이 물건을 직거래하는 풍경도 종종 볼 수 있다. 이 곳에서부터 세계 곳곳으로 배낭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끝낸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직거래 하는 것이다.

나른한 오후의 여행자 거리 카오산로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은 느릿느릿 슬로우 화면을 보는 듯하다. 햇볕을 피해 나무그늘을 찾았다. 일행도 내 휠체어를 미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잎이 우거진 아름드리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그 밑엔 허름한 옷차림의 아주머니가 무언가를 팔고 있다.

궁금하여 가서 보니 우리나라의 과일 '모과'보다 조금 작게 생긴 새파란 열매다. 노랗게 익기 전에 딴 망고를 가늘게 채 썰어 식초와 소금 고춧가루를 넣고 무쳐낸다. 그 맛이 궁금하여 한 봉지 사서 먹어보니 시큼털털하니 맛이 별로다.

방콕 카오산 로드. ⓒ전윤선

저녁 때가 되어가니 카오산로드는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 일행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행자 거리 식당가를 찾아보니 낯익은 간판이 보인다. '동대문'이라고 씌어있는 간판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쥔장이 한국 사람이다. 메뉴도 한국음식 일색이다. 비빔밥. 열무국수. 빈대떡, 막걸리, 김치전, 김치찌개, 모두 다 먹고 싶었지만 열무국수가 가장 맛있다는 쥔장의 말에 열무국수와 빈대떡을 시켰다. 동대문 식당은 한국 여행자들이 꼭 거쳐 가는 곳이라고 한다.

외국에 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실감난다. 한국 사람만 봐도 반갑고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지나가면 공연히 말을 걸고 싶어진다. 식당 손님 대부분은 한국말을 쓰며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식당 안은 바글바글 시끄럽다.

잠시 후 열무국수가 등장한다. 살짝 익은 열무 김칫국물에 살얼음이 동동 뜨고 그 가운데 소면이 돌돌 말려 예쁘게 앉아 있다. 젓가락을 휘휘 비벼 국수를 한 입 크게 입에 넣는다. 한국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었다. 어찌나 시원하고 맛있던지 게 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더운 날씨탓에 시원한 열무국수는 더위를 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문제는 열무국수를 다 먹고 나서였다. 갑자기 아랫배가 아프다. 화장실을 급하게 찾는데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방콕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을 리 만무고 급한대로 식당 화장실로 갔다. 일행의 도움으로 변기에 앉아서 다행이다.

여행할 때 가장 두려운 것이 화장실 이다. 인도에서 그랬고 태국에서도 장애인 화장실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항상 음식조절을 했다. 아침에 숙소에서 볼일을 다 보고 나서 하루 종일 물을 먹지 않고 음료수로 대체했다. 혹시나 물을 갈아 마셔 배앓이를 할까 걱정돼서 였다.

식당 주인은 휠체어를 이용해서 온 여행자는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도 장애인관련 정책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곳 태국은 더 하다는 것이다. 장애가 심한 사람들은 밖으로 나올 수 없어 집에만 있거나 시설로 보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동대문 식당에 태국 장애인 '와프'라는 사람이 자주 찾아 온다고 했다. 와프는 태국 전국을 여행하다 차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를 만난 것도 카오산로드의 식당 '동대문'이었다.

짧은 머리에 검은 피부, 바짝 마른 체구의 수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와프는 나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휠체어로 여행하며 사는 것이 그의 삶이라며 언젠가 한국에 꼭 방문하고 싶어 했다. 그와 나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리고 꿈도 같아 처음 만났어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다음날. 뚝뚝이(오토바이를 개조한 이동수단) 이를 타고 방콕 시내를 돌았다.

태국은 불교의 나라답게 곳곳에 불교 사원이 즐비하다. 발길이 닿은 곳은 방콕 어딘가에 있는 한 사원. 그 사원엔 검은색의 헐벗은 부처님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헐벗은 부처님께 금박 옷을 입히고 있었다. 얇은 습자지 같은 종이는 신용카드만 한 크기다. 사람들은 금박종이를 사서 부처님 몸에 붙이고 나서 절을 한다.

사원 안엔 다른 불상도 많았다. 엄청난 크기의 부처님이 사찰 앞마당에 편안한 자세로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다. 누워있는 부처님 주위를 사람들은 빙빙 돌며 합장한다. 태국 어디를 가나 사원이 널려 있고 사람들은 누구나 가까이에서 부처님을 접할 수 있다. 나도 금박 판박이를 사서 부처님 몸에 금박 옷을 한줌 입혀주었다. 불심을 표현할 수 있는 금박종이로 모자이크들처럼 한 점 한 점 부처님에게로 가고 있었다.

사원을 나와 마사지 샵으로 갔다. 태국은 마사지로 유명한 나라다. 마사지 샵은 사원에서 그리 멀지 않다. 샵 안으로 들어서니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다. 몇칠 전 개업을 했다는 샵은 휠체어로도 충분히 출입이 가능해 내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샵 개장 특별 세일이라며 저렴한 금액인 350바트로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열 평 남짓한 내실에 매트리스 서너 개가 놓여있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이윽고 태국 여성이 마사지를 시작한다. 발끝부터 시작하는데 비명이 절로 나온다. 발가락 끝부터 발 중간지점을 꾹 누르니 너무 아프다. 여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중얼거리며 웃어댄다.

한 시간 남짓 마사지가 끝나니 온몸이 얼얼하고 두들겨 맞은 듯 욱신욱신 하다. 저녁 때가 되어 숙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사와 휠체어를 밀고 나왔다. 한참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문득 내가 타국에 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간신히 한 방향을 택해 맞겠지 하며 오른쪽으로 접어드니 캄캄한 벌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고 민가라곤 찿아볼 수가 없었다.

저 곳으로 계속 가야하나?…….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낮선 곳에서 길을 찾아야하는 이 막막함.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 순간. 마치 이승을 떠나 저승길을 가는 것처럼 불안하고 막막했다

•문 의

다음카페, 휠체어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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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의 풍경.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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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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