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중학교 시절, 나에게 수행평가와 중간·기말고사라는 개념은 전혀 없었다. 시험은 그냥 학교 다니면서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 중 하나로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 없이 시험을 봤었다. 중간·기말고사라는 개념을 스스로 이해한 것이 중학교 3학년 때였으니 알만하지 않은가. 아무도 그 사실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중학교 학급게시판에 전체 등수가 공개되던 날, 나는 학년 중 30등 안에 들었다. 그 것도 앞이 아닌 맨 뒤에서.

반에서도 뒤에서 3등이었다. 나보다 등수가 낮았던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꽤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은데도 우리 반에서 꼴등이었다. 그 친구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한 마디 했다.

“민지보다 못 봤어.”

나는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친구는 두 귀로 수업도 다 듣고 공부를 했으니 공부를 하지 않은 나보다 성적이 잘 나와야 하는데 왜 나보다 못하지? 진짜 바보인가? 게다가 멀쩡한 귀를 가지고도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애들이 전교에서 무려 30명이 넘는다. 다들 귀가 들리는데 왜 이렇게 못하는걸까?

대학교 시절, 공부하다가 딴 짓 하기. ⓒ소민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나는 남들 하는만큼 공부했다. 수업시간에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옆자리 친구의 필기를 힘겹게 애교와 필살기를 부려가며 베껴 쓰기도 하고, 가끔 교과서에 딴 짓을 하다가 혼나는 일이 많았다. 간혹 입모양이 정확한 과목 선생님이면 집중해서 쳐다보기도 하지만 완전히 알아듣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시험보기 며칠 전 벼락치기로 급하게 공부하는 식으로 했더니 학급에서 중위권에 들었다. 성적표를 보면서 나는 또 다시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왜 친구들은 수업을 듣고도 수업을 알아듣지 못한 나보다 더 성적이 낮은걸까?

이제는 직장인이 된 내가 농인으로서 세상을 살다보면 가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그런 것이다. 지금도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 이런 생각부터 든다. 나와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질풍노도의 사춘기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들었던 것일까?

지금도 그 ‘무엇’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소민지 칼럼리스트
양천구수화통역센터 청각장애인통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새내기 사회인이다. 청각장애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청각장애인 특유의 문화 및 사회, 그리고 수화에 대해 풀어나가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