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함께 거리를 다니다 보면, 우리 커플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빤히 처다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안한 눈빛으로 나의 걷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위태로워 보여서 곧 넘어질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다 한번은 보도블록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발을 삐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목발을 짚고도 얼마든지 다닐 수 있겠지만, 장애 때문에 몸의 균형을 잡기 힘들었던 나는 목발 사용이 불가능했다. 한동안 발이 낫기를 기다렸으나 회복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고, 외출 때마다 가족이 함께 동행하는 것 역시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데이트 역시 당분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다 병원에서 보행 재활을 시작하는 환자들이 사용하는 "워커" 라는 재활기구를 사용하기로 했다. 보통 이 기구에는 앞에 바퀴가 있어 힘을 들이지 않고 이동을 할 수 있어 사용에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사용 초기부터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워커를 짚으면 동네 근처로 간단하게 산책을 할 수는 있겠지만, 대중교통 이용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워커를 이용하여 대중교통에 탑승시 운전자를 포함한 승객들이 속으로 욕을 할 수 있다는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이 기구를 한 장애인 단체로부터 빌려 사용했다. 바퀴가 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이동을 할 수 있겠으나, 좀 더 빨리 회복하고 싶어 바퀴가 없는 것으로 골랐던 것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워커를 들었다 놓아야 하니 상당히 시간도 오래 걸릴 뿐 아니라 바퀴가 있는 것에 비해 이동 속도 역시 매우 느렸다.

그러나 "버스 운전자와 승객들이 속으로 욕을 할 수 있다" 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한번 생각을 해 보았다. 다시 말해 내가 워커를 갖고 버스에 오르면 승하차 시간도 오래 걸려 다른 승객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데다, 운전자 역시 내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는 출발을 하지 못하니 일반 승객보다 신경이 더 쓰일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몸도 불편한데 왜 나와서 이렇게 신경을 쓰이게 하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지하철 역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혹은 워커를 들고 승차한 버스 안에서 나에게 " 몸도 불편한데 왜 나왔냐" 고 하는 사람들은, 나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거나 버스에서 빨리 내리지 못해 짜증이 난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자신이 가는 길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인데, 이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장애를 문제 삼아 집에만 있으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주변의 우려보다 훨씬 적었다.

만약 스들의 바램대로 내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집에만 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취업을 하고 싶어도 면접관이 가정 방문을 통해 입사자를 선발하지는 않을 것이며 친구들과 지인들이 시내 중심가보다 교통이 불편할지도 모르는 우리 집을 약속 장소로 정하는 것을 허락해 줄지도 미지수였다. 그렇다면 나는 욕을 먹더라도 밖으로 나와서 내 삶을 살아가거나 평생 집에서 직장도 친구도 없이 나이만 먹어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에도 " 장애자는 방구석에 있어라" 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오늘도 누군가는 휠체어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다는 이유로 같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랜 고민 끝에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워커를 짚고 길을 나섰다. 일부 승객들의 곱지 않은 눈초리는 여전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람을 만나고 집에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려 다녔다. 사람들의 눈초리보다 내 삶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피곤한 하루에도 내일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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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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