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으로만 본다면 여자친구는 비장애인 나는 장애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자주 어지러움증을 호소하니 몸 속은 전혀 건강하지 않다며, 자신 역시 증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나중에는 어지러움증으로 인한 장애등급을 받았다) 불합리한 것들과 개선해야 할 것들을 많이 보았노라고 했다.

여러가지 개선할 것들 중 하나로 그녀는 "왜 장애인의 사회 생활에는 당당히.. 라는 말이 앞에 들어가야 하느나며 장애 의식 개선을 위해 없어져야 할 말 중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사실 그 전까지 "우리 장애인들도 당당히 지역사회에 나와 살고 싶어요" 라던가 "우리도 당당한 직장인이에요" 등과 같이 몸이 불편한 이들이 시설에서 사회로 나오거나 혹은 장애인들이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 그들의 사레를 소개하는 말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지만 그 전까지 장애인들의 삶 앞에 "당당히" 라는 말이 나오는 것에 대해 크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사용되던 말이었기에 생소한 던어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이나 라디오를 통해 등장하기 시작한 "장애우" 라는 표현에 더욱 큰 반발심을 가지고 있던 때였다.

"그녀가 왜 이러나" 싶은 마음으로 사전을 찾아보니 " 당당히" 라는 단어는 남 앞에서 내세울 만큼 떳떳한 모습이나 태도, 힘이나 세력이 큼이라는 두 가지 뜻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힘이나 세력이 명예나 권세라면,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볼 때, 몸이 불편한 이들의 사회 생활이나 행동 앞에 붙는 "당당히" 라는 단어는 남 앞에서 내세울 만큼 떳떳한 모습이나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도 확대 해석은 아닐 것이다.

장애인이 지역 사회로 나오거나 취직을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내세울 만큼 떳떳한 모습으로 보는 것이 옮은 것일까?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필요한 경제적 문제를 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며, 시설이나 가정을 떠나 지역사회로 나오는 것은 한 사람의 주민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비장애인들에게는 취직과 독립이 "당연한 일"이다. 이 말은 앞뒤 사정을 생각해 볼 때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장애인들에게만 쓰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영역까지도 장애 극복의 관점으로 다루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장애인들의 행동 앞에 당당히 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장애 의식 개선을 위해 없어져야 할 말이라는 그녀의 생각이 맞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말은 지금도 "장애우" 라는 말보다 더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취업이나 사회인으로 나가는 길 앞에 당당히라는 말을 쓰는 것은 조금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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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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