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 광화문 광장. 걷고 싶은 ‘거리’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이훈길

걷고 싶은 거리와 걷고 싶은 길은 다르다.

거리는 ‘街(가)’이며 'street'이고, 길은 ‘路(로)’이며 ‘road'이다. 길은 한 점과 다른 점을 연결하는 통로를 의미한다. 반면에 거리는 길의 한 범주에 속하는 개념이다. street은 크고 작은 도시에서 한쪽이나 양쪽으로 집이나 건물이 늘어서 있는 거리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이다.

street은 도시와 도시 사이의 길을 가리키는 데는 쓰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 내에 있는 길을 흔히 road라고도 한다.

거리는 연결보다 행위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적 장치로서 의미가 있다. 길이 이동과 도착이라는 목적에 충실하다면, 거리는 경험이라는 과정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길을 자연의 영역으로 본다면, 거리는 인공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도시의 일부로 구분할 수 있다.

길과 거리를 섞어 쓰는 건 단순한 용어상의 혼용일 수 있다. 그러나 걷고 싶은 거리와 걷고 싶은 길의 차이는 용어 혼용의 순간부터 발생한다.

‘걷고 싶은 거리’ 선정 사업은 용어 혼용으로 그 의미가 애매하다. 많은 시민들이 걷고 싶어 하는 길이라는 것인지, 지금은 아니지만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겠다는 말인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 의미에는 서울의 가로 환경이 위험하고 불안하며, 길이 막혀도 걷기보다는 차를 타겠다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걷는게 불편하고 짜증스럽고, 도로구조나 교통운영 할 것 없이 모든게 자동차 위주여서 걸어봐야 손해임을 모두가 잘 알만큼 걷는게 불리한 “걷고 싶지 않은 도시”라는 현실 모습이 담겨 있다.

차량에 의한 보도 침해, 인도를 비집고 나온 간판과 전신주, 더욱이 가로수까지 올라서서 가뜩이나 좁은 인도를 더욱 비좁게 만들어 불편을 초래한다. 인도의 표면도 울퉁불퉁하여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불안하다.

이러한 거리의 위험한 요소를 제거하여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걷기 힘든 거리’가 되어 통로로서의 길로 변질됨이 문제이다.

서울시의 ‘걷고 싶은 거리’ 조성 계획에는 보행에 불편함을 주는 전봇대 같은 장애물을 매설하거나 이전해서 보도의 폭을 확보하겠다는 긍정적인 방안도 있다. 그러나 가로수를 더 심고 멀쩡한 길은 꼬불꼬불하게 만들겠다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혹은 벤치를 더 설치한다던가 지역을 상징하는 명물 광장으로 만들겠다고도 한다.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은 더욱 혼랍스럽다. 도심부 중심가로인 종로2~3가 구간과 전통문화보존과 관광루트 연계로 지역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는 인사동길, 주택가 생활도로로서 보행환경 개선이 필요한 거리 등을 선정하였다. 가로, 길, 거리, 보행로 등 정확한 용어의 의미 전달없이 사용되고 있다.

이 모든 원인은 길과 거리의 개념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덕수궁길은 가끔 걷고 싶은 길이지 거리가 아닌 것이다. 길은 목적 지향에 충실하지만, 거리는 삶의 경험이 담긴 도시의 부분으로서 도시성에 더 잘 부합된다.

걷고 싶은 거리와 걷고 싶은 길의 차이를 알고 지역실정에 적합하며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삶을 받아들이는 거리 조성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소통의 공간이 되려면 거리가 살아나야 된다. 모든 사람에게 불안(不安)하고 불편(不便)하고 불리(不利)한 도시가 아닌, 편안(便安)하고 편리(便利)하고 편익(便益)한 도시로 가꾸어, 사람들의 보행권과 삶의 질이 보장되는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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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길 칼럼리스트
시작은 사소함이다. 비어있는 도시건축공간에 행복을 채우는 일, 그 사소함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어진 도시건축과 지어질 도시건축 속의 숨겨진 의미를 알아보는 일이 그 사소함의 시작이다. 개발시대의 도시건축은 우리에게 부를 주었지만, 문화시대의 도시건축은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생활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사람의 온기로 삶의 언어를 노래하는 시인이자, 사각 프레임을 통해 세상살이의 오감을 바라보는 사진작가, 도시건축 속의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통하고자하는 건축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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