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리포트의 한국판인, 소비자종합정보망 ‘스마트컨슈머’의 홈페이지 캡처 ⓒ공정거래위원회

자립생활센터라고 하는 기관의 특성을 Nosek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로 제시했다. 그것은 소비자에 의해 통제되며(consumer controled), 지역사회중심(community based)이고, 모든 장애영역을 포괄하는(cross-disability), 비주거시설(non-residential)의, 비영리(non-profit) 기관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립생활운동(Independent Living movement)에서 강조되는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가 바로 소비자 통제(consumer controled)의 원칙이다.

이는 물론 자립생활센터라고 하는 기관을 운영하는 데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되는 원칙이지만, 더 나아가서는 장애인(소비자)과 비장애인재활전문가, 장애인(소비자)과 그의 부모나 가족, 장애인(소비자)과 그가 속한 시설의 직원 등, 그동안 부적절하게 장애인을 통제해 온 주변 권력자들과 장애인과의 권력관계에 있어서, 통제에 대한 권한을 장애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여기서 장애인당사자를 소비자(consumer)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던 이유는 ‘장애인 인권과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임을 뜻하는 것으로, 과거에 장애인들에게 기대되었던 역할인 수혜자(recipient)와 대비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장애인이 장애인복지서비스를 아무런 ‘권리’ 없이 그저 받기만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가진 임파워먼트된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당사자주의를 이야기할 때, 소비자주의(consumerism)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등에서 장애인당사자의 역량강화(empowerment)나 자립생활운동 등에 큰 영향을 미친 이념이 소비자주의이고, 우리가 얘기하는 당사자주의와 유사하게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들이 주장하는 당사자주의와 소비자주의는 다른 부분이 있으며, 그 차이는 특히 더 강조되어야만 한다.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의 공통점은 ‘양질의 재화나 용역의 사용’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소비자주의에서 소비자는 생산자와 공급자로부터 구미에 맞는 싸고 질 좋은 재화나 용역을 공급받기를 희망하는 것이고, 당사자주의에서 장애인당사자 역시, 수준 높은 장애인 인권과 양질의 장애인복지서비스를 보장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의 차이점은, 각각의 권리가 보장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다르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미국의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소비자의 권리를 4가지로 설명했는데, 그것은 안전할 권리, 알 권리, 자유선택의 권리, 의사반영의 권리라고 했다.

이중에서 자유선택의 권리와 의사반영의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 기초적으로 필요한 조건이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에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먼저 소비자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무수히 많은 무한경쟁의 ‘시장’이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얘기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은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으므로, 소비자는 단지 자신의 구매여부를 선택하고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권리가 생산자를 움직여서 제품을 생산·공급하는 방식을 바꾸게 만든다.

소비자가 구매의 선택과 결정을 통해 표현하는 권리주장에 맞게, 생산·공급자가 바꾸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시장의 원칙’이 있는 한 소비자는 굳이 생산현장을 찾아가서 제품의 기획·생산·공급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의사결정에 참여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주의에 있어서 당사자가 자유선택의 권리와 의사반영의 권리를 보장받게 하려면 이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권리와 장애인복지서비스에 있어서 생산자와 공급자는 무수히 많은 것이 아니라 대개 독·과점의 형태를 보이게 된다. 따라서 권리와 서비스의 소비자인 장애인당사자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구매 행위를 통해 권리와 서비스의 기획·생산·공급 과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도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인당사자가 자유선택의 권리와 의사반영의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생산자와 공급자를 무수히 많아지도록 하거나 아니면 별도의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장애인 권리와 복지서비스의 생산자와 공급자를 무수히 늘려서 무한 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치 일반시장에서 생산·공급자의 독·과점을 규제하고 공정거래를 장려하기 위한 보완책이 있어야하는 것처럼 이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장애인 권리와 복지서비스의 기획·생산·공급 등의 의사결정과정에 장애인당사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함을 보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장애인과 관련된 법을 만들 때 그 법이 창출해낼 권리의 소비자인 장애인당사자가 ‘갑’이란 국회에서 만든 법, ‘을’이란 국회에서 만든 법, ‘병’이란 국회에서 만든 법 등을 서로 비교하여 선택 결정하거나, 행정기관인 정부에서 장애인과 관련된 정책을 만들 때 그 정책이 창출해낼 서비스의 소비자인 장애인당사자가 ‘A’란 정부에서 만든 정책, ‘B’란 정부에서 만든 정책, ‘C’란 정부에서 만든 정책 등을 서로 비교하여 선택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주의에 있어서의 소비자와 당사자주의에 있어서의 장애인은, 권리 보장을 위한 접근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리와 서비스의 소비자이며 당사자인 장애인들이 법과 정책의 기획·생산·공급 등의 의사결정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당사자주의의 실현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보완책이 보장되지 않는 한 장애인당사자는 진정한 소비자(consumer)가 아니라, 소비자가 되고픈 수혜자(recipient)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필자 주(註) : 여기서 말하는 생산자와 공급자에는 정부, 의회, 공동모금회, 민간 복지재단 등이 속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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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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