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장애인연합에서 여성장애인대회를 열면서 참정권과 여성의 사회적 참여권을 요구하였다.

7월 2일 올림픽파크텔에서 500여 명이 모인 이 행사에서는 이러한 요구를 담은 1만 여성장애인의 서명이 벽에 붙어 있었다. 정말 대단한 인원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장총과 장총련 등 장애인계가 총 동원하여 집회를 가지는 경우 지금까지 최대로 모인 숫자는 7천 명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1만 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등록 장애인이 250만이 넘는다. 장애인 국회의원 몇 명이라는 숫자는 사실 장애인 국회의원이 몇 명인가가 장애인의 힘이라기보다 이러한 장애인의 숫자가 힘으로 만들어낸 결과이다. 250만이라는 숫자는 한 도 단위에 해당하는 숫자로 장애인만으로도 엄청난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위치를 나타낼 수 있는 힘이다.

이론상으로는 장애인들이 뭉치면 20명의 국회의원도 배출할 수 있고, 심지어 대통령도 장애인들이 지지하는 사람으로 결정지을 수 있다. 대선에서 후보자간 표차가 250만표 이하인 경우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장애인들은 이러한 숫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뭉치지 못하여 많은 손해를 보기도 하고, 정부에 각종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좌절하는 경우도 많다.

250만은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의 회원수보다 많은 수이며, 장애인들이 일사불란하게 행동한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단지 1%만 여의도에 모여 권리를 요구한다고 해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8만 중증 전동휠체어가 한 자리에 모이기만 한다면 그 일대 교통은 완전히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 장애인의 자립을 위하여 거리나 지하철의 자판기나 가판대를 철거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안정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는 철거상인 반대 집회 때는 단 10명도 모이지 못했다.

어떤 장애인은 장애인 단체에 전화를 하여 단체가 장애인을 위해 존재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여러 문제 하나 깔끔하게 해결해 주지 못한다고 항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체의 역량이 아니라 이러한 숫자의 힘이면 못할 것도 없겠으나, 사실 이러한 장애인들의 연락망이나 회원 정보조차도 누구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기에 각 정당에서는 장애인 계층이 무시되고, 장애인의 요구도 가벼이 여기게 된다.

신한미소금융에서 장애인을 위하여 신용도 따지지 않고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대출을 해주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한 달 동안 상담한 사람은 경우 몇 십 명도 되지 않으며, 대출을 신청한 사람은 10명도 되지 못하여 200억이든, 300억이든 대출해 주겠다는 금융상품에 불과 1억 원도 대출되지 않았다.

장애 가족 이름으로도 대출을 해 준다고 하였고, 장애인을 고용한 작은 기업에도 대출을 해 준다고 하였으나, 이용자가 없었다. 이자가 4%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장애인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기 위해 저소득 수급자나 차상위자를 고려하면 30~40만은 이 상품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이는 전혀 허황된 것에 불과했다.

장애인 차량 LPG 가격담합 집단소송에서 장애인 차량이 100만대이지만 불과 2천 명의 소송단 모집에 그쳤다.

장애인 행사에는 항상 그 회원이 중복 출연하고, 장애인 프로그램에도 항상 같은 사람들이 나온다.

바우처를 통하여 이러한 장애인 활동가가 아닌 모든 장애인들의 참여를 통한 보편적이고 권리에 입각한 제도를 시행하는 쪽으로 서비스나 제도가 변화하고 있으나, 장애인들은 오히려 이러한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무관심하다.

국민카드에서 장애인들이 어차피 사용하는 카드를 장애인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가입하면, 기존 카드 사용자를 포함하여 가입 축하금으로 건당 1만원을 무조건 기업에서 기부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용매출의 0.2%를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하였다.

이론상으로는 250만이면 바로 250억이 만들어지고, 카드 사용에 따라 수 천 억도 기금이 조성될 수 있으나 이러한 시책을 홍보하고 시행해 보면 불과 몇 만원도 만들기 힘들다.

장애인 복지카드를 겸한 장애인 신용카드는 마일리지가 없다. 그 마일리지만 모아도 수 백 억 원이 형성된다. 우리 장애인은 그러한 우리의 권리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 인구 250만 시대면 장애인끼리 음식을 사 주고, 장애인끼리 물건을 팔아주고, 장애인끼리 국산품 애용운동처럼 장애인 경제 살리기 운동을 한다면 정부의 아무런 도움 없이도 자립과 자급자족의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에 불과하다. 250만의 리스트조차 없고, 홍보를 할 방법도 없으며, 네트워크를 연결할 역량을 가진 단체도 없다. 장애인 등록을 하여 정부의 일부 혜택만 보고 장애인의 힘 모으기나 장애인 사회, 장애인 당사자성이나 상호협력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국민이기는 하지만 국가나 사회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냥 살기만 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정책을 만들어도 별로 반응이 없고, 나중에 자신이 서비스나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못한 것을 알고 안타까워하지만, 이미 지나간 손해는 복구가 되지 않는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소설이 있다. 소록도에 한센 환자들에게 서비스의 소비자로서, 한 구성원으로서 의견을 말하고, 주체자로서 정책에 참여하기를 요청하지만, 이미 강제노동과 지도자에게서 배신을 당한 환자들은 지시만 따를 뿐 아무런 말이 없다.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 말해도 소용이 없다고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사람들, 자신의 권리와 주체자로서의 참여기회를 포기해 버린 사람들, 이러한 현상은 억압받는 자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그래서 산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만이 오로지 죽어서 말을 한다고 하였다.

장애인이 억압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하는 것은 정치인들이나 사회 관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장애인들의 침묵이 문제인 것이다.

장애인 스스로가 장애인 사회를 부정하고,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소식도, 주체적으로 참여할 단체나 정책에도 무관심해버리는 이상 우리에게 대선의 의미도, 보다 나은 미래도 없이 늘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고 농락당할 것이 분명하다.

자유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참여할 때만 실현된다. 앞으로 정부의 장애인종합대책이 성과를 거두느냐, 장애인의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키느냐는 우리의 뭉친 숫자가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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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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