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국의 장애인도서관은 36개소이다. 그런데 몇 년 전에는 문화관광부에서 장애인을 위한 도서관 사업비를 연간 10억 원, 그리고 도서관의 장애인 편의시설과 정보접근 기자재 구입비 몇십억 원 등 그나마 부족하지만 조금의 국고지원이 있었다. 그러다가 도서관 사업이 지방이양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지원 근거가 없다고 하여 아예 지원금은 제로가 되었다.

그렇다고 지자체가 특별히 지원할 근거도 없어 사실상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지자체에서는 그래도 구립이라고 복지예산을 일부 쪼개어 한두 명의 인건비 정도를 지원하고 있었으나, 이는 도서관의 새로운 장애인 도서 제작이나 운영비는커녕 도서관 인건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동네 도서관이라 하더라도 장애인도서관은 최소 7명이 근무해야 하고, 운영비와 도서제작비가 필요하지만,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바라며 입술을 깨물고 살아왔다.

시각장애인이 직접 사제를 털어 운영하는 도서관이 있다고는 하지만 개인이 감당하기에 도서관 운영은 현상유지도 버거운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 인가조건인 도서 수량만 유지한 채 새로운 자료를 구비하지도 못하고, 그나마 도움을 얻고자 찾아오는 시각장애인들의 점자나 녹음 자료를 충족시키지 못하여 발길을 돌리는 안타까움에도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마을문고처럼 운영해 왔다.

그러니 자료 제작은 자원봉사자에 의해 만들어져야 했고, 점자의 오자가 있어도, 음성도서의 가정집에서의 녹음으로 질이 형편없어도 아쉬운 대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학기가 끝날 때 교재를 받아보면서도 그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고, 1년이 지나도 요청한 자료를 제공받지 못해 포기해야만 했었다.

비장애인들은 수많은 정보나 도서의 홍수 속에 선택권을 가지지만, 시각장애인은 지식의 접근이 불가능하여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거나 박사가 되었다거나 언론에 관심을 끈 시각장애인들에게 시력상실로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느냐고 물으면 모두가 입을 모아 자료가 없어 힘들었다고 말하곤 했다.

장애인에게 스스로 노력하여 용기를 가지고 사회에 뛰어들어라, 열심히 해라, 기적을 만들어라 등등 말한다. 하지만 정보를 습득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상태에서 꿈을 가지고 능력있는 장애인이 되라고 말하는 것은 학교에 보내지도 않고, 책도 주지도 않고 일등을 하라는 기만과도 같은 말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이러한 한을 풀고자 10여 년간 도서관법을 개정하여 장애인의 정보와 지식의 접근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한 결과, 지난 해 도서관법이 개정되어 국립중앙도서관에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설립하도록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정보가 차단된 시각장애인에게 또는 청각장애인에게 문화권 향유란 허울 좋은 소리이니 그나마 국립장애인도서관 지원센터라도 만들어 도서 제작의 중복성을 제거하여 국가 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자고 합의하였고, 도서의 제작기관이 전무한 것을 그나마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밥 한술을 두고 나눠먹자는 식으로, 턱없이 부족하여 지식영양결핍이 장애인에게는 운명처럼 되었다. 장애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모두 매달려 조금이라도 그러한 갈증을 풀어주려고 노력하였지만, 개인적 노력 역시 한계가 있었다.

도서관법을 개정하여 국립장애인도서관을 법으로 설립하도록 정하였고, 현재의 국립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를 흡수 확대하도록 규정한 것에 대하여 마치 광복절처럼 환영한 이유가 여기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억압과 차별과 알 권리가 박탈된 가운데 여전히 정보와 지식은 장애인에게는 배급되지 않았다. 법 개정을 축하하는 첫 잔을 들기도 전에 바로 그 잔을 내려놓아야 하게 된 것이다.

오는 8월 18일 국립장애인도서관 개관을 앞두고 행정안전부에서 단 한 명의 직원도 증원시킬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그저 이름만 국립장애인도서관으로 간판을 새로 걸 뿐, 아무런 변화도 없는 현실을 망연자실하며 지켜봐야 하는 장애인의 울분을 귀담아 듣지도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수없이 많은 도서관이 있으며, 그 중 국회 장애인도서관 하나만 해도 연간 예산이 천억원에 이른다. 일본의 경우도 장애인 도서관 수가 200개를 넘고, 그 규모가 우리의 초라한 20평의 시설이 아니라 대학도서관만한 규모를 자랑한다.

지난 5월 31일 국립중앙도서관의 장애인도서관 발전방안에 관한 토론 자료에 의하면 연구와 행정 인력에 10명, 특수자료 제작에 20명, 장애인 서비스 인력 10명 등 40명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개관이 두 달도 남지 않은 현 상황에서, 결론은 간판만 바꾸라는 것이다.

이것은 ‘서비스 확대’라는 법을 정부 스스로가 어기는 것이다. 법은 약속이다. 법을 개정한 것이 간판명을 바꾸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원 증원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은 장애인을 우롱하는 행위이며 장애인에게서 꿈을 앗아간 것이며,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장애인을 낭떠러지에서 떠밀어 버리는 것이다.

월급날 빈 봉투를 주면서 수고했다고 하면, 종이라도 주어서 감사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정부 부처가 이렇게 손발이 맞지 않고, 복지는 밑빠진 독이라며 돈을 쥐고 행패를 부리는 기재부나, 일할 사람을 허가해 주지 않아 일을 망치는 행안부는 법 위에 존재하는 황제인가?

장애인을 무시하며 각 부처가 돌아가면서 서로 핑계를 대자고 약속이라도 한 것 같다.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숙원을 풀고자 입법활동을 하고, 정책을 건의하지만 그 정책이나 법은 항상 껍데기이고 빈 봉투다. 세금은 국민을 위해 쓰자고 걷는 것인지, 아니면 정치인들이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는 수단인지 모르겠다.

민주국가에서 법이 최고라 믿고 법 개정을 통하여 소원을 풀고자 했던 장애인들, 정보를 얻고 스스로 자립하고자 하는 장애인들을 영원히 사회적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다.

장애인들은 장애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과 배신, 우롱같은 것들과 싸워야 하며, 속임수를 극복해야 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오늘밤도 장애인의 생은 갉아 먹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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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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