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너무 바빠 거의 한달만에 이루어진 데이트, 그러나 못보던 동안, 다툼이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들을 전화나 문자로 대신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자세히알 수가 없었기에, 오해는 커져만 갔고, 이제는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남남이 될 수도 있을 만큼 서로에 대한 서운함과 상처들이 깊었다.

그녀와 나는 피곤하면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증상에는 차이가 있었다.

피로가 쌓이면 다리에 경직 증상이 오면서 걷기가 힘들어지고, 거리에서 넘어져 부상 위험이증가하는 것이 내 몸이 주는 피곤의 신호였던 반면, 그녀는 목이 빳빳해져 고개를 들기가 힘들고 두통이 심해지는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빈혈 증상까지 같이 나타나면 보호자 없이 거리를 다니는 것이 안심이 안 되었다.

처음에는 서로의 증상들에 조심하며 서로를 이해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의 몸 상태가 자신보다 가볍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몸이 건강하게 보이니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이고, 다리에 통증도 없으니 여자친구의 증상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지만, 그녀 역시 목이 뻣뻣해지거나 빈혈 증상이 없고, 장애 상태 역시 눈에 보이니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배려를 해 출테니 자신의 몸 상태가 더 안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서로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전화 통화를 할 때 " 나 오늘 컨디션 안 좋아" 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진심으로 서로를 위로해 주지 못했었고, 급기야는 서로가 "너도 장애인이냐? 나도 장애인이다"라며 싸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있어 자신의 몸 상태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일은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로의 몸 상태를 가지고 "너도 장애인이냐?" 며 각을 세웠으니 연인이라 해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헤어질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나온 것이다.

무슨 말부터 먼저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한 말이 우발적인 충동이었음을 사과하고 그녀가 받아주기를 기다려야 했다.

"미안하다 아무리 화가 나도 "너도 장애인이냐?" 라는 말은 할 얘기가 아니었어.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는 그녀의 답변을 기다릴 차례.. 커피를 두 모금쯤 마셨을까? 여자친구가 입을 열었다.

" 나도 미안해.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이런 증상이 찾아오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했어. 우리는 그동안 서로의 장애를 너무 가볍게 본 것 같다. 오빠는 한순간에 이런 증상이 찾아와서 평생 약을 달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심정을 몰랐고, 나는 한번도 똑바로 걸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나처럼 약을 먹고 살아도 좋으니, 똑바로 걸어서 사람들이 처다보는 것 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을 몰랐고 말야.."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동안 장애인으로 살아왔지만, 한 순간에 일어난 사고나 몸의 변화로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발로 왔던 길을,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느끼는 좌절감과 허무감, 때로는 세상에서 없어지고 싶은 충동을 겪으며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선천적 장애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후천적 장애인임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그날 커피숍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동안 서로에게 서운했고 때로는 원망스러웠던 점들을 나누고, 이제는 한 발씩 양보해 보기로 했다. " 너도 장애인이냐?" 는 다툼으로 시작된 우리들의 갈등은 그렇게 해서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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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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