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만나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한경아

학교에서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한 선생님으로 인해 아이의 인생이 좌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와 같은 장애학생들에게는 학교생활에 있어서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장애학생의 부모님들은 아이가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희망한다.

나의 첫 사회생활이었던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16년의 시간동안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 중엔 최악의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나에게 힘을 주고 다독여준 좋은 선생님들도 계셨다. 스승의 날을 맞아 내 기억 속 좋았던 선생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의 첫 번째 선생님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다. 유치원도 다니지 못하고 2년의 유예기간을 걸쳐서 늦깎이 초등학생으로 입학해서 만난 선생님은 정년퇴임을 얼마 남기지 않은 할머니 선생님이셨다.

전교를 통틀어서 유일한 장애학생이었던 나를 선생님은 손녀딸처럼 잘 챙겨주셨다. 받아쓰기 100점을 맞으면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수업 중에도 여러 가지로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덕분에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어렸을 때 나는 화장실조절을 잘 못했다. 지금이야 노력해서 "내가 몇 시간에 한 번 화장실을 가야하는지, 이 정도면 물을 많이 마셔도 괜찮겠다" 하는 것들을 조절할 수 있게 됐지만 늘 집에서 급하면 아무 때나 화장실을 다니던 내가 갑자기 정해진 시간에만 화장실을 가야하는 환경에 들어오다 보니 가끔 교실에서 실례를 저지르는 때가 많았다.

물론 이것은 비장애 아동 중에도 첫 학교생활 때 저지르는 아이들 사이에선 흔한 실수이기도 했다.

국어시간이었다. 다들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그 시간, 그만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의자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소변을 느끼고는 당황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 전에도 한 번 실수했다가 같은 반 남자애한테 놀림 받고 대성통곡 했던 사건이 있어서 이번에 또 걸리면 끝장이겠구나 싶었었다.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눈으로 선생님께 신호를 보내고만 있었다.

그 때 선생님께서 책상과 책상 사이를 오가며 책을 읽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교실 뒤편으로 가셔서 걸레를 하나 들고 오셔서는 조용히 발 아래로 걸레를 밀어 내 의자 밑으로 넣어주셨다.

바닥에 흥건히 젖은 내 실수의 흔적을 치워주신 것이다. 사실 선생님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나는 그런 선생님의 배려가 너무 고마웠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가끔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떠올리고는 한다.

또 다른 좋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시간을 건너 고등학교 때로 올라온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또한 여자선생님이셨다.

12년간의 초, 중, 고등학교 시절 동안 단 두 번을 제외하고는 나의 담임선생님은 여자선생님들이셨다. 우리나라 교육계에 여초현상이 심해서 일어난 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내가 몸이 불편하니까 학교 측에서 의도적으로 섬세한 여선생님 위주로 반을 편성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고 1 담임선생님은 나를 종종 교무실로 데려가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급식을 하지 않았기에 주로 점심시간 혼자서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었고 체육시간에도 혼자 있었기에 그런 시간 때면 나는 교무실로 가서 담임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라면불편한 장소인 교무실이 나는 마냥 편하기만 했다. 성적문제에 대해선 깐깐하셨던 선생님이라 몇몇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을 싫어하기도 했지만 나는 선생님이 좋았다.

사실 수업도 재밌게 하시기도 했지만. (담임선생님 담당과목이 생물이었는데 타고난 문과체질인 나도 생물수업을 재밌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또 다른 한 분은 지리 선생님이셨다. 고2부터 문과를 택해서 3학년 때까지 가르침을 받았는데 언젠가 나에게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으셨다. 나는 시인이 꿈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시인되면 굶어죽는다. 해리포터 작가 같은 사람 돼서 돈 많이 벌어야지.”라고 농담처럼 충고하시기도 하셨다. (당시에 해리포터가 전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쳤고 영화도 1~2편 나왔을 때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을 때, 1학기 중간고사기간이었다. 하필이면 생일이 중간고사기간에 끼어있어서 친구들로부터 생일축하를 받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한참 시험을 치고 있는데 앞문으로 지리 선생님이 슬쩍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생일 축하한다며 초콜릿과자 2개와 일반 볼펜보다 비싼 볼펜 한 자루를 주고 가셨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얼떨떨 했는데 시인되면 굶어죽는다고 하셨으면서도 내심 내가 좋은 작가가 되기를 바라신 것 같았다. 내가 받았던 선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고3 담임선생님.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2년 연속 담임을 맡아주셨는데 고3이면 다들 자기 진로를 찾기 바쁠 때였다. 그 때까지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막연히 인터넷강의나 방송통신대학으로 진학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 동안은 아래층교실로 배정받는 배려를 받았지만 이동수업시간엔 어쩔 수 없이 계단을 오르내리고 그 과정이 나는 친구들에게 신세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힘들고 친구들도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교는 강의실도 옮겨 다녀야 하고 계단도 많은 곳이니 불편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굳이 등교할 필요가 없는 교육기관을 원했던 것이다.

수능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나는 교무실에 갔다. 의례적인 진로상담시간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평소 담아둔 생각을 이야기했다. 일반적인 대학진학은 하지 않겠다고.

그 때 담임선생님은 그래도 남들 다 해보는 경험은 해봐야하지 않겠냐고, 나중에 네가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사람들도 필요할 텐데 인맥을 쌓은 것도 나쁘진 않을 것 아니겠냐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대학진학을 권유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난 후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선생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었다. 며칠 뒤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선생님의 권유대로 대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덕분에 나는 아주 즐거운 대학교 4년을 보냈다. 만약 선생님이 말리지 않았다던가 나의 그런 생각을 몰랐더라면 나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을 놓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사람은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위에 소개한 선생님들이 안 계셨더라면 내 학창시절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선생님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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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때 시인을 꿈꿨으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더불어 작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한다는 이야기에 겁먹고 문학인의 길을 포기. 현재 원광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여 예비사회복지사의 길과 자립생활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대한민국 평범한 20대 장애여성. 바퀴 위에 올라 앉아 내려다보고 올려다본 세상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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