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커풀이었다. 날씨가 비교적 서늘한 봄이나 가을에도 땀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여름에는 갈아입을 옷 하나 정도는 가방에 넣고 다녀야 했다.

이렇다 보니, 데이트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지치는 것은 당연했던 일, “오늘은 그만 좀 돌아다녀라”라는 말을 들으며 집을 나서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이 번에는 그녀가 이상했다. 평소와 달리 무척 어두운 표정으로 오늘은 커피숍에 앉아 이야기만 하면 안되겠냐고 물었던 것이다.

날씨는 좋은데 몸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나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학창시절에 당했던 따돌림의 기억까지 이어지다 보면 “내가 살아서 뭐하나”싶은 생각까지 든다는 것이다.

그녀는 학창시절 쉽게 피로를 호소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체력이 빨리 떨어지는 증상이 있었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한 같은 반 학생들이 “너 같은 몸을 가지고 뭐 하겠냐. 너는 졸업하면 뭐 하면서 살거냐” 등의 말로 괴롭혔다고 한다.

특히 피부가 약해 쉽게 상처가 나거나 멍이 들었기에 주먹이나 손, 발 등을 사용해 몸에 상처를 낼 경우 가족들이 금방 알아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같은 반 아이들이 주로 언어폭력으로 괴롭혔다고 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몸이 조금씩 나아져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던 그 때의 감정들이 건강이 악화될 때는 여지없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래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는 말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들려와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일부러 “나는 가치있는 사람이다”라는 애기를 하루에도 몇 번 씩 되뇌었다고.

그녀가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자기 비하적인 생각을 하는 이유를 고민해 보았다.

몸이 건강하지 않다 보니 한 곳에서 오랜 동안 직장생활을 하지 못해 사회적으로 단단하지 못한 상태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 때의 기억에 자신을 감추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인식의 식민화가 된 것이 아니라면 탈출구는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대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면 처음에는 그들에게 반항하게 되지만 그 것이 나에게 도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맘에 들도록 행동을 해서 이 고비를 넘어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항상 그들의 억압에 대해, 반항이나 불합리한 대접에 대해 주변 사람으로부터 도음을 받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 내 자신의 자존심과 감정 등을 스스로 내놓아 그들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에서 안도하고 기쁨을 느끼는 것이 '인식의 식민화'인 것이다.

자신을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것은 스스로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좌절감에서 비롯된다. 그녀에게 그런 생각을 은연 중에 심어준 이들이 누군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앞으로 하루에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으니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고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면 반드시 길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최근 왕따를 견디지 못해 또 한 명의 학생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학교 폭력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그 후유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왕따나 학교폭력을 당하던 아이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왕따로부터 해방되고, 아무런 후유증 없이 대학 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는 믿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람이 잊기 힘든 상처는 감정의 상처이며, 왕따는 많은 아이들이 여전히 “장난인줄 알았어요”라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현실 앞에서 지금도 누군가에게 오랜 동안 자존감에 상처를 냈다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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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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