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영화 '은실이'는 사건의 뒤에 숨은 방관자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경아

한 아이가 태어났다. 성실한 아버지와 사랑이 많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주변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다. 보통은 그렇다.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누군지 모르고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죽었다. 그 아이는 사람들이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아이로 인해 마을은 뒤집히고 만다.

제2의 도가니라는 수식어가 붙은 애니메이션 '은실이'는 그렇게 시작한다.

어느 시골마을. 지역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생신 잔치날, 잔치가 열리는 마을회관에 동네 슈퍼마켓 딸인 지영이 피투성이인 갓난아기를 안고 나타난다.

지영은 자신이 데리고 온 아기가 얼마 전 사라진 은실이가 낳은 아기라고 은실이는 아기를 낳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린다.

은실이는 마을에 살던 지적장애인인데 몇 달 전부터 마을에서 보이지 않던 터였다. 은실이의 죽음과 은실이의 아기 때문에 마을은 발칵 뒤집히고 만다.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경찰의 조사가 이뤄지고 아기는 보건소에 맡겨진다는 말에 교장의 딸인 인혜가 아이를 맡아 키울 것을 자처한다. 그러나 경찰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자 수상하게 여긴 인혜는 사건을 밝혀내리라 마음먹는다.

어린 시절, 지적장애인 은실이를 유일하게 챙겨주던 인혜였기에 은실이의 죽음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편이라 여겼던 인혜의 부모님조차 인혜의 행동을 달가워하지 않고 인혜의 어머니는 지영이를 시켜 아기를 보건소로 데려가라고까지 한다.

지영의 손에 다시 인혜의 집을 떠나게 된 은실의 아기를 인혜는 다시 찾아오는데 그 날 이 후 낯선 사람의 손에 의해 은실이 아기가 납치되는 사건까지 벌어지게 된다.

사건을 파헤치려는 인혜와 마을사람들에 의해 자꾸 사라지는 은실의 아기의 행방을 뒤쫓으며 영화는 은실이를 둘러싼 마을의 추악한 진실을 현재와 과거를 비추며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영화는 은실이를 직접적으로 건드린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건을 알고도 모른척한 ‘방관자’들 또한 책임이 있음을 알린다.

이를테면 은실이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몰래 지켜보다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시험하기 위해 다시 은실을 위험에 빠뜨리는 여고생이라던가 은실이를 결정적인 순간에 모른척하고 잊은 채 살아가던 인혜와 같은 인물들을 내세워 결국 ‘은실이’로 대표되는 피해자들에게는 방관자라는 불편한 존재가 있음을 알린다.

이 영화를 보면서 중반 이후 내내 울면서 봤다. 그러다가 은실이와 연관된 인물들의 과거를 비추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가 끝난 후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방관자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비겁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말이다.

문득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생각났다. 급장 엄석대의 권력 아래서 쥐죽은 듯이 살던 아이들이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에 의해 엄석대의 만행을 고하던 날, 다들 엄석대가 나쁜 애라고 손가락질 할 때 “너희들이 더 나빠.”라며 서럽게 울던 김영팔이라는 아이의 말처럼 때론 가해자보다 방관자들이 더 나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곱씹어보며 나는 어느 순간에라도 떳떳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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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때 시인을 꿈꿨으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더불어 작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한다는 이야기에 겁먹고 문학인의 길을 포기. 현재 원광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여 예비사회복지사의 길과 자립생활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대한민국 평범한 20대 장애여성. 바퀴 위에 올라 앉아 내려다보고 올려다본 세상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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