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핀 진해 벚 꽃. ⓒ전윤선

왔다 간 흔적만 있다 하여 '흔적의 계절'이라 불리는 봄은 더 이상 계절이 아니라 절기에 속하는 '날'이라고도 한다. 험난한 겨울의 끝에서 마술 같은 선물을 선사하며 봄을 만끽하려면 활짝 핀 봄꽃나무 아래서 걸어볼 일이다.

사월, 진해의 거리는 벚꽃 잎이 눈처럼 나리면 그제서야 황홀한 봄이 왔음 실감한다. 사월이지만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매서운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리는 꽃샘추위가 다가오려는 봄에게 쉽게 자를 내어주려 하지 않는다.

진해 군항제는 봄꽃이 만개하여 휘날린다. 올해로 오십 해를 맞는 진해는 벚꽃치장을 하고 상춘객을 맞는다. 이에 발맞춰 중원 로터리부터 해군사관학교, 로망스 다리로 유명세를 탄 여좌천 공원까지 진해는 온통 꽃대궐로 봄꽃 축제가 한창이다. 벚나무와 진달래, 개나리 등, 길과 산 꽃나무에서 후드득후드득 봄이 떨어진다.

진해는 벚꽃 말고도 볼거리가 많다. 군항제 기간 동안 일반인에게 개방한 해군 사관학교는 군항제의 꽃이라 할만큼 행락객들에겐 인기 만점이다. 진해를 찾는 여행객은 해군사관학교를 보려 군항제를 찾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군사관학교에 들어서면 진해 앞바다가 은빛 물결을 뿌려 된다. 남해 바다의 아기자기한 작은 섬들이 바다와 함께 하니 망망대해의 허망함은 생각 속에 묻혀버린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군사 기밀에 속하는 군함을 군항제 기간 동안이 아니면 평소에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진해 군항제는 해군과 진해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역사 깊은 봄꽃축제 인 것이다.

작은 간이역. ⓒ전윤선

해군사관학교 내에선 군함도 군함이지만 거북선도 실제 크기의 모형으로 바다에 떠 있고 그 안에 들어가 체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에겐 접근이 불가능 한 것이 흠이긴 하다. 그러면 어떠랴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간 것만으로 한시름 놓아야 하거늘.

진해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던 해 찾았다. 그땐 진해까지 가는 셔틀열차는 새마을호뿐이어서 가는 길부터 험난하기만 했었다. 다음 해에는 군항제 특별열차를 타고 찾았다. 다시 찾은 진해는 낭만의 꽃길이 펼쳐져 있었고, 열차를 타고 간다는 설레임에 마음은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녹고 있었다.

진해의 벚꽃은 보는 것만으로도 달콤했다.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면 만화 '빨강머리 앤'에서 앤이 초록색 지붕 집으로 가는 길가에서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장면이 떠오른다. 요정들이 꽃잎으로 우산을 만들어 앤의 어깨에 내려앉는 모습을 상상하며 초록색 지붕 집으로 가는 길을 '꽃길'이라 앤은 이름 지어 불렀다. 진해 벚꽃은 그 때의 그 장면을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사관학교 내 거북선. ⓒ전윤선

그런 상상을 하며 해군사관학교에 진입하려 했으나 평일엔 셔틀버스만 진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셔틀버스는 휠체어가 탑승할 수 없는 버스였다. 휠체어가 탑승할 수 없는 버스를 바라보며 사관학교 진입은 포기한 체 아쉽게 돌아가야만 했던 아픈 기억이 아련하다.

그러나 이젠 해군 사관학교로 이동이 가능해졌다. 사관학교를 진입하는 버스가 저상버스로 교체돼 장애인 여행객도 사관학교에 들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진해 앞바다의 군함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진 여러 사람의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다.

벚꽃 말한산 축제. ⓒ전윤선

사관학교를 나와 진해시민의 편안한 휴식처인 왕제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왕제산은 해발 구백 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삼 년 전까지만 해도 왕제산에 오르려면 가파른 계단만을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오늘 만난 왕제산은 가파른 계단 옆으로 모노레일이 설치됐다. 모노레일을 타고 왕제산에 오르니 진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군함은 장난감처럼 작게 보이고 뜨문뜨문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은 심심할 것 같은 바다와 파도를 만들어 정겹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왕제산은 '무장애 공원'이다. 공원엔 사랑의 탑이 있고 탑 안으로 진입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탑 2층엔 전시관이 있고 이 곳으로 올라갈 수 있게 엘리베이터도 잘 설치돼 있다.

탑과 공원을 산책하다 또 한 번 놀란 것이 있다. 탑 밑으로 가파른 계단이 있는데 그 옆에 리프트가 장착돼 있는 것이다. 산 정상에 리프트가 설치돼 장애인들도 왕제산 공원을 산책하며 자유롭고 느긋하게 봄꽃과 마주할 수 있다.

다시 모노레일 타고 내려와 중원로터리 풍물시장에 들렀다. 풍물시장은 장터에서만 볼 수 있는 서정이 넘쳐났다. 각설이는 신나게 노래를 불러제끼고 엿장수는 엿장수 맘대로 가위를 두들기며 엿 팔기에 여념이 없다. 로터리 원을 따라 꽃단장을 한 마차는 승객을 불러 모으고 있고, 사람들은 장터국밥 등 재래장터에서만 느끼는 서민의 정을 듬뿍 먹고 있다.

이렇게 짧은 하루는 흔적의 계절 봄처럼 찰나에 지나가 버리고 있다. 그리고 진해에서 유명한 여좌천 '로망스 다리'는 빠르게 볼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진해를 다 둘러보기엔 좀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진해의 꽃들은 원없이 보고 갈 수 있어 찰나의 봄과 마주칠 수 있었다.

진해 여행길 지도. ⓒ전윤선

진해 군항제 가는 길

1.서울역에서 마산 행 KTX 탑승(오전 6시 50분/오전 9시 10분 열차)

출발 : 서울역 오전 9시 10분 열차 탑승

도착 : 마산역 도착 12시 16분

열차요금 : KTX 편도 24,300원 '장애할인' 적용

2.마산역에서 경남장콜 이용 '즉시콜'(1566-4488)

도착 1시간에서 30분 전에 장콜 예약하여 진해역까지 이동 이동거리는 20분. 이틀 전에 미리 예약해도 됨.

장콜요금 : 2천원

3.진해역에서 중원로터리 일대 벚꽃 축제현장으로 이동. 해군사관학교 입구에서 사관학교 진입 셔틀(저상)버스이용.

셔틀버스 요금 : 1,000원

해군사관학교 둘러보고 다시 중원로터리로 나와 민속재래장터에서 입맛대로 골라 맛있게 냠냠.

왕제산 공원으로 고고 씽~. 왕제산 으로 올라가는 '모노레일' 탑승. '장애할인' 적용.

모노레일 요금 : 1,000원

왕제산 공원 들러보고 다시 여좌천공원 으로 고고 씽~. 여좌천 공원에서 드라마 '로망스' 다리에서 벚꽃과 함께 찰칵! 진해 군항제에 온 기념사진 팍!

4.오후 4시쯤 경남장콜 예약. 마산역에서 5시 30분 서울행 KTX 탑승. 서울역 8시 30분 도착

5.참고 : 마산역에서 9시 20분 KTX 열차도 있다. 본인의 여행 스케줄대로 이용하면 된다. 진해군항제 기간 동안 임시열차인 무궁화호가 운행되지만 사전에 여행사에 연락하여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라고 알려야 리프트 장착 기차를 배치한다. 새마을호는 전동휠체어 좌석이 없다.

6.진해 군항제는 4월 1~10일까지 축제가 열린다.

7.문의

다음카페 (휠체어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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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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