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애초에 미디어 비평을 목적으로 한 칼럼을 시작할 당시의 집필의도는 방송, 신문, 또는 인터넷 미디어들에서 그려지고 있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살피고, 그것이 실제 장애인들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었다.

그러나 칼럼을 쓰기 시작한 지 약 3개월이 지난 지금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서 느꼈던 것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텍스트의 수 자체가 현저히 적고, 그 곳에 나타난 장애인의 모습 역시 몇 개의 유형만으로 단순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장애인 관련 미디어 논의에서 여러 차래 지적된 문제기도 하지만, 현재의 미디어들이 장애인 또는 장애를 의제로 삼는 일은 거의 드물다.

예컨대 2005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방송 모니터단'의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시사ㆍ교양 분야에서 장애인을 방송의 소재로 삼은 비율은 1~2% 남짓으로 나타났는데, (에이블뉴스 기사 - ‘장애인권방송지표로 방송 분석해보니…, 2005-12-19) 이는 우리나라의 등록장애인 비율이 4.5% 정도임을 감안할 때에도 턱없이 부족한 비율이다.

이와 같은 비율은 방송 3사의 미디어 텍스트뿐 아니라 영화나 신문 또는 최근의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장애인관련 텍스트의 양적인 부족도 문제이지만 그 속에 담긴 질적인 부분 또한 문제가 많아 보인다.

시사ㆍ교양 부문으로 한정해 볼 때, 해당 미디어 속에 담긴 장애인의 모습은 역경의 극복자 또는 범죄의 피해자로서만 그려지고 있다.

앞선 칼럼에서도 논의한 바 있지만, 기존 미디어의 이러한 태도는 장애를 개인적 차원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로 단순화시킴과 동시에 장애인 본인의 능력을 은연중에 폄하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SBS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화면 캡쳐. ⓒ정연욱

또한, 장애관련 미디어 텍스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담 형식의 내용에서 미디어의 포커스는 장애인이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에 맞추어지기보다는 장애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불편함 혹은 그로 인한 아픔을 조명하는 데 머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장애를 가졌음에도 ‘능숙하게 일을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비장애인들로 하여금 일종의 ‘신기함’과 ‘대단함’을 자아내기에 급급한 자극적 연출 방식 또한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미디어 속에서 장애인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미디어의 접근 방식은 장애인을 평소에 접할 길이 거의 드문 비장애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 사회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장애인은 결함 있는 사람으로 비장애인의 보호와 사랑이 필요한 존재라는 선입견을 더욱 굳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는 비장애인들에게 ‘강요된 눈물’을 흘리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는 <사랑의 리퀘스트>, <인간극장>에서 신체적 장애로 인해 힘들어 하는, 혹은 <9시 뉴스>에서 범죄 피해자로서의 장애인의 모습만을 봐야 하는 것일까?

필자는 이제 미디어 속 장애인에게서 <무한도전>의 유재석, <1박 2일>의 이수근의 모습을 보고 싶다.

장애인에게도 <무한도전>, <1박 2일>을 허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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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칼럼리스트
미디어 속 특정한 대상의 이미지는 미디어 생산자의 시각에 따라 자의적ㆍ선택적으로 묘사된 이미지다. 이렇게 미디어를 통해 생산된 이미지는 수용자의 사고와 행동 등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미디어 생산자의 시각을 살피는 것은 꽤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미디어 속에 표현된 ‘장애인’이라는 집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본 칼럼에서 미디어 속 ‘장애인’이 어떻게 묘사되고, 그러한 묘사가 실제의 ‘장애인’의 모습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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