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용어가 있다.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의 라틴어로 본래의 뜻은 사용자가 컴퓨터나 네트워크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할 때 사용된다.

뜬금없이 네트워크 용어를 언급하는 이유는, 아이의 신체적 장애와 무관하게 참 많은 일들이 아이의 주변에서 자유롭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언이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해 내고 어디에나 가기에는 나이도 너무 어리고, 말 그대로 신체적 장애가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이는 차치하고, 주언이의 장애는 여섯 살 아이가 경험해볼 만한 여러 일들을 해내는 데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난 주말에는 낙안읍성 민속마을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지만 오히려 가까워서 그런지 직접 방문은 잘 안 하게 되는 곳 중의 하나다. 서울 사람이 63빌딩이나 남산에 잘 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봄이 오는 길목이라 햇살은 참으로 따뜻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만 없었더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오후 한나절만큼은 아이들의 나들이 날씨로는 그만이었다.

민속마을로 들어서는 초입, 가끔씩 눈에 띄는 기와집을 보면서 4살바기 막내가 “와~ 옛날 집이다!”라며 감탄을 연발한다. 엄마아빠가 얘기해준 적은 없으니 어린이집에서 옛날 집에 대해 뭔가 배운 게 있는 모양이었다.

민속마을로 들어서서 제일 먼저 대장간을 들렀고 이어 객사를 지나 아이들의 눈길을 끈 곳은 동헌이었다. 입구에 마네킹 포졸들이 삼지창을 들고 서 있어서 아이들한테는 충분히 위압감을 느끼게 할만한 곳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들어서자 엉덩이를 까발린 채 곤장을 맞고 있는 죄인과 무릎을 꿇고 추궁을 당하고 있는 죄인, 그리고 준엄하기 짝이 없는 사또를 보면서 아이들의 눈은 동그래졌다.

죄인의 모형은 무서웠는지 좀처럼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이은희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초가집에서 물끄러미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이은희

내헌 안에 있는 부엌에서 예전 방식대로 아궁이에 불을 때고 음식을 준비하는 아낙네의 모습과 사람 사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작은 초가집에서 아이들의 눈은 다시 한번 빛났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모형일 뿐이었지만, 그런대로 아이들에게 상당한 학습이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자료관에 전시되어 있는 옛 물건 하나 나를 꼼꼼히 살피고 나니 상당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뭘하고 놀까 생각하다 민속마을 내에서 판매하는 연을 하나 사서 날려보기로 했다.

엄마 어릴 적에는 동네 문구점에서 파는 싸구려 가오리연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전력질주로 바람을 일으키며 연날리기를 하곤 했는데, 요즘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싶은 마음이었다.

아빠가 얼레에 감긴 실을 조금씩 풀어주자 연이 바람을 받아 하늘 이 떠올랐고,아이들의 입에서는 “와~”하는 탄성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이내 스스로 해보겠다며 난리를 치는 통해 순서를 정해 차례대로 한번씩 연을 날리고는 다른 사람들이 날리고 있는 연과 높이도 비교해보고 또 각자 저희들 스스로 얼레에 실도 다시 감아보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럴싸한 시간여행이었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얼레를 작동하는 모습. ⓒ이은희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이은희

옛날 주막집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초가집 마당에 있는 와상에 앉아 맛있는 파전으로 주전부리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달콤한 낮잠에 빠진 아이들을 보며, 특히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충분히 하루를 즐겨준 우리 주언이를 보며 속으로 가만가만 속삭였다.

“오늘 하루 유모차에 앉아 옛사람의 삶을 간접 체험하고 연도 날려 보았구나. 두 발을 땅에 딛고 네가 원하는 걸 직접 만져 보고 느껴볼 순 없었지만, 그 이상의 감각으로 느꼈으리라 믿어.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시공간을 초월해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많이 많이 가져보자.”

고운 꿈을 담은 주언이의 유비쿼터스 라이프는 앞으로도 쭉~ 계속될 예정이다.

민속마을에서 아쉬웠던 점은 옛가옥의 재현이라 그런지 경사로가 없었다는 것. 아이와 유모차를 번쩍 들어올린 채 입장해야 했다.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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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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