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부터 이런 저런 일들이 꼬리를 문다. 남겨진 일들이 발길을 붙잡고 떠나고자 하는 마음은 벌써 그 곳에 가 있다. 기차역은 늘 떠남과 돌아옴으로 분주하고 역에 발길이 닿는 순간 미지의 세상을 향해 가슴이 떨린다 새롭게 단장한 역사는 편의를 제공하지만 지난 추억의 아련함은 찾을 길 없다. 그래서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가 보다. 아련한 추억을 찾아…….

어느 새 강릉역에 도착했다. 저녁 여섯 시가 넘었는데도 해는 아직 서산을 넘지 못했다. 훤한 낯빛을 뒤로하고 경포대로 달려간다. 강릉의 날씨는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백두대간 능선을 넘지 못하니 내륙의 따스한 공기와 섞이지 못해 쌀쌀함을 넘어 한기마저 느껴진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더 춥다. 달리는 발걸음을 추위가 가로막는다.

얇게 입은 옷깃 속으로 서릿발 같은 칼바람이 파고든다. 춥고 배고프고 손등에 부딪치는 쌀쌀맞은 바람을 맞으니 더 춥고 배고프다. 민생고부터 해결해야 했다. 뱃속이 따스해야 몸에 온기가 살아날 것 같아서다. 몸도 춥고 허기가 지니 더욱 춥게 느껴진다. 식당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경포대 앞바다를 바라보며 싱싱한 활어를 먹어야 하지만 수족관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횟감은 싱싱하지 않아 보였다. 횟감보다 더 그리운 건 뜨끈한 국물이엇다.

경포대. ⓒ전윤선

아니. 일행은 국물보다 숯불에 얹어진 갈비가 먹고 싶다 한다. 이 곳까지 와서 웬 숯불갈비냐고 하겠지만 수족관 속 물고기를 보면 활어 생각은 싹 달아난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한식 정육식당.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한기가 조금은 가신다. 주인장에게 얼른 불을 피워 달라고 졸라댄다. 숯불 위에 얹힌 고기가 지글지글 익는다. 고기 익는 냄새가 허기를 더 허기지게 한다. 한상 차려져 나온 사이드 반찬들, 식당을 찾아 헤맨 보람이 있다. 두릅장아찌, 깻잎장아찌, 각종 나물반찬, 식탁이 푸짐해 졌다. 그 맛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입이 즐거움에 취하서 보니 어느 덧 배는 부르고, 몸에는 한기 대신 온기가 퍼져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까만 밤바다를 거닐어 본다. 경포대 해변 북쪽 나무데크 길 끝에서부터 전동휠로 달려본다. 저녁을 먹기 전에는 추웠지만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나니 언제 추웠냐는듯 즐겁기만 하다. 즐겁기만 한 이 길을 친구들과 함께 거닐어 본다.

강릉 앞바다에서. ⓒ전윤선

“자~이 길이 나무로 만든 길이야”

“신나게 달려볼까나?”

“바다도 즐기면서, 별도 헤아리면서??”

“야호!~ 저기 바다 끝에서 빛나는 빛은 뭐지?”

“저어~기, 저 훤한 불빛? 별이 바다로 내려온걸까?”

“아니야 저건 아마도 오징어잡이 배 아닐까?”

“그런가? 그런데 저 바다에 떠 있는 빛은 오징어배 불빛보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빛같아”

그렇게 싱긍벙글 밤바다를 달리다 일행과 해송밭 숲길을 바람처럼 가고 있을 때였다.

“퍽!, 아~”

앞만 보고 신나게 걷고 있는데 갑자기 퍽 소리가 나더니 자그마하게 "아~"하는 소리가 났다. 속히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그녀가 솔밭에 전동휠체어와 함께 넘어져 있었다.

“어떡해! 괜찮아? 다친덴 없어?”

너무놀라 말도 잘 나오질 않았다.

“응 괜찮아, 근데 휠체어가 넘어져서 어떻게 세우지?”

넘어진 그녀가 오히려 태연하다.

“사람들 좀 불러봐, 휠체어 세워야지”

“휠체어가 문제가 아니라 어디 다친덴 없는 거지?”

“응 정말 괜찮아, 난 넘어질 때 어떻게 넘어져야 다치지 않는지 알아, 그래서 괜찮아”

다행히 그녀가 넘어진 데크로 아래와 옆은 모레와 소나무 숲길이고 흙이라서 무사했던 것이다. 뒤따라 오던 일행도 놀라서 그녀에게 물어온다.

“어머 괜찮니? 다친덴 없어?”

“응 괜찮아, 그러니까 빨리 따라와야지, 언니들 따라오나 보느라구 뒤돌아 보다 넘어졌잖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는데 119 부를까?”

“그래 부르자”

조금있으니 구조대가 왔다. 그런데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난감했다. 넘어진 그녀는 다친 데가 없어서 구조대를 부른 게 미안했다. 그래서 구조대가 오기 전에 넘어진 그녀에게 아픈척하라고 했다. 구조대가 와서 별일없냐고 하며 그녀를 보며 말하자 다친데 없다며 휠체어를 먼저 일으켜 세워달라고 했다.

미안해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일행은 뒤돌아서서 구조대가 보지 않게 괜스레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 상황이 어찌나 웃기던지 구조대가 돌아간 후 그녀들은 경포대 에서 큰 웃음 지으며 잠들어 있는 바다를 깨우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다친 곳은 없었다. 그녀는 작은 체격이어서 넘어져도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고 자랑을 한다. 부상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이제 숙소를 찾아 나서야 할 때이다. 시간은 밤 열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 곳 저 곳 숙소를 찾아 다닌다. 예전에 묵었던 숙소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다. 할 수 없이 경포대 남쪽 현대호텔 근처에서 숙소를 찾는다. 손님을 기다리는 텅 빈 숙소는 많으나 일행이 접근할만한 숙소는 찾기 어렵다.

불편함을 감내하고 '수' 란 모텔을 오늘밤 숙소로 정했다. 주인장 할아버지가 숙소 진입로에 나무로 만든 경사로를 깔아줘 숙소 안으로 진입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숙소엔 널찍한 침대와 작은 침대가 나란히 누워 손님을 기다린다.

쥔장 할아버지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호자도 없이 저들끼리만 온 것이 못내 걱정이 됐는지 안절부절하며 왔다 갔다 한다. 걱정할 것 없다며 쥔장을 안심시킨다. 우리끼리도 잘할 수 있으니 화장실용 의자만 갖춰주면 된다고 하니 부리나케 야외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의자를 구해 오셨다. 이제껏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끼리 온 적은 한 번도 없고 보호자와 함께 왔다고 한다. 자신이 어떻게 도와야 할 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밤이 삼켜버린 경포대 앞바다는 파도 소리만 들릴 뿐이다. 배란다 문을 여니 저 멀리에서 바다에 내려앉은 별빛과 파도 소리인지 빗소리인지 구분이 안가는 소리만 들려올뿐, 경포바다는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들어간다.

모든것을 다 받아주는 바다와 조우한다. ⓒ전윤선

늦게 잠에서 깼다. 바다는 파랗게 빛나고 있다. 1.8키로나 되는 모래밭 위에 데크로 길을 밟아본다. 지난밤에 보지 못했던 경포대가 파란 하늘과 만나고 있어 수평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오늘 바다는 하늘과 꼭 닮은 쌍둥이다.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빼들고 바다와 조우한다. 길다방 커피와 하늘색과 꼭 닮은 쌍둥이 경포바다, 그 곳엔 지난 날의 그리움이 묻혀 있었다.

언제 적이던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아득한 기억 저편의 필름들이 느린 화면으로 영화처럼 지나간다. 젊고 싱싱한 젊은날의 나. 두 발로 힘차게 자전거 타고 경포호수를 돌며 추억을 만들었던 그 때의 기억들. 경포대 모래밭에 스무 살 청춘의 발자국을 남겼던 그 때. 스무 살의 나는 동해바다에서 들끓던 청춘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었다.

꿈처럼 스쳐지나간 한여름밤의 열정 낭만, 묻혀버린 아픔과 꿈, 경포바다엔 스무살의 나와 불혹의 내가 그 곳에서 다시 만났다. 이젠 네 발로 걸어서 온 이 길, 이 곳 경포대가 새롭게 안겨온다.

착한 가격의 경포가든 식단. ⓒ전윤선

여행 팁

◈청량역에서 강릉행 무궁화호 기차를 탄다.(6시간 16분 소요)

-전동휠체어석 2장 수동휠체어석 2장이 가능하다.(일단 전동휠 2좌석 수동휠 2좌석 끊으면 전동휠 4대까지 탑승 가능하다.

-기차 요금은 1인 9,800원(편도)

◈강릉역에서 내려 경포대까지 7키로미터 남짓 전동휠로 걸어간다.

- 강릉역에서 경포대까지 특별한 이동수단이 없어 전동휠로 걸어가야 한다.

-경포대까지 가는 길은 전동휠로 걸어가기 괜찮다.

◈경포대는 해변길이만큼 나무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경포호수 둘레길을 즈려밟는다. 4키로 남짓.

◈경포대 횟집은 수족관 횟거리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경포호수 뒷쪽 우체국 뒤

'경포가든'에서 식사하면 좋다. 전동휠 접근 가능. 음식맛 짱! 강추.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 862-2 경포관광나이트 뒤 송원파크 앞.

-전화 :033-644-2229/644-2249 휴대폰 011-373-4577 대표 오옥철

-가격 8천원부터.

◈숙박 : 경포가든 뒤 '하이든 파크'. 편의설 완비 강릉시 경포동 858-1

-전화 : 033-644-1347~8(숙박요금 : 주중 3만원 주말 8만원, 성수기 변동 많음)

◈볼거리 : 경포호수, 경포대 해수욕장, 음력 5월 5일 단오제, 오죽헌, 강릉 초당두부

◈문의 : 다음카페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휠체어배낭여행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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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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