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에게 좋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고픈 마음은 어떤 부모나 마찬가지일 터. '돈 들여서 값비싼 것은 해주지 못해도 산천을 함께 여행하며 맑은 공기, 좋은 경치를 구경시켜 주는 일이야 무엇이 힘들겠는가'라고 손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도전정신 강한 우리 가족에게 그 동안 불가능한 것이 있었다.

주언이가 보행에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사실 '등산'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다.

날씨가 조금씩 풀리고 따스한 햇살이 창으로 스며드는 휴일 오후. 가볍게 산책이나 나가볼까 했던 얘기가 어쩌다 등산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얘기가 나오자 바로 가벼운 짐을 꾸려 가까운 산행에 나섰다. 우리는 언제쯤 아이들이랑 산에 한 번 가보나 했더니만,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걷지 못하는 여섯 살 주언이는 배낭형 포대기에 묶어 아빠가 업고, 네 살바기 동생은 걸리기로 했다. 혹시나 보채면 안아주려고 또 다른 아기띠도 하나 챙기고, 간식이며 물이며 간단한 짐을 신속히 꾸리고 있는데, 처음 경험해보는 ‘등산’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출발도 하기 전부터 들썩들썩 신이 난 모습이다.

보무도 당당한 울집 남자들. ⓒ이은희

아직 새싹이 파릇파릇하진 않았지만 초봄 기운이 완연히 느껴지는 산행이었다.

결혼 전 해돋이를 보러 신새벽에 남편과 같이 가본 걸 제외하면 단 한번도 가족과 같이 하지 못했던 산행이어선지 엄마인 나 또한 상당히 설레는 마음이었다.

출발할 때 계획은 아이들이 힘들어하거나 아이를 업고 가는 남편의 체력에 한계가 느껴지면 주저없이 돌아 내려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막내를 포함한 아이들 모두 별달리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 없었고, 남편 또한 힘들어도 끝까지 가보자며 결국 봉화산 정상까지 도달하였다.

아빠 등에 업힌 주언이는 힘들어 하기는커녕, 정상으로 향하는 산길 굽이굽이, 나무 한 그루, 주인 없는 묘 하나하나까지 이것 저것 물어가며 등산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걱정했던 막내 또한 돌멩이를 집어 산자락에 던져 보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집어 들어 칼싸움하는 시늉도 하며, 작은 발걸음도 당당히 제 힘으로 정상까지 올라갔다.

아빠 등에 업혀서 환한 표정의 주언이. ⓒ이은희

정상에 도달한 자만이 산에 오르는 기쁨을 얘기할 수 있다고 하였던가. 그 동안 상상도 못했던 일을 아이들과 함께 해내고 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이 밀려왔다.

우리 가족이 너무나 자랑스럽게 느껴졌고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묵묵히 아이를 업고 산에 오른 남편에게도 깊은 고마움과 사랑이 느껴졌다.

산 정상에서 간단한 주전부리로 체력을 회복한 후 기분 좋게 하산을 시작하였다. 졸린 막내 녀석이 안아달라고 보채는 통에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보다 쉽지 않았다.

막내는 아빠가 안고, 주언이는 엄마가 업고 내려왔는데, 아이를 업은 어깨가 하나도 무겁지 않고 힘들지 않게 느껴졌던 건 왜였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런 걸 모성애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누구에게나 첫 시도는 어렵지만 두 번째는 그렇지 않은 법. 올 봄 우리 가족의 단골 나들이 코스는 바로 산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다음 번에는 연둣빛 새싹도 파릇 파릇하고, 진달래, 개나리도 지천에 피어 있는 산길로 아이들과 함께 가야겠다.

산 정상에 오르니 저 멀리 우리집이 보인다.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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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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