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장한다, 고로 존재한다". ⓒ한경아

화장. 20대에 들어선 보통의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들 중의 하나. 설령 좋아하지 않더라도 사회의 암묵적인 약속으로서 해야만 하는 행위.

나는 화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학생 시절 어른이 되면 해보고 싶은 일들 리스트 중 베스트 3 안에 들었던 일이 화장이었다. 나머지는 예쁜 구두신기랑 미니스커트 입기 정도? 안타깝게도 2개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다행이도 화장만은 허락되었다.

정확히 20살이 되자마자 화장을 했다. 내가 처음 화장품 즉 메이크업 제품을 받아본 게 그 무렵이었다. 지금은 이름조차 잊어버린 어느 지인이 선물해 준 것인데, 사실 화장품은 갖고 있었으나 당시 나는 여드름 바가지인 고등학생이어서 화장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또래보다 늦게 학교에 입학한 탓에 20살임에도 20살 티도 못내고 다니던 고 2, 그 때가 내 욕구불만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소풍갈 때, 그 때 화장을 했었다. 아마 여고생들이 자기를 한껏 꾸밀 수 있도록 허락된 때는 소풍 아니면 수학여행, 졸업사진 찍을 때 뿐이지 않을까?

칙칙한 교복에서 벗어나 예쁜 옷을 입고 화사하게(그리고 어색하게) 화장을 하면 "나는 여자다!!" 라는 정체성이 확고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 화장을 시작했을 때는 엄마나 내 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 집 여자 중에 내가 화장을 가장 늦게 시작했는데, 피부 상태가 엉망이었던 것도 한 몫 했었다.

동생이나 엄마가 화장을 몇 번 해주다가 나만의 화장품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그 동안 엄마, 동생의 화장술(?)을 곁눈질로 배워둔 걸 바탕으로 내 손으로 화장하기에 도전했다.

내 손으로 화장하기는 좀 어려운 과제이기도 했는데, 화장 중에서도 특히 눈 화장은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손가락도 굳어서 잘 움직여 지지 않는데다가 손바닥이 뒤집어 지지 않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중노동인 셈이다.

하루 종일 누워서 천장화를 그렸다는 미켈란젤로의 고통과 비슷하다면 너무 오버인 걸까? 어쨌든 여차 저차해서 내 손으로 첫 화장을 끝낸 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셨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런 기분이었다. 세상을 하나 창조한 기분.

지금은 학교를 졸업하고 밖에 나갈 일이 없어서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낮에 나갈 일이 있으면 되도록 화장을 하는 편이다.

화장 지우기 번거롭다며 하지 말라고 엄마가 옆에서 잔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난 오늘도 화장을 하련다. 고로, 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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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때 시인을 꿈꿨으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더불어 작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한다는 이야기에 겁먹고 문학인의 길을 포기. 현재 원광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여 예비사회복지사의 길과 자립생활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대한민국 평범한 20대 장애여성. 바퀴 위에 올라 앉아 내려다보고 올려다본 세상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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