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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시각장애인 안나푸르나 등정기

히말라야 4130 m, '피오줌이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2-03-02 09:26:46
또 눈을 떴다. 어디가 어딘지 아직 모르겠다. 얼굴의 볼 살이 찢겨나가는 듯한 혹한의 안나푸르나에 있어야 하는데, 춥지도 않다. 숨도 안차다. 머리의 통증도 속매쓰꺼움도 없다. 살을 에는 돌풍도 불지 않는다. 목숨을 내놓고 가야하는 크레바스도 보이지 않는다. 손에도 발에도 동상이 없다. 옆에 있어야 할 도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 곳이 어디일까?

한참을 생각 후에 “후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렇다. 이제 나는 안전한 땅, 축복의 땅, 흙이 있는 곳, 생명의 풀이 있는 곳, 미끄러지지 않는 안전한 길이 있는 곳에 있는 것이다. 마냥 행복하다. 아아!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던가?

며칠 전까지 나는 혹독한 추위와 고산증(두통, 구투, 목건조증)과 사투를 벌이며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있었다.

한국산악회 전북지부 이중기 원정단장(전주 중앙여고 교사), 김유성 구조대장(원광대 교수) 와 함께 2월 16일부터 20일까지(4박 5일) 안나푸르나(에이비씨)에 도전하고 있었다.

누군가 시켜서 왔다면 백 번도 더 포기를 했을 것이다. 뭔가를 생각하겠다고 의미를 두면서 참가했지만 내 머릿속은 조금만 걸어도 숨통이 헉헉 막히는 추위와 고산증과 크레바스와 싸우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발목을 집어 삼킬 듯한 날카롭고 뾰족한 눈얼음 조각과 살을 에는 돌풍을 떠올리면 생각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괜히 히말라야에 왔나보다. 악마의 발톱으로 변한 쇠조각 같은 바위조각길과 상어의 이빨로 변한 만년설은 금방이라도 내 발바닥을 꿰뚫고, 내 발목을 집어 삼킬 태세다.

온도계를 만져본다. 차라리 모르면 더욱 좋았을 것을. 온도는 섭씨 영하 30도를 가리켰다. 이런 곳을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안내한 도우미와 머리 깊숙이 새겨진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이미지도 에너지가 되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바람 한 점, 눈송이 한 점 피할 수 없고, 두 다리를 금방이라도 집어 삼킬 것 같은 만년설과 신발을 금방이라도 뚫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얼음조각 그리고 머리가 깨질듯한 통증과 삼키면 곧바로 토하는 매스꺼움과 살을 에는 매서운 돌풍뿐인 안나푸르나에서 가족을 떠올리니 눈물은 어찌 그리 펑펑 흐르던지. 옆에 있는 도우미 모르도록 소리를 죽이고 머리로 마음으로 내내 눈물을 흘렸다.

온 몸이 얼어버릴 극한 지역에서의 눈물은 따끈한 물을 마시는 것처럼 몸 전체를 따끈하게 하는 작용을 해주었다. 매서운 돌풍이 들어가지 말라고 만들어진 고글은 나의 눈물을 가두어서 얼음덩이를 만들었다. 가끔 고글을 들면 '툭' 얼음눈물덩이가 신발위로 떨어진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고 그 동안 조금이나 잘못 살았던 삶을 반성해 본다. 특별한 것이 아니고 평범한 것이었다. 가족들 부모님, 친구와 지인들 등등.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면 잘 해주어야지 하고 다짐을 해본다.

멍한 순간이다. 도우미 배낭과 내 손목에 매어 있던 1m짜리 생명줄이 갑자기 당겨진다. ‘헉!’ 쓰러진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딱 3분만 잤으면 소원이 없겠다. 엉덩이가 너무 차갑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은 용수철처럼 하늘로 튀어 오른다.

지옥의 코스, 가파른 눈얼음길은 가는 내내 '내 몸에 숨통이 왜 존재하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입속서 나오는 열기가 고철덩이마저 녹여버릴 기세다. 송곳보다 뾰쪽하고 톱니보다 날카로운 눈얼음길을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머리가 쭈뼛 서고 발목이 후들거려 숨통이 터질 지경이다. 수시로 발생한 눈사태로 생긴 설산을 위태위태 기어가고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밭을 걷고 또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포기냐? 강행이냐? 현기증이 돈다.

순간 나를 인도하는 도우미와 가족 생각이 혼미한 뇌리를 스친다. “경태형! 할아부지! 아빠! 여보! 힘내세요! 힘내!!!” 하는 소리가 고막을 강하게 때린다.

정신이 든다. 재빨리 배낭을 벗고 귀중한 생명수를 꺼내 마신다. "아! 차가운 살얼음 물이다.” 몇 초 지나야 차가움이 따스함으로 바뀐다. 설탕물을 그냥 넣어두면 아이스 바로 먹을 수 있고, 팥빙수로 먹을 수 있는 온도로 물이 얼어 있었다.

신발 속으로 손을 넣어 보았다. 냉동창고다. 손과 발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발가락도, 손가락도 만년설과 날카로운 바위조각에 노출되어 엉망이다. 꼭 어릴 때 할머니가 챙겨 주시던 광주리의 홍시감처럼 변했다. 나의 손과 발은 물렁거리는 순서대로 터지고 있었다. 꼭 구멍 난 자전거 튜브처럼 여기저기 실로 꿰매고 밴드로 땜질하였다. 동상에 걸려 탱탱 부은 곳은 칼집내 죽은 피를 뽑아냈다.

설상가상으로 눈밭에 빠져 오른쪽 무릎이 접지되어 탈이 났다. 40도의 가파른 눈얼음구간을 절룩거리며 올라가는데 한기를 느꼈다. 사방은 온통 만년설로 뒤덮여 앉아 쉴만한 공간도 없다. 애처롭게 가야하는 이유는 뭘까?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나는 배낭서 자켓침낭을 꺼내 몸에 뒤집어 썼다. 굶주린 배는 눈을 퍼 먹어 허기를 채웠다. 그러나 금방 노란위액을 쏟아내고 피가래가 나왔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가는 의미가 무엇일까? 과연 정상을 밟을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가 생각난다.

새벽이 두렵다. 오늘도 얼마의 고문을 나 자신에게 시켜야 될지? 오늘은 악마의 발톱 얼음조각이 얼마나 나의 살을 도려낼지? 칼바람이 얼마나 나를 냉동인간으로 만들어 버릴지? 밤에는 지축을 뒤흔드는 돌풍이 얼마나 잠을 설치게 할지? 아무튼 확실한건 이 것들은 나의 힘과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극한 상황이다. 더듬거리며 아침밥 대신 얼음물을 입에 억지로 밀어 넣어 삼키고, 눈치 봐 가며 생리현상 해결하고 그 날 필요한 식량과 장비를 점검하고 복장 착용하기도 왜 그리 바쁜지.

나는 삶에서 누구를 광명의 세계로 인도 하였는가? 누구를 바른 길로 가도록 고무시켰는가? 나로 인하여 올바른 삶을 살도록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물어본다.

오늘도 최소한 2000kcal 이상의 영양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혹한과 고산증으로 식욕마저 떨어진 상태에서 허기를 만년설을 씹어 먹으며 배고픔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아내는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 했다. 여자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후회가 된다.

많은 갈등과 고통 속에서 코피와 피오줌이 나왔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고 위로해 본다. 밤하늘은 별이 쏟아질 것 같이 선명하다. 솜털처럼 푹신한 눈밭에 누워 그대로 잠들고 싶다. 3년 전 막내아들과 함께 달렸던 ‘칠레 아타카마사막 250 킬로미터 완주기’ ‘아들의 눈으로 사막을 달리다’출판이 기다리고 있을 그 곳으로…….

마지막 날이다.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한다. ‘오늘이 끝’이라는 생각은 이미 육체의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이내 시각장애인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4130 고지를 두 발로 넘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핑 돈다. 이제 삶의 의미를 다시 새기자. 죽음의 문턱이 삶과 바로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푸른 들과 산을 가진 조국에게 감사한다. 다시 새로운 삶, 더 정직한 삶, 더 친절한 삶, 더 성실하고 약속도 잘 지키고, 아이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삶을 살자고 다짐해 본다.

힘든 고통과 어려움이 많을수록 완주 후의 성취감이나 도전하는 의미가 그 만큼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끝까지 불평 없이 안내해 준 도우미 김유성 구조대장님과 이중기 원정 단장님, 한국산악회 전북지부 최병선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님, 열심히 응원해 준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과 손자와 며느리, 그리고 지인들에게 감사드린다.

‘세계 4대 극한 사막 마라톤대회인 사하라 사막(Sahara Race), 고비 사막(Gobi March), 아타카마 사막(Atacama Crossing, 남극대회를 장애인으로서 세계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국가유공자(시각1급)가 이번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4130 미터) 등정에 시각장애인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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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송경태 (skt221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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