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올레 길. ⓒ전윤선

이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주섬주섬 가방을 싸들고 오래도록 아껴뒀던 지도 한 장을 펼친다. 그렇게 바다를 가장 또렷하게 볼 수 있는 제주로 떠난다.

마을을 품은 바다는 가만히 있어도 나에겐 실로 많은 것들로 다가온다. 바싹 마른 빨래에서 느껴지는 햇볕의 촉감, 빗소리마저 가져다주는 한 장의 추억. 바람이 날아다 주는 비릿한 향기, 한밤중 바다와 맞닿은 수평선에서 전해오는 별들의 소식.

온몸에 힘을 빼고 걸음을 멈추면 따스한 솜털 같은 것이 심장에 얹힌다. 여행길 위라면 그런 행복을 더 많이 기대해도 좋다. 그저 낯선 길을 느긋하게 걷기만 해도 운명처럼 다가오는 수많은 인연들과 마음 속에 숨겨놓고 싶은 소중한 것들이 마구 쏱아질테니.

오늘밤 별을 바라보며 어둠에 숨어 숨소리만 내는 바다의 거대한 꿈을 소박하게 말하고 싶다. 서로의 마음을 쓰다듬으며…….

겨울에 갇힌 제주에도 봄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언 땅을 뚫고 생명의 기운은 봄 햇살을 머금고 용솟음치고 있다.

이 곳은 벌써 봄이 왔는지 아지랑이가 한창이고 바람은 봄을 실어 나르느라 바쁘다. 해변 산책길 제비꽃은 보랏빛 꽃망울을 수줍게 피워내고, 애월의 작은 산책로엔 봄기운이 완연하다.

애월해안 산책로는 올레길이라 할 수도 없을 만큼 그 길이가 작다. 작은 올레길은 지역 주민들과 몇몇의 여행 고수들만 찾는다고 이 곳 주민이 일러준다. 어쩌면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정막이 깨지는 것보다 여행 고수들과 지역 주민. 그리고 이 곳을 작은 올레길이라고 일컬으며 이름지어 준 이들만의 올레길인 것이 이 곳 한담 애월해안 산책로를 한결 한적하게 만들지 않나 싶다.

한담 해안산책로는 곽지해변까지 이어지는 1km 정도의 산책길이다. 해안절경이 수려함은 물론 일몰 시 석양의 아름다움에 취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계절에 따라 해안침수 공간을 이용하여 여가를 즐길 수도 있다.

연옥빛 바다를 끼고 난 작은 오솔길에서는 각양각색의 들꽃들과 바다에 몸담고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갯바위들만이 해안산책로의 주인행세를 한다.

산책로 윗길은 올레 16코스가 있지만 이 곳 작은 올레 길은 그 곳에 속해있지 않다. 이 곳은 처음 보자마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주는 해마다 몇 번을 찾지만 매번 유명관광지만을 찾다 보니 작고 소박하고 이름 없는 곳을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동 수단이 자유롭지 못한 제주에서 휠체어로만 보행하기가 쉽지 않아서 일 것이다.

이월 해안산책로는 꿈을 키우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작은 해안마을에 아이들이 직접 올레코스를 만들어 주민들과 올레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해안산책로 위에서 바라보는 이 곳의 풍경은 바다와 한몸이 되어 그대로 멈춰진 수채화 같다. 연옥빛 바다와 그 모양새가 제각각인 검은 현무암이 묘한 색의 조화를 이루고 끝이 맞닿은 수평선엔 여객선이 뱃고동 소리를 내며 점처럼 멀어진다. 해안산책로로 내려가는 길은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정도로 폭이 좁다 이 길 끝에서부터 해안산책로는 시작된다.

이 곳은 작은 올레길이지만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애월 한담은 한겨울 하늬바람이 몰아칠 때도 바람이 들지 않아 따뜻한 마을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해안에서 부드러운 햇빛을 받으며 생명을 피워내는 들꽃들이 상춘객을 맞이한다. 부추꽃, 개금불초, 개머루 등 우리네 이름을 가진 들꽃들은 정겹고 소박하기 그지없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저마다의 소원을 하나씩 품고 싸올라간 돌탑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 있다. 그 옆으로는 화산 폭발이 만들어낸 천연 노천탕도 있다. 밀물때 들어온 고기들이 썰물때 빠져나가지 못해 작은 못을 만들어내고 있다.

유리알처럼 맑은 해안 산책로 바다는 수많은 물고기와 해초들로 사람과 자연이 서로 기대며 살아간다.

천천히 걷다보니 산책로 끝 지점이 나온다. 이 곳부터는 곽지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곽지해변에 다다르니 주홍빛 해가 제 몸을 숨기려 검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리곤 차츰 어둡기 시작한다. 캄캄한 해변엔 인기척이 사리지고 낮게 앉은 집들에서 불빛이 새어나온다. 배도 고프고 잠잘 곳도 찾아야 한다. 어두워지니 기온은 뚝 떨어졌지만 살갗에 와 닿는 바닷바람이 기분 좋다.

관광객이 없는 시기라 그런지 식당들도 문 연 곳이 없다. 문을 연 슈퍼에서 컵라면과 복분자 한 병을 사들고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주위엔 어둠과 파도소리, 그리고 적막과 고독만이 흐르고 있다.

어두운 해변에서 복분자 한잔을 입속에 털어 넣는다. 그리곤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다. 바다와 침묵의 대화만 이어진다.

가는 길

제주 공항에서 리프트차량을 이용하여 애월 산책로 하차

-렌터카 064-748-8222~3

-제주장콜(064-756-8277∼8)

먹거리

-곽지해수욕장 인근 식당

-토비스콘도내 식당

잠잘 곳 (토비스콘도)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로 1길 8

전화 : 064-799-9901

홈페이지 : http://www.etovice.com

주변볼거리

-한림공원

-한림해변

문의

-휠체어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sun67mm@hanmail.net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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