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판정지침에 '객관적'이란 말이 17번 나온다.

‘손상 등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객관적인 검사’, ‘객관적인 기준으로’,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야’, ‘객관적인 검사 소견이 있어야’, ‘객관적인 의무기록으로’, ‘객관적인 측정방법에 의해’, ‘객관적인 눈의 상태를 확인’, ‘객관적인 측정이 어려우나’, ‘객관적인 징후가 반드시 확인되어야’ 등등이다.

이 지침에 의하면 장애, 즉 손상도 객관적이어야 하고, 검사도 객관적이어야 하고, 장애 상태도 객관적이어야 하고, 의무 기록도 객관적이어야 하고, 소견도 객관적이어야 하고, 측정도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러면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어 사회적 제한이 있는 자’라고 정의한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 정의 중 '사회적 제한'에 대하여는 왜 객관성을 따지지 않는가를 물을 수 있다.

장애가 객관적인 장애가 있고, 객관적이지 않은 장애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객관적이지 않으면 어떠한 장애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 객관적이라는 말은 장애판정센터의 판단이나 판정위원회만이 객관적이라는 말로도 들린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요구나 판단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지침에 그토록 객관적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은 객관적이지 않아서 객관적이라는 단어라도 많이 사용해야 객관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한 것일까. 왜 이리 히스테리적으로 느껴질만큼 객관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올까?

객관적이란 말은 정답이 아니다. 판정센터도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고 지침도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지침이 그토록 객관적이서 완벽하다면 개정하거나 수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병원에 아파서 가는 사람이 객관적으로 아픈 사람이 있고, 객관적이지 않게 아픈 사람이 있다면 의학의 비객관성을 인정하는 말이 된다. 의학이 아직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부분이면 비객관적이 된다. 그것은 의학의 모순이나 미숙 또는 비완전성, 결함인 것이지 환자가 객관적이지 않게 아픈 것이 아니다. 상태나 징후가 객관적이라는 말은 증명하지 못하면 꾀병이라는 말이다.

절차, 방법, 소견서 등도 객관적이라야 한다. 그 객관성은 누가 부여한 것인가? 절차를 만든 사람의 정해진 절차에 맞지 않으면 객관적이지 않은 것이 된다. 절차나 방법에서 찾아내지 못한 장애 중에는 절차의 모순이나 과정과 기준의 문제로 인한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객관성 때문에 재판에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관련된 모든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과 같이 모든 관련 서류를 제출하게 하고 이로 인하여 필요 이상의 검사 비용이 들게 되고, 그것이 의사에게는 수입에 도움이 되겠지만 장애인에게는 참지 못할 정도의 부담이 된다.

지침에서 ‘감각손상은 장애로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시각이나 청각은 감각이 아니고 운동이란 말인가? 미각이나 촉각, 압각, 온감, 통증 등 피부감각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렇게 애매한 말을 사용하면서 객관성을 거듭거듭 주장하고 있다.

지나치게 객관적이라는 말을 강조하다 보니, 장애판정 등급기준표에서는 나타나는 현상이나 징후로만 장애등급을 판단하게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증명을 하기 위하여 원인을 밝혀야 한다.

글자로는 ‘원인을 밝혀라’라고 되어 있지 않지만, 객관성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사실상 ‘장애원인을 증명해라’라는 말이 숨어 있도록 작용하고 있다.

사실 원인도 징후를 기초로 하여 붙여진 이름에 불과한 것이고 징후를 통하여 판단하는데, 징후가 나타나는 원인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라는 말은 계란이 먼저이기도 하고, 닭이 먼저이기도 한데, 둘 다 증명하라는 말이다.

징후가 나타나는 원인을 찾아 객관성을 증명하라는 것은 의학이 아직 밝히지 못한 징후는 비객관적으로 자의적으로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이는 의학이 알면 객관이고 모르면 비객관이라는 학문의 오만이 들어 있다.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열이 난다면 열이 나는 징후에 대한 원인을 바이러스를 찾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가 증상을 보고 감기라 판단하지 않고 감기 환자에게 일일이 피를 뽑아 바이러스를 현미경으로 찾나내야 객관적인 것이 된다. 의사들이 실제로 그렇게 일을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장애를 원인으로 증명하라는 기준은 어디에도 없지만, 실제로는 그 객관성 때문에 원인을 증명하게 하여 지침에서 장애판정 기준을 변경하지 않고도 장애판정의 엄격성으로 장애인구를 제한하고 있다.

매년 장애인 등록 인구가 30만명씩 늘어나다가 2011년에는 전혀 늘어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장애가 있어 등록을 하려는 것인데, 증명을 자기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장애인이나 진단한 의사에게 하라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의사가 무슨 사명감으로 증명까지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장애판정에서 원인을 증명하지 못하거나, 지침 자체가 부실하여 제대로 장애정도를 반영하지 못하거나, 추가적 장애의 반영이 너무나 인색할 경우 등급 하락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한 부위에 여러 가지 장애가 있으면 전혀 인정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다소 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손가락 관절에도 이상이 있고, 팔목에도 이상이 있고, 팔꿈치 관절에도 이상이 있고, 어깨 관절에도 이상이 있다면 여전히 그 중 하나만 인정한다.

객관적이지 않은 판정기준이 문제이지, 장애 상태나, 검사방법, 소견, 자료, 검사가 객관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의사의 소견은 견해인데 그것이 객관적이지 않으면 무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애가 있어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에게 판정으로 다시 울리는 경우가 없어졌으면 한다. 관절운동 범위가 50%가 제한되면 장애인이고, 49%가 제한되면 장애인이 아니며, 장애로 인하여 자주 병원에 간 기록이 있으면 장애인이고 너무 아파서 병원에도 못가면 장애인이 아니다.

판정을 하는 이유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대상인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라면 원인을 증명하여 객관성을 찾지 말고 서비스의 필요성을 기준으로 판정해야 할 것이다.

객관적이지 않은 장애 징후에 대하여도 객관적으로 판정하는, 진정 객관적이란 단어가 없어도 되는 시대는 언제 오려나.

일상생활에서 활동보조인의 도움이 필요한지 문항별 질문들을 해 놓고 그 필요한 시간의 합산을 하지 않고 총점이 얼마 이상인가를 보는 것 역시 절대 객관적이지 않으니, 제도부터 장애인의 현실과 욕구를 객관적으로 수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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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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