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유행가 가사에 "님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 부르리까?" 라는 말이 있다. 님이라 부르든지, 당신이라 부르든지 모두 이제는 특별한 관계와 의미가 생겼다는 것이다. '님'과 '당신'은 같은 의미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호도에 따른 선택을 물어보는 것이며, 이는 사랑한다는 고백의 한 방법이다.

'장애우'냐 '장애인'이냐는 이와는 달리 어느 것이 옳은 용어인가의 문제이다. 장애인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장애우는 사용하면 안되는 용어라 말할 것이고, 장애우란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장애인이라 사용해도 되지만 장애우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장애우란 용어가 만들어지고 한 단체가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장애인이란 용어보다 더욱 친근감 있고 거부감이 없으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장애 문제를 이슈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용어로 정착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언론에서 장애우란 말이 더 많이 사용되다시피 하였고, 지하철이나 마을버스 등에서 '장애우보호석'을 만들만큼 장애우가 공식 용어처럼 사용되었다.

혹자는 장애우란 용어가 장애인 권익문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는 기관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특정 단체의 이름을 꼬집으며 이렇게 용어의 혼선을 가져온 것에 대하여 원망을 하였다.

장애란 용어가 불구라는 용어보다는 훨씬 개선된 말이겠지만, 장애(障碍)가 ‘막히고 거리낀다’는 의미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부정적 의미인 것이다. handicap 역시 손에 캡을 씌운 것이니 손의 동작으로 보면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손에 모자를 들고 있다고 본다면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부정적 의미이다.

장애인을 영어로 표현할 경우 disabled people(제한을 받는 사람)을 사용하느냐, people with disable(장애를 가진 사람)을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있는데, 미국에서는 장애보다 사람을 먼저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영국에서는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 사회라는 것을 강조하여 수동태 형태로 ‘장애가 주어진 사람’의 표현이 더 좋다고 주장한다.

장애(disable, 무능)을 부정하고 긍정적 용어를 찾아보려는 시도가 한국에서도 있었고 현상금을 내걸고 공모도 한 바 있으나, 너무 어색하거나 의도만이 강조되어 신조어로서 지나친 조작어이거나 일반화하기에 부적절하였다.

장애우는 몇 년간 많은 시험을 한 셈이다. 이제 서서히 사용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듯하다. 자연적으로 사라지도록 기다릴 수도 있겠으나 올바른 사용을 위해 ‘장애우’란 말은 사용을 금하는 것이 좋겠다.

장애우는 1인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 친구는 혼자가 아닌 상대가 있어 만들어지는 것인데, ‘나는 장애우다’라는 말은 문법상 맞지 않다.

장애인의 반대말은 비장애인이라고 있지만, 장애우의 반대말을 비장애우라고 한다면 그 말도 너무나 어색하다. ‘비’가 ‘장애’에 걸리는 것인지 ‘우’에 걸리는 것인지도 복잡하다.

친구란 말은 특정 종교단체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동년배가 아닌 경우라도 사용하는 말로 ‘동무’와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일반 명사로 사용하기에는 문화가 맞지 않다. 나이 어린 사람이 노인에게 장애우라 부르기에는 맞지 않다.

장애우란 ‘학우’와 같이 같은 동년배에서 부를 수는 있으나 이 경우도 비장애인에 대한 한 집단을 구분하는 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장애우란 의미는 장애를 가진 친구로 장애인을 친구가 필요한 사람, 혼자서는 자립할 수 없이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여 보호해야 할 사람으로 보아 부정적 시혜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국모라는 말은 최근에 만들어진 말이 아니고 고조선부터 백제, 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말이다. 국모의 묘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의 선덕여왕이 국모라는 기록도 있으며, 공민왕 때에도 국모라는 말이 기록에 있으나 명성왕후 살해사건 당시의 국모라는 말처럼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 좋은 국모라는 말도 조선시대의 유교와 만나면서 국모는 암탉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으며, 처신함에 있어 엄격한 규제를 강조하는 억압의 수단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억압이 여왕의 탄생이 신라로서 끝이 난 후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장애라는 용어도 어떤 문화를 만나고 사회적 태도가 어떠한가가 중요하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용어를 변경한다 하여도 문화가 부정적이면 소용이 없고, 사회적 태도가 나쁘면 굳이 용어를 바꾸지 않아도 될 것이다.

법적 용어인 장애인이 아닌 다른 용어에 대하여 국민의 공감대가 없는 것이라면 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우보호석’의 표지 철거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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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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