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뻗어 나오고자 하는 화분 속의 푸른잎. ⓒ장진순

우리 자립생활센터를 이용하는 지적장애를 가진 청년 중 J가 있다. 처음 방문했을 당시 J는 옆 사람의 대화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함께 온 그의 어머니도 그저 이곳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낼 수 있게 해달라는 바람만 말씀하셨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지금 J는 가벼운 농담에 웃기도 하고, 센터를 오고갈 때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옆 친구의 행동에 자신의 이마를 치며 “기가 막히다”는 말도 해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들기도 한다.

J는 그동안 어머니와 생활하면서 외부 사람들과 관계나 소통의 경험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집에서 TV를 보면서 소일하는 것이 일상생활의 대부분이었던 J는 이제 매일 센터의 프로그램에 따라 활동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다양한 경험에 노출되면서 빠르게 변화해 갔다. 농담을 구별하고, 예의를 알고, 자신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런 J를 보면 생각나는 학자가 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Vygotsky (1896.11.17-1934.6.11)이다. 인간행동 발달에 대한 이론에서 그는 '발달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지는데, 한 가지는 생물학적인 성장과 신체 정신 구조의 성장 및 성숙인 자연적 발달의 측면이고, 다른 한 가지는 문화적 수단의 적용 방법과 문화적 활동에의 참여를 통한 문화적 측면에서의 발달'이라고 했다.

그리고 Vygotsky는 이 문화적 측면에서의 발달을 가지고 장애인을 설명했다. 즉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는 없고 다만 경험에 대한 노출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장애인이 사회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 많이 노출되고 문화적 활동에 참여를 많이 하면 할수록, 그리고 사회적 경험과 학습이 많이 일어나면 날수록 장애 문제는 더 이상 사회적 관계 속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 말은 사람들의 유전자 속에는 사회적 관계를 갈망하는 인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혼자서 소외되는 현상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의 사람들은 유독 장애인에게는 이런 인자가 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회적 관계를 갈망하는 이 유전자를 우리는 '인권'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들 속에 내재해 전수되어 오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욕구가 다만 장애인에게는 억눌러져 있다고 본다.

사회적 관계는 생존의 본능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기본 본능이다. 그 동안 이러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본능을 억누르고 살아야 하는 것이 장애인의 삶이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장애인의 그러한 삶의 모습은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비추어지고 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시설 속에 살아야 하고, 장애인이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고, 장애인이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진단을 한다.

그러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장애인의 '인권'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소외시키는 시설이나 집안의 골방으로 장애인을 내몰아가는 경우는 없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참여해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게 될 때 그동안 시설이나 가정에 갇힌채 억눌러져 온 장애인의 무한한 가능성과 능력은 확대될 것으로 확신한다.

며칠째 얼어붙은 추위 속에서 겨울 햇살이 유난히도 따뜻해 보이는 한낮이다. 그 동안 움츠렸던 실내의 화분을 창가에 내다놓았더니 푸른 잎들이 세상 밖으로 뻗어 나오고자 하는 희망을 속삭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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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수필, 소설 부분에서 문단에 등단한 문인이며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해 교육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자립생활의 현장에서 사랑샘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운영해 왔으며, 현재 부산장애인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에 대한 열망을 전하고, ‘장미의 화원’을 가꾸는 부지런한 정원사로서 고단한 일상에 지친 이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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