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아 그냥 앉아있지 그랬어? 나는 괜찮은데 네 이미지만 나빠졌겠다. 이젠 좀 괜찮니?

전철에서 내려 개찰구를 통과해서도 화가 풀리지 않아 발개진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는 나를 보며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하철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문제로 소란이 벌어진 직후여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여자친구는 죄가 없었다.

똑같이 한 시간 이상 걷고서도 주말 오후 복잡한 서울지하철 2호선 안에서 빈 자리가 생기자 그것을 내게 양보하고 추가로 이십 분 가량을 서서 왔던 것이다. 거기에 본의 아니게 나때문에 전철 안에서 소란이 벌어졌으니, “괜찮니?” 라고 물어야 할 쪽은 그녀가 아니라 나였는데, 잠시 주객이 전도되어 있었던 것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일수록 이해심이 많아야 한다는 말에 짜증이 났어."

근처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 들고 의자에 앉으면서 여자친구에게 한 말은 그랬다.

그 날도 주말에 만난 우리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조금 후 빈자리가 생겨 그 곳에 앉아 두 정거장 쯤 갔을까?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 한 분이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내가 있는 쪽으로 왔고,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했다.

“할머니 죄송한데요. 얘가 몸이 불편해서 양보해드리기가 힘들어요. 다른 곳으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평소에는 “너도 몸 상태가 괜찮으면 자리 양보 좀 해라” 라고 애기하는 그녀였지만 한 시간 이상 걷다 보니 지친 내가 걱정되었던지 할머니께 정중히 양해를 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소란이 벌어진 것은 그 때였다.

“아니, 머리에 피도 안마른 애가 어디서 어른에게 말대꾸야? 어디가 불편해? 불편해 보이지도 않구만. 말 좀 해봐? 어디가 불편한지."

지하철 안에서 가끔 보는 장면이지만, 이럴 때마다 승객들의 눈과 귀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순식간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소란스럽던 열차 안이 할머니의 큰 소리에 조용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가 불편한지 한 번 말을 해 보라니까."

보조기구 없이 보행이 가능하기에 어디서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종종 이같은 오해를 받곤 한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불편한 표시가 보이지 않는데 어디가 불편하냐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불편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야 “요즘 젊은 것들은… ” 으로 시작되는 말을 피할 수가 있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불편해서 앉아 있었습니다. 양보해 드릴까요?"

일어나서 출입문 쪽으로 향하려는 순간 내 몸 상태를 알게 된 승객들은 물론, 조금 전까지 “어디가 불편하냐” 고 떠들던 할머니도 조용해졌다.

“몸이 불편하면 이해심이 많아야지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죄송하다는 말 대신에 "나도 힘들어서 자리에 앉아 있는데 왜 그랬느냐" 는 표시로 들렸는지 거북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 할머니의 한 마디에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그 소리들이 결코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감지한 할머니는 황급히 자리를 떴고, 우리 역시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이해심이 많아야 한다”보다 다른 가르침을 배울 수 있기를

장애인으로 태어난 이들은 그 순간부터 자신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렸을 때에는 또래들에게 맞지 않기 위해 온갖 따돌림도 참아내야 했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못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흐름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비장애인들은 자신과 타인의 욕구가 충돌할 때 일차적으로 협상을 통해 타협점을 찾음으로써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찰시키는 경우가 있지만, 장애인의 경우에는 이같은 삶이 허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수용할 때는 들려오지 않던 장애와 관련된 온갖 단어들이 자신의 요구를 관찰시키려 할 때나 불합리한 일에 항의하려 할 때는 무수히 쏟아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다른 장애인들은 안그러는데 유독 너만 그러느냐“는 말이 따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몸이 불편할수록 더 많이 이해해야 한다" 고 가르치려 한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상대방과 비교하고 타협과 협상을 통해 조율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상태에서 이해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예스맨'이 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오직 이해만이 강요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현실 앞에서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장애인에게 타협과 협상을 배울 기회를 허하라!"

가끔은 몸도 불편한 사람이 별나다고 욕을 먹더라도 그 말은 항상 듣던 말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장애인에게도 대화와 협상 과정에서 때로는 까칠해질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알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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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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