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 대학 스프롤 광장. ⓒ샘

"선배님, 장애학 클래스 정말 좋아요. 선배님도 꼭 들어보세요."

학년은 위지만 나이가 나보다 어려 선배라고 부르는 여학생이 장애학 클래스를 적극 권했다. 꼭 듣고 싶었으나 필수 과목의 압박과 시간이 맞지 않아 미루고 있던 클래스를 마침내 신청했다. 장애 제도 최고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장애학은 어떨까? 나는 내내 호기심을 갖고 첫 강의 날짜를 기다렸다.

장애학은 학교 입구로 들어오면 왼쪽에 위치해 있는 드웨넬관에서 있었다. 드웨넬관 많이 드나든 곳이어서 익숙했다. 나는 시간이 남아 일찌감치 강의실에 들어가 앉았다. 오랜 전통을 가진 대학답게 적당히 낡은 칠판과 의자들, 그리고 시원스럽게 내다보이는 창문들이 마치 집안처럼 아늑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낮선 것이 하나 있었다. 휠체어, 미국에서 주인 없는 휠체어는 주로 매점에 있는 데 강의실에 있다는 것이 다소 신기했다. 사람이 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가져다 놓았을까.

시간이 되어 학생들이 몰려 왔다. 모두 해야 50여명 되는 크지 않은 클래스였다. 장애인도 대여섯 명 정도 함께 수강했다. 다른 클래스에는 어쩌다 한 두명 정도 장애인이 있을까 말까 한데 장애학 클래스여서 아무래도 장애인 학생에게 관심이 높은 것 같았다. 학생 중에 한국 여학생도 한명 끼어 있어서 반가웠다.

곧 교수가 들어왔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키작은 여성이었다. 걷는 것이 다소 불편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장애가 있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짐작이 갔다. 걷는 데 큰 불편은 없으나 강의 시간동안 오래 서 있기가 힘들어 휠체어를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그녀는 차분한 음성으로 인사를 하고는 학생들을 향해 자원봉사할 사람을 요청했다. 한 백인 여학생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강의 끝날 때까지 저 휠체어에 앉아 있어 볼래요?"

휠체어가 교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체험적 강의를 위해 준비된 것임을 그제야 알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휠체어에 가 앉았다. 비장애인이 휠체어에 앉는 모습이 다소 어색해 보였다. 교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의를 계속했다.

강의는 장애의 심리적 차원을 파헤친 내용으로 매우 훌륭했다. 장애 문제에 대해 꽤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지만 장애 문제만 전문적으로 연구한 그녀에게 배울 것이 무척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강의가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강의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교수는 휠체어에 앉은 학생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휠체어에 앉아서 강의를 들은 느낌 좀 말해 볼래요?"

교수가 묻자 그녀는 휠체어 수강 체험을 이야기 했다.

"휠체어에 앉아 본 것은 제 생애 처음입니다. 처음에 휠체어에 앉을 때 많이 어색했습니다. 장시간 앉아 있으면서 일반 의자보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질 자체로 보면 다른 의자와 다를 것이 별로 없겠지만 사회적 편견이 만든 우리의 의식이 휠체어 자체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만들었습니다. 휠체어가 휠체어로 보이는 한은 아직도 장애와 비장애인 간에는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클래스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워 장애에 대한 나의 보이지 않는 편견이 사라졌으면 합니다."

교수가 이제 휠체어에서 내려와도 된다고 말하자 그녀가 휠체어에서 내려왔다.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수는 그녀의 말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우리는 다음 주 클래스를 기대하며 강의실을 나왔다.

클래스를 통해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얼마 안되는 학점이어서 일 주일에 한 번 밖에 없는 클래스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녀의 클래스는 알찼다.

제일 두드러진 것은 미국의 장애 운동사였다. 대대적인 장애인권 운동 과정에서부터 동네에 있는 미용실과 싸워 경사로를 만드는 일까지, 글 자료와 동영상등을 보여 주며 강의를 이어 나갔다.

아주 작은 문제도 집고넘어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장애인들을 보며 미국을 장애인의 천국으로 만든 그들의 의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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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미국 탐 하킨 상원의원 장애국 인턴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장애인체육회 워싱턴 통신원, 서울복지재단 워싱턴 통신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출간한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은 1992년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워싱턴 문학 수필부문 가작에 당선됐다. 각종 미국 장애인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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